시진핑, 러시아 국빈방문 일정 시작…전쟁 중 중·러 밀착에 국제사회 촉각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박3일간의 러시아 국빈 방문 일정에 들어갔다. 시 주석의 러시아 방문은 2019년 6월 이후 거의 4년만이며 우크라이나 전쟁 발생 이후 처음이다.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있는 와중에 이뤄지는 중국과 러시아의 밀착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시 주석은 20일 낮 12시59분(현지시간)쯤 전용기를 타고 모스크바 브누코보 공항에 도착했다고 러시아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이날 시 주석의 모스크바 도착 장면은 러시아 국영방송을 통해 생중계됐다. 시 주석은 군악대의 팡파레 속에 드미트리 체르니센코 부총리의 영접을 받았다.
시 주석은 모스크바에 도착한 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초청으로 국빈 방문을 하게 돼 매우 기쁘다”며 “나는 10년전 중국 국가주석 자격으로 처음 러시아를 국빈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본격적인 중·러 관계 발전의 장을 열었다”며 “지난 10년 동안 중·러는 비동맹과 비대항, 제3자를 겨냥하지 않는 기초 위에서 상호 존중과 평화공존, 협력공영의 새로운 강대국 관계의 모범을 확립했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또 “나는 방문기간 푸틴 대통령과 양자 관계와 공통 관심사인 중요 국제·지역 문제에 관해 심도 있는 의견을 교환하고 새 시기 중·러 전략 협력과 실무 협력의 청사진을 그릴 수 있기 를 기대한다”며 “이번 반문은 반드시 풍성한 성과로 중·러 신시대 포괄적 전략 협력 동반자 관계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중국 관영 CCTV는 시 주석의 이번 러시아 방문에 차이치(蔡奇) 중국 공산당 중앙서기처 서기와 왕이(王毅)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 친강(秦剛) 외교부장 등이 동행했다고 전했다.
시 주석은 이후 푸틴 대통령을 만나 비공식 회동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을 “친애하는 친구”라고 부르며 환영하고 이달 초 결정된 시 주석의 3연임을 축하했다.
이어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이 러시아·중국 관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안다”며 “중국은 대부분 국제 이슈에 있어서 공정하고 균형 잡힌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지난달 중국이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해 발표한 입장을 잘 알고 있다면서 “러시아는 항상 협상에 열려 있다. 우리가 존중하는 중국의 우크라이나 관련 입장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협력도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양국 무역 규모가 1850억달러 규모(약 242조3000억원)로 지난 10년간 2배로 급증한 사실을 언급하며 “양국은 많은 공통의 목표가 있다”고 했다.
시 주석은 “이 곳에 방문하게 돼 매우 기쁘다”면서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역사적 논리가 있다. 중국은 러시아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양국 관계 발전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며 “중국에 대한 푸틴 대통령의 지원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또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의 지도하에 상당한 국가 발전을 이뤘다”며 “2024년 대선에서 러시아 국민이 푸틴 대통령을 지지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방문 이틀째인 21일 오후 푸틴 대통령과 공식 정상회담에 임할 에정이다. 러시아 측은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포괄적 협력 관계 심화에 대한 공동 성명 등 2개 중요 문서를 비롯해 10여개 문서에 합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공동성명을 통해 회담 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방문은 시 주석이 지난 13일 폐막한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국가주석 3연임을 확정하고 3기 내각 구성을 완료한 지 일주일만에 이뤄지는 첫 해외 방문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시 주석은 2013년 국가주석에 처음 취임한 직후에도 첫 국빈방문지로 러시아를 택했었다. 시 주석의 러시아 국빈방문은 이번이 통틀어 9번째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만남은 지난해 9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우즈베키스탄에서 만난 뒤 6개월만이다. 두 정상의 잦은 만남과 국빈방문은 갈수록 격화되는 미국 등 서방국가와의 갈등 속에서 더욱 강화되는 양국의 ‘반미·반서방 연대’ 움직임을 상징한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이날 각각 상대국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도 공히 미국을 겨냥했다. 시 주석은 러시아 리아노보스티통신 등에 실린 기고문에서 “패권, 패도, 괴롭힘 행태의 해악이 심각하고 엄중해 세계 경제 회복을 지연시키고 있다”며 “모든 나라에 통용되는 통치 모델은 없고 한 나라가 결정하면 그만인 국제 질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국제사회는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며, 세계 다극화·경제 글로벌화·국제관계 민주화의 대세는 되돌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를 비판하고 러시아 등과 협력해 다극체제를 끌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보다 직접적으로 미국을 겨냥했다. 그는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서방 집단은 끊임없이 상실해가고 있는 지배적 지위에 점점 더 절망적으로 집착하고 있으며 심지어 일부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도박의 판돈으로 삼는다”며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에 대해 ‘이중억제’ 정책을 채택하고 미국의 지령에 굴복하지 않는 모든 나라를 억제하려 하는 행태가 갈수록 횡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제사회는 시 주석이 이번 방러 회담을 통해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에 대한 무기 지원을 논의하거나 우크라이나 전쟁에 있어 중재자 역할을 자임할 가능성 모두를 경계한다. 다만 최근 사우디아라비이아와 이란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중재하고 우크라이나 사태의 정치적 해결 방안을 제시하며 ‘평화의 중재자’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 중국이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린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러시아에 대한 무기 지원을 결정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대신 시 주석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정치적 해결을 거듭 주장하며 중재자 이미지 구축에 더욱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러시아와 일방적으로 밀착하고 있는 중국의 중재 시도가 우크라이나와 국제사회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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