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슬린 김의 예술법정] 빛바랜 '모네와 미첼의 대화'

2023. 3. 2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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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미첼展 개최한 루이비통
미첼 작품 이용해 핸드백 광고
계약 어기고 저작권침해 '눈살'
내 권리만큼 남의 권리도 소중
세상엔 지폐색만 있는 것 아냐
독일 프랑크푸르트 루이비통 매장 광고. 【EPA연합뉴스】

말년의 클로드 모네에게 세상은 온통 침침한 안개투성이였다. 그토록 선명하던 프랑스 파리 교외 지베르니 정원의 빛과 색채는 푸르스름하거나 노란 어스름이 뒤엉킨 데 불과했다. 백내장이었다. 늘 그러하듯 불행은 혼자 다니지 않는 법, 부인과 맏아들, 예술세계의 동료였던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연이어 그의 곁을 떠나갔다. 예술은 왜 하필 고난과 불행, 궁핍함을 자양분으로 삼는 걸까. 그의 대표작들은 바로 이 시기에 태어났다.

예술의 마력 중 하나는 시공간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 그렇게 영향을 주고받고 공감을 전파한다. 한참 뒤 이 시기 그의 작품들은 뉴욕을 중심으로 형성된 미국 추상표현주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중의 대표 작가가 조앤 미첼. 미첼은 모네의 색채와 빛, 에너지에 매료되어 뉴욕에서 지베르니로 이주했다. 옛 모네의 집이 내려다보이는 작업실에서 미첼은 그가 그랬던 것처럼 빛과 색채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포착하곤 형상화했다.

지난해 10월 프랑스 루이비통재단은 조앤미첼재단과 협력하여 '모네·미첼전'을 열었다. 미술사적으로 대단히 의미 깊은 기획이었다. 놓칠 수가 없어서 파리로 날아갔다. 처음에는 두 사람의 각기 다른 강렬한 보랏빛에 압도되었고, 이내 시공간을 뛰어넘은 두 사람의 내밀한 대화를 엿듣는 것 같았다. 기획자의 말대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당대 최고의 위대한 두 예술가의 역사적 대화"였다. 예술계의 관점에서는 엄청난 전시를 기획해낸 루이비통재단의 파워가 놀라웠다. 모회사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로부터 독립되어 순수 예술 전시를 기획해낸 재단의 역할에 대해서도 박수를 보냈다.

지난 2월, 조앤미첼재단은 LVMH에 저작권 침해 행위 중지를 요구하는 서한을 발송했다. LVMH가 미첼의 작품을 이용해 핸드백 광고를 했기 때문이었다. 광고는 세계 최고 부자이자, 미술 애호가인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의 아이디어였다. 조앤미첼재단은 LVMH의 요청에 일체의 상업적 사용을 분명하게 거절했다. 그럼에도 LVMH는 광고를 강행했다.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시장의 힘이라고 생각했을까. 이미 순수 예술과 상업 예술의 경계가 무너진 지는 오래다. 둘은 서로 상상력을 부여한다. 그런 방식으로 서로를 확장시키고 융합한다. 그럼에도 황금률이 있다면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 중요한 것은 권리자의 자유로운 의사다. 내 권리가 소중하다면 다른 사람의 권리 또한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내 색채가 소중하다면 다른 사람의 색채 또한 존중해야 한다. 세상은 결코 지폐의 색깔만이 아니다.

[캐슬린 김 미국 뉴욕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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