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NEWS] ‘오픈런’ 불사하는 위스키 열풍...불황형 소비 아닐까

7NEWS팀 2023. 3. 20.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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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량의 위스키에 토닉워터·레몬 넣은 하이볼도 인기
하이볼은 ‘작은 사치’와 ’가성비’를 섞은 칵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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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7NEWS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시절 ‘백화점 오픈런’ 광풍이 불었던 것, 기억하실 겁니다. 나라마다 문을 걸어 잠그면서 두 발이 묶인 소비자들이 해외여행 대신 명품을 너도나도 사면서 품귀 현상이 일어나서 그렇습니다. 이 때문에 ‘보복소비’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지난해부터 금리가 본격적으로 인상되며 경제는 침체 국면에 들어섰습니다. 치솟은 물가는 진정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고연봉을 받는 IT업계 종사자들이 수만명씩 짐을 싸고 있습니다. 한국도 다를 바 없는 상황인데, 경기 불황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고가 제품과 서비스 수요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양주(洋酒)입니다. 19일 이마트에 따르면 올 들어 위스키, 브랜디, 럼 등 양주로 분류되는 주류 매출이 소주보다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지난 1~2월 소주 매출 비중을 100%으로 잡으면 양주는 103.6%로 집계됐습니다. 2021년 1~2월만 해도 양주 매출 비중은 81.3% 수준이었습니다. 그랬던 양주가 지난해 같은 기간 95.8%로 올라서고, 올해는 소주 매출을 추월한 겁니다. 연간 매출을 기준으로 했을 때 양주는 2021년 소주의 71.6% 수준이었지만 지난해는 76%로 높아졌습니다.

양주 매출 증가는 위스키 판매량 증가 덕분이었습니다. 발베니·맥켈란·글렌피딕 등 인기 위스키가 매장에 풀린다는 소문이 돌면 오픈런을 불사합니다. 누가 그렇게 매장에 부리나케 뛰어가느냐고요? 바로 30대 이하입니다. 위스키 구매 연령대 비중을 보면 30대 이하가 39.4%로 가장 많았고, 40대 24.3%, 50대 17.4%, 60대 6.6% 순이었습니다.

지난 2월25일 오전 서울 이마트 용산점에서 시민들이 한정 판매되는 '발베니 12년 더블우드' 위스키 구매를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연합뉴스

위스키는 경제상황에 연동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경기가 불황이면 병 당 단가가 비싼 위스키는 덜 팔립니다. 소비자들이 한 병에 몇 만원씩 하는 술보다는 값싼 소주나 맥주를 더 찾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불과 코로나가 본격 확산하기 직전인 2019년까지만 해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전부터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관세청 무역통계에 따르면 위스키 수입액은 지난 3년간(△2020년 1억3246만달러 △2021년 1억7534만달러 △2022년 2억6684만달러)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특히 지난해는 2021년 수입액 대비 52.2%나 증가했습니다.

우리가 겪은 지난 3년은 코로나로 모두가 힘들던 시절이었습니다.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할 정도였으니 경기가 활발하던 시기는 결코 아니었지요. 이때 위스키 판매량 증가는 집에서 마시는 ‘홈술 트렌드’가 번져서 그랬다고 해석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마스크 착용마저 자유로워진 올해는요? 이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하는 건가요.

불황형 소비의 단면이라고 접근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유통 업계에서는 불황일수록 비싼 상품이 잘 팔린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경기가 침체될수록 중산층은 사라집니다. 그리고 소비패턴이 양극화하면 중상위 상품군은 저가 상품군으로 흡수됩니다. 사람들이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가성비’를 찾기 시작해서 그렇습니다. 고가 상품은 더욱 입지가 공고해집니다. 공허해진 마음을 만족감으로 채우고 싶은 수요는 더욱 늘어날 테니까요.

현실을 돌아보면 요즘 소비자들은 극도로 비용을 아끼고 있습니다. 제품은 소용량으로 사고, 중고거래 시장을 적극 찾는 형식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낀 자금은 다시 초고가 제품 구입으로 사용됩니다. 지난해 하반기 백화점 해외 유명브랜드 소비 증가율이 전체 소비 증가율을 웃돌았습니다.

어쩌면 위스키는 ‘작은 사치’가 아닐까요. 사용해도 가치가 잔존하는 내구재와 달리 위스키는 먹으면 없어지는 소비재입니다. 소주, 맥주에 비해 도수가 높은데다 풍미까지 느낄 수 있으니 적은 양으로도 큰 만족을 얻을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위스키 판매량이 늘면서 수혜를 입은 품목이 레몬과 탄산믹서라고 합니다. 지난해 매출액을 보면 레몬은 16.4%, 토닉워터 등 탄산믹서는 63.8% 증가했습니다. 하이볼 수요가 증가했다는 뜻입니다. 하이볼은 위스키를 토닉워터와 레몬즙 등을 넣어 섞은 술이지요.

/조선일보DB

그것 아시나요? 하이볼은 일본경제와 일본 위스키 시장이 겪었던 불황의 단면입니다. 1980년대 일본의 부동산 시장에 낀 거품이 붕괴하며 1990년대부터 ‘잃어버린 10년’이 찾아왔습니다. 일본인이 경기침체로 고가의 위스키를 마시지 못하게 되자 소량의 위스키에 탄산수를 섞어 마시게 되었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일본의 주요 주류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하이볼 제조에 필요한 재료들의 매출이 늘어났다는 점이 다소 걱정됩니다. 어쩌면 긴 경제침체를 겪었던 일본의 전철을 밟아가는 것은 아닌지 해서요. 만들기 쉽고 맛도 대중적이니 하이볼 수요가 증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플레가 워낙 심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꼭 이런 이유만 있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위스키는 한 병에 10만원을 호가하거나 훌쩍 넘어서는 고가의 술입니다. 그런데도 수요가 워낙 많아 오픈런에 나선다고 해도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소비자는 입수 난이도가 높은 위스키를 구했다는 점에서 심리적 만족감을 채우고, 하이볼로 가성비를 챙기려는 것이 아닐까요? 적은 양의 위스키로도 양껏 만들어 마실 수 있는 칵테일이 바로 하이볼이니까요. 위스키를 보면 작은 사치와 가성비를 모두 누리고 싶어하는 소비자의 속마음이 투영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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