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조원 CS 채권 휴지조각 됐다"… 유럽 코코본드 날벼락

김덕식 기자(dskim2k@mk.co.kr), 한재범 기자(jbhan@mk.co.kr), 강봉진 기자(bong@mk.co.kr) 2023. 3. 20.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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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 신속 매각에 '블랙 먼데이'는 피했지만…
스위스 최대 은행 UBS가 크레디트스위스(CS)를 30억스위스프랑에 인수하기로 확정하며 금융시장 붕괴를 일단 막았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악셀 레만 CS 회장(왼쪽 첫째)과 콜름 켈러허 UBS 회장(왼쪽 둘째)이 악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UBS가 유동성 위기에 빠진 크레디트스위스(CS)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160억스위스프랑(약 22조6179억원) 규모의 채권이 휴지 조각이 됐다. 초고속 인수로 급한 불은 껐지만 유럽 채권시장 불안감은 오히려 증폭되는 분위기다. 투자 위험이 더 큰 주식은 가치를 인정받고 오히려 채권은 가치가 추락하면서 기존 금융질서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과정에서 발생했던 미국 행정부의 이례적인 무제한 예금자보호 조치에 이어 스위스에서도 대규모 채권 상각 조치가 이뤄지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혼란과 불안은 당분간 더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에 무게가 쏠린다.

20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스위스 금융감독청(FINMA)이 CS 채권 가운데 160억스위스프랑 규모의 신종자본증권(AT1)을 모두 상각 처리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채권의 가치를 '제로(0)'로 만든 셈이다.

AT1은 금융회사의 건전성에 문제가 발생할 때 투자자 동의 없이 상각하거나 보통주로 전환하는 신종자본증권이다. 통상 일반 채권보다 후순위지만 주식에 비해서는 선순위로 여겨진다.

하지만 CS 처리 과정에서 이런 상식이 무시되면서 AT1 채권 투자자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CS 모든 주주는 22.48주당 UBS 1주를 받는다. 패트릭 카우프만 아퀼라 애셋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블룸버그에 "자본 구조의 선순위가 존중돼야 한다"며 "AT1 시장에 명백히 타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은행가는 FT에 "채권 보유자들이 CS 주주보다 더 많은 손실을 입게 된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유럽 채권시장에 악몽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핌코와 인베스코, 블루베이펀드 등 다수의 자산운용사가 CS AT1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결정은 2750억달러(약 360조원)에 이르는 유럽 AT1 시장에 적지 않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CS의 AT1 상각 규모는 2017년 스페인 포풀라르은행의 13억5000만유로(약 1조8900억원)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역대 최대다.

AT1 채권 보유 리스크가 부각되자 아시아 은행들이 발행한 AT1 채권 가격도 줄줄이 급락했다. 홍콩에 본사를 둔 뱅크오브이스트아시아와 태국 카시콘은행의 ATI 채권은 각각 장중 8.6센트, 4.3센트 하락해 역대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싱가포르개발은행(DBS)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는 DBS홀딩스의 ATI 채권 역시 2.5센트 떨어져 3년 만에 최대 낙폭을 나타냈다. SVB 영국지사를 인수했던 HSBC은행이 발행한 ATI 채권도 5센트 이상 내려앉았다. 채권발 투자 심리 위축에 HSBC은행 주가도 장중 6.6% 하락세를 보이며 지난 1월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CS 처리 과정에서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서는 SVB 파산 후폭풍이 좀처럼 진화되지 않고 있다.

지난주 퍼스트리퍼블릭이 미국 대형은행 11곳에서 구조 자금을 지원받은 가운데 금융당국은 CS 인수작업을 주시하며 추가 지원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퍼스트리퍼블릭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대형은행의 예금 지원에도 불구하고 이 은행은 여전히 큰 손실을 내고 있어 서둘러 추가 자금을 조달하거나 매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개입하면 현재까지의 조치가 불충분하다는 부정적인 신호를 시장에 줄 수 있어 신중하게 접근하는 모양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지난 19일 뱅크런 여파로 파산한 시그니처은행을 뉴욕커뮤니티은행 자회사인 플래그스타은행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플래그스타은행은 시그니처은행의 자산 1104억달러 중 384억달러만 이전받기로 했다. 예금 부문에서는 총 886억달러 중 디지털뱅킹 관련 40억달러 규모를 제외한 나머지만 인수 대상에 포함됐다. 미국 중소은행연합은 19일 규제 당국이 미국 내 모든 예금을 2년간 즉시 보장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는 최근 대부분 예금이 4대 은행으로 몰려들고 있어 중소은행을 중심으로 더 큰 패닉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편 시장의 관심은 다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로 향하고 있다. 연준은 22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를 통해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국내 채권시장에서는 이날 안전자산 선호 현상 심리가 커지며 주요 금리가 하락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날 3·5·10년 국고채 금리는 10bp(0.1%포인트)가량 떨어진 3.3% 내외를 기록했다. 유럽은행의 AT1 채권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는 경고도 나온다. 최성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투자 심리 위축이 불가피하다"며 "유럽은행 코코본드(AT1)의 발생 조건을 재확인하고 신중하게 접근할 것을 권고한다"고 말했다.

[김덕식 기자 / 한재범 기자 / 강봉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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