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대통령의 `욕먹을 결심`

2023. 3. 2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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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 정치정책부 정치팀장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다시 30% 중반까지 떨어졌다. 일제 강제동원(징용) 배상을 일본 피고기업이 아닌 국내 기업이 부담하는 제3자 변제 방식의 해법을 내놓은 데 이어 최대 주 52시간 근로제를 최대 69시간까지 확대하는 근로시간 유연제를 도입하려다 여론의 역풍을 맞은 결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17일 1박 2일의 일본 방문과 한일정상회담으로 돌파구 마련에 나섰으나 역부족이었다. 대통령실은 12년 만의 한일 정상 간 셔틀외교 복원이라고 큰 의미를 부여했으나 국민 다수의 공감을 얻지는 못했다.

한국갤럽이 내놓은 여론조사(조사기간 14∼16일,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평가는 긍정평가가 1%포인트 떨어진 33%, 부정평가는 2%포인트 오른 60%였다. 긍정평가 이유로는 '노조 대응'(18%), '외교'(9%), '일본 관계 개선'(7%), '경제·민생'·'주관·소신'(각 5%) 등이었다.

부정평가 이유는 '일본 관계·강제동원 배상 문제'와 '외교'(각 15%), '경제·민생·물가'(10%), '독단적·일방적'(7%) 등으로 나타났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긍정적으로 본 여론(16%)보다 부정적으로 본 여론(30%)이 배로 많았다.

리얼미터의 여론조사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리얼미터가 20일 공개한 여론조사(미디어트리뷴 의뢰, 조사기간 13~17일,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포인트) 결과,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전주보다 2.1%포인트 하락한 36.8%로 집계됐다. 3월 초 40%를 웃돌던 긍정평가는 최근 2주 연속 하락(42.9%→38.9%→36.8%)해 30% 중반대까지 떨어졌다. 반면, 부정평가는 지난 조사보다 1.5%포인트 오른 60.4%를 기록했다. 부정평가가 60%를 넘어선 것은 지난 2월 2주(60.3%) 이후 5주 만이다.

윤 대통령이나 대통령실, 정부 등은 일제 징용 배상 해법을 내놓으며 당장 국민들에 받아들여질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은 듯 하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 6일 기자회견을 열고 제3자 변제방식 해법을 발표하면서 "경색된 한일 관계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정부의 대승적 결단"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도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오늘 '강제징용 판결 문제 해법'을 발표한 것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결단'이라는 단어를 들으며 무엇을 결단했다는 것인지 곱씹어봤다. 정부가 내놓은 제3자 변제 방식은 사실 가장 쉬운 해법이다. 사과도 배상도 하지 않겠다는 일본을 설득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우리가 부담할테니 미래지향적 관계를 열자'는 제3자 변제 방식을 일본이 마다할 리 없다.

그럼 도대체 대통령과 정부는 무엇을 '결단'했다는 것일까. 그 결단이 국민으로부터 '욕먹을 결심'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은 환영하되 우리 국민이 납득하거나 수용하기 어려운 해법을 내놓은 것이니 욕을 먹더라도 감수하겠다는 결심이 아니었나 하는 거였다.

최근 여권 인사와의 식사 자리에서 '정부의 제3자 변제 해법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그대로 답했다. 욕먹을 결심을 한 것 같다고. 다만, '용기 있는' 욕먹을 결심이 되길 바란다고.

지금 당장은 국민들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하는 해법이라도 대통령과 정부가 십 수년 간 경색돼온 한일관계를 잘 풀어내는 단초로 삼는다면, 그래서 후에 '한국의 큰 결단이 한일관계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 국민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섣부른 기대를 가져본다고.

윤 대통령이 비록 이번 한일정상회담으로 12년 만의 셔틀 외교 복원을 이뤘지만 지금까지는 아직 '욕먹을' 단계에 머물러 있다. 두 정상이 만나 '화합주'를 마시며 친교의 시간을 가졌고, 일본 국민들이 윤 대통령에게 박수를 보내고 환영을 표했다 하는 게 한일관계의 정상화를 뜻하지는 않는다. 일본의 수출규제를 푼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번 일로 우리 국민의 자존심에는 생채기가 생겼다.

윤 대통령이 5월에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초청받아 다시 일본을 방문할 기회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모쪼록 5월 방일에서는 윤 대통령이 일본의 더 성의있는 후속조치를 이끌어내기를 바란다. 우리 정부가 절반을 채웠다는 그 물잔의 절반은 아직 비어있다. 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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