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흉부외과가 ‘기피 과목’인 진짜 이유
김윤 |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을 ‘기피 과목’이라고 부른다. 환자 생명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과목이지만, 일은 힘들고 건강보험 수가(진료비 가격)는 낮아 전공의 지원자가 줄어들고 의사가 부족해진 과목이라고 알려져 있다. 정부는 2000년대 후반 흉부외과와 산부인과 수가를 대폭 인상했지만, 15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원인 진단이 잘못됐으니, 대책이 효과적일 리 없다.
기피 과목 전공의 지원율이 낮은 진짜 이유는 수요에 비해 전공의 정원이 많기 때문이다. 인구당 의사 수를 미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의사가 미국보다 외과 1.7배, 산부인과 1.6배, 흉부외과 1.3배가량 더 많다. 병원들은 인건비가 많이 드는 전문의 대신 저렴한 인건비로 장시간 노동을 감당하는 전공의를 충원하려고 한다. 보건복지부와 전문과목 학회들은 병원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전공의 수를 기준으로 정원을 책정하는데, 이는 병원이 채용하는 전문의 수보다 2배 가까이 많다. 그 결과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도 큰 병원에 자리를 얻지 못한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동네 의원을 차린다. 흉부외과 의사의 31%, 외과 의사의 40%, 산부인과 의사의 53%가 의원에서 일하는데, 이들 중 전문분야를 진료하는 의사는 흉부외과 14%, 외과 26%, 산부인과 40%에 불과하다.
큰 병원에서 일하는 전문의에 비해 동네 개원의 수입이 1.7배나 더 많은 왜곡된 건강보험의 진료비 보상 방식과 만연한 비급여 항목 진료도 큰 병원에서 일해야 할 전문의의 개원을 부추기고 있다. 최근에는 아예 의과대학만 졸업하고 피부과나 성형외과를 개원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기피 과목 의사가 부족해 보이는 이유는 병원이 전문의를 너무 적게 고용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2009년 흉부외과와 외과의 수가를 30~100%, 2010년 산부인과 수가를 25~50% 인상했다. 기피 과목 전공의 지원율이 낮아지면서 환자들이 제대로 진료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수가는 올려주면서 병원이 부족한 전문의를 추가로 고용하도록 하는 인력기준은 만들지 않았다. 그 결과 2009년부터 2조원가량 재정을 투입하고도 전공의 지원율은 높아지지 않았고, 전문의도 별로 늘지 않았다.
큰 병원, 작은 병원의 역할이 나뉘어 있지 않아 병원들이 무한경쟁하는 의료체계도 기피 과목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 병원들이 경쟁력을 키우려고 진료영역을 확장하는 바람에 기피 과목 의사가 필요한 응급센터, 심장센터, 분만병원이 수요보다 2~3배 많아졌다. 환자 수요보다 응급센터는 1.4배 많고, 심장센터는 2.4배 많다. 병원이 많아지니 의사가 분산되고, 의사가 분산되니 의사 부족 현상이 더 심해진다. 과목별로 전문의가 3~5명은 있어야 24시간 365일 진료가 가능하지만, 많은 병원이 전문의 1~2명만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래서 낮에는 응급환자, 심장환자를 보는 병원이 넘쳐나지만, 밤에는 중증응급환자가 거리를 떠도는 무의촌이 되고 만다.
이미 기피 과목 전문의가 많이 배출돼 있는데도 정작 병원에 의사가 부족한 이유는 허술한 의료제도 때문이다. 처음부터 의사 부족 대책을 다시 짜야 한다.
첫째, 병원이 적정한 수의 전문의를 고용하도록 해야 한다. 의학적 근거에 기반해 전문의 1인당 환자 수 기준을 정하고 이를 충족하는 병원만 인상된 수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골든타임을 고려한 적절한 수의 응급센터, 심장병센터, 분만센터 등을 지정하고 이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셋째, 과목별 전문의 수요에 맞게 전공의 정원을 조정해 배출된 전문의들이 큰 병원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넷째, 개원의도 자기 전문분야 환자를 진료하는 경우에만 건강보험 진료비를 가산받을 수 있도록 해 배우지 않은 분야의 환자를 진료하는 행태를 해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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