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부동산PF 폭탄 여전 … 韓美금리차 커 자금유출 우려도
스위스 1위 금융사 UBS가 경영난에 빠진 2위 크레디트스위스(CS)를 인수하며 일단 파국을 막았지만 세계 금융 시장에 드리운 암운이 가시지 않고 있다. 20일 매일경제가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국제결제은행(BIS) 데이터 등을 통해 한국 경제 취약점을 진단한 결과 단기외채 등 대외건전성 위험도가 과거 위기 때보다 현저히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급증하는 무역적자, 역대 최대인 가계부채, 부실화 가능성이 있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이 세계 금융위기가 찾아오면 국내에 불을 댕길 수 있는 3대 뇌관으로 지목됐다. 여기에 이달 역대 최대 수준으로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한미 간 금리차로 외국인 자금 유출세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염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기축통화국과 국제 금융 공조를 강화하고, 자산 가격을 연착륙시키기 위한 정책을 정교하게 준비할 때"라고 지적했다.
최대 리스크 요인은 가계부채다.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파고를 넘으며 한국의 대외지급능력은 튼튼해진 반면, 가계부채 상황은 급격히 악화했다. 외환보유액에서 단기간 갚아야 할 해외 빚 비율(단기외채 비중)은 지난해 말 39.4%로 국제통화기금(IMF)의 위험 기준선(100% 초과)은 물론이고 아시아 평균인 120%에 비해서도 훨씬 낮다.
문제는 현재 채무상환 능력이 아니라 향후 한국 성장판을 억누를 수 있는 민간 부채다. BIS에 따르면 금리 상승세가 가팔랐음에도 한국의 가계부채는 2555조원(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치까지 늘었다. 가계부채 위험성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더욱 확연해진다.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105.3%로 주요 43개국 가운데 스위스, 호주에 이어 3위다. 미국(75.2%), 일본(67.9%), 독일(55.7%) 등 주요국과 비교해 높은 수준이다. 고금리 환경에 부채 폭탄이 실물경제로 옮겨붙을 위험성이 크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은 자산 시장 거품이 꺼지는 강한 충격이 발생하면 가계, 기업이 66조8000억원에 달하는 신용 손실(빚을 갚지 못하는 사태)을 입을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미분양 물량 급증, 부동산 경기 침체에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등 악재가 겹치며 부동산 PF 부실 염려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고금리에 금융시장이 경색돼 유동성 위기가 닥치면 고위험 사업장과 중소 건설사에 이어 우량 건설사까지 차환 위험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지난해 말 기준 제2금융권 부동산 PF 금융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2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저축은행은 지난해 말 유동성 비율이 177.1%에 달해 단기 자금 유출에 견딜 수 있는 체력을 비축해뒀다"면서도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이후 시장 유동성을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동성 비율이란 고객의 3개월 이내 만기 예금 인출 요구에 응할 수 있도록 은행이 언제든 현금화하기 쉬운 고유동성 자산을 보유한 비율이다.
다만 제2금융권 여신에 연체율이 급등하면 예금 고객 심리가 악화될 수 있고 예기치 못한 뱅크런이 일어날 수 있다는 염려가 여전하다. 박상원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는 이날 중소 서민금융 부문 금융감독 업무설명회에서 "중소 서민금융사는 서민, 취약차주에 대한 금융 지원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대내외 불확실성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에 노력해달라"고 강조했다.
금융권에서 자금을 제때 공급받지 못한 기업이 늘면서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전이될 가능성도 있다.
지난달 무역수지는 반도체 수출이 반 토막(42.5%) 나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12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올 들어 10일까지 무역적자는 227억7500만달러로 불과 두 달여 만에 역대 최악을 기록했던 지난해 무역적자(478억달러)의 48%에 달했다.
이상호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조사팀장은 "강달러 위기 상황에서도 경상수지를 잘 지키고 있는 대만과 인도네시아의 사례를 배울 필요가 있다"며 "대만은 기술 중시, 기업 친화적 정책을 채택해 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망 변화 혜택을 보며 경상수지 흑자를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한미 금리차에 따른 자본 유출 위험성이 커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21일(현지시간)부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여는데 시장에서는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이달 연준이 베이비스텝을 밟으면 미국 금리는 4.75~5%로 현재 3.5%인 한국 금리와 격차가 1.5%포인트로 벌어진다. 외국인 자금이 유출되고 원화값이 떨어질 소지가 높아진 것이다.
[김정환 기자 / 류영욱 기자 / 한우람 기자 / 강봉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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