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 ESG의 역설
본격적인 주주총회 시즌에 접어들면서 주요 상장사들이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주주 행동주의 바람이 거세지면서 올해 주총에서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 주총에선 단순 배당 확대 요구를 넘어 이사회 전문성 제고를 비롯해 여러 지배구조 개선 요구가 주요 안건으로 올라 관심이 쏠린다. 몇 년 새 자리를 잡은 기업들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 강화 흐름이 반영된 결과다.
이 와중에 주총을 앞두고 배당 문제를 둘러싼 한국가스공사의 소액주주와 사측 간 갈등은 시사하는 바가 커 보인다. ESG경영 달성을 위한 핵심 요소인 E(환경)·S(사회)·G(지배구조)가 서로 불협화음을 내며 갈등을 빚는 사례란 점 때문이다.
가스공사는 지난해 2조40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기록하고도 9조원에 가까운 민수용 가스요금 미수금 때문에 무배당을 결정했다. 그러자 소액주주들이 집단소송도 불사하겠다며 들고일어났다. 가스공사는 그동안 도시가스 요금 인상 억제로 발생한 판매 손실금을 자산 가운데 하나인 미수금 항목으로 분류했다가 정부가 영업손실을 추후 정리해주는 회계처리 방식을 택해왔다. 이 때문에 실제로는 적자가 쌓여도 재무제표에는 흑자로 기재되는 '착시 효과'가 나타났던 것이다.
시장은 이 같은 상황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ESG의 3가지 요소에서 사회(S)와 지배구조(G) 부문의 충돌 사례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사회(S)적 가치를 중시하는 관점에서 보면 가스공사는 난방비 인상을 최소화하는 정책을 펼치는 것이 맞을 수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미수금이 늘어 재무구조가 악화되고 배당이 어려워졌다. 지배구조(G)적 가치를 추구하는 소액주주 입장에서 볼 때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일 것이다.
최근 지배구조(G)적 가치를 앞세운 행동주의 펀드가 주주 제안한 KGC인삼공사의 '인삼 사업 부문 인적분할 건'에 대해 사회(S)적 가치를 중시하는 노조가 반대 목소리를 낸 것 역시 ESG 부문 간 갈등 사례로 꼽을 만하다. ESG 중 어느 한 가치가 부각되면 다른 가치와 대립각을 세우는 상황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ESG의 역설(paradox)'이라 말할 정도다.
난감한 건 기업들이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하는 거냐"는 하소연이 절로 나올 만하다. ESG경영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모든 상황에 들어맞는 '만능열쇠'처럼 비춰지는 건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이래저래 기업들의 고민만 더 커지게 생겼다.
[강두순 증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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