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법안의 무덤
법률은 국회의원이나 정부가 제출한 법률안을 국회에서 심의하고 의결해서 만들어진다.
국회의장에게 제출된 법률안은 소관 상임위원회에 배정돼 심사를 거친다. 상임위에서 의결되면 법제사법위원회에 넘겨져 법체계와 자구 검토를 거친 뒤 국회 본회의에 회부된다.
본회의에서 재적인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법률안은 의결된다. 그런 다음 정부에 이송돼 15일 이내에 대통령이 공포해 20일 지나면 효력이 발생한다.
즉 법률안 제정과 개정은 '법률안 제출(국회, 행정부)→국회의장→소관 상임위→법사위→국회 본회의→대통령 공포' 순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법률안을 놓고 이해집단 간 첨예한 대립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곳이 법사위이다. 심도 있는 논의를 한다면서 법사위 법안심사 제2소위원회(2소위)에 넘어가면 폐기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래서 2소위는 '법안의 무덤'으로 불리며 권한 남용의 상징이란 딱지가 붙어 있다. 법체계와 자구 심사를 이유로 2소위로 넘어가면 사실상 '임기 말 폐기'로 인식된다.
국회의원들이 법률안을 놓고 극심하게 대립하는 이해집단 중 한쪽 손을 들어주기 곤란하면 회기 말까지 깔아뭉개는 전략을 쓴다. 말로는 양쪽 의견을 수렴하고 조율한다고 표방하지만, 임기 끝날 때까지 논의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의원들이 특정 집단 표를 의식하거나 자신들의 이해관계라도 걸리면 대체로 이런 과정을 거쳐 자동으로 폐기된다.
경찰공무원법과 예술인 복지법, 고도보존법 등은 2년 이상 2소위에 마냥 머물렀다. 방송법 개정안(과방위), 간호법안(복지위) 등도 논란 끝에 결국 2소위 늪에 빠졌다.
20대 국회에서 소관 상임위를 통과했지만, 법사위 2소위에 넘겨져 결국 빛을 보지 못한 법안은 48건이었다. 국회 일정이 바쁘다는 이유로 회의도 거의 열지 않는다.
더욱 이해되지 않는 것은 법사위 의원 중 극히 일부만 외치더라도 2소위로 법률안이 직행한다는 점이다. 별도 규정은 없지만, 관례로 굳어졌다.
거꾸로 이해관계 집단이 한두 명만 설득해도 법률안을 '2소위 무덤'에 밀어 넣을 수 있다. 한마디로 법안심사라는 미명 아래 소관 상임위에서 처리된 법률안을 법사위가 발목을 잡는다.
정상적으로 여야가 합의한 법안까지 본회의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수문장 권한을 행사한다. 폐단과 구습이다.
지난달 '변리사의 특허침해소송 공동대리'를 내용으로 한 법률 개정안도 결국 이 과정으로 2소위에 빠졌다. 특허전문가인 변리사를 소송에 공동대리인으로 참여시켜야 한다는 과학계와 산업계의 오랜 염원이 위태로워졌다.
법조계 출신 의원들 반대에다 이인실 특허청장의 모호한 태도가 방아쇠를 당겼다. 이 법률안은 지금까지 다섯 번째 국회에 제출됐는데 법사위 2소위 회부만 벌써 세 번째다.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가 통상 압력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익이 걸린 중차대한 시기에 국제 특허분쟁이라도 생기면 전문가인 변리사를 배제하고 변호사만으로도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할까? 애써 키워낸 우리 기업의 우수 기술이 국회의 몹쓸 관례에 묻힐까 우려스럽다.
[홍장원 대한변리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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