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시대 노인들이 내놓는 ‘천원 국수’…일자리 창출·시장 활성화 역할 톡톡
“1000원 가져가랑께. 다음에 또 와서 사 먹으면 되잖어.”
“그냥 받으랑께. 대신 지금처럼 오래오래 장사해줘.”
20일 오전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시장 ‘천원 국시’ 가게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다. 국수 4인분이 포장된 봉투를 건네받은 뒤 5000원을 내밀고 도망치듯 나오는 손님과 제값인 4000원만 받겠다며 따라나선 직원 간 훈훈한 실랑이였다.
가게 관리자 신미경씨(54)는 “손님들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더 많은 돈을 주고 가신다”며 “그럴 때마다 마음은 따뜻하고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오셔서 맛있게 드셔주시는 것만으로도 저희에겐 큰 힘이 된다”고 웃었다.
어르신들이 손수 만든 국수 한 그릇을 1000원에 판매하는 이 가게는 지난 6일 문을 열었다. 만 50세 이상이거나 양동시장을 당일 이용한 영수증을 가지고 있으면 국수 한 그릇을 1000원에 맛볼 수 있다. 이 외 주민들에게는 국수 한 그릇당 3000원을 받는다.
가게 메뉴는 국수 하나다.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만 판매한다. 하루 영업시간이 3시간에 불과하지만 입소문을 타면서 하루에 적게는 100그릇, 많게는 120여 그릇까지 팔린다.
경로당 유휴부지 68.7㎡를 활용해 만든 이 가게는 테이블 10개와 의자 26개를 갖춰놓고 있다. 하지만 밀려드는 손님 탓에 대기 줄은 일상이 됐다. 외부 손님뿐 아니라 주변 상인들의 방문도 많다.
이날 역시 문을 열기 10분 전부터 손님 3~4명이 모여들기 시작해 영업 시작 15분 만에 가게를 가득 채웠다. 대학생 김희정씨(24)는 “얼마 전에 친구들과 왔다가 재료가 다 떨어져 맛을 보지 못하고 돌아간 적이 있다”며 “구수하고 진한 멸치 등 냄새가 생각나 이번엔 엄마와 다시 찾게 됐다”고 말했다.
이곳 국수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가 많다. 인기 비결은 싼 가격이 아닌 신선한 재료에서 나오는 ‘맛’ 때문이라는 평가도 많다.
국수 면은 광주에서 생산된 100% 우리밀로 빚는다. 육수는 멸치와 다시마 등을 우려내 깊은 맛을 더한다. 밑반찬으로 제공되는 김치 역시 국산이다. 가게는 개업 전부터 최상의 맛을 내기 위해 연륜이 가득한 어르신들의 비결을 모아 조리법으로 만들었다.
천원 국시는 서구가 광주서구시니어클럽(시니어클럽)과 함께 노인일자리 창출 및 양동시장 활성화를 위해 추진한 사업이다. 서구청에서 5400만원을 지원했다. 그간 민간이나 대학교 구내식당을 중심으로 만든 저가 식당이 있었지만 구청이 주도해 시니어클럽·시장상인회 등과 함께 가게를 연 것은 천원 국시가 처음이다.
이 곳은 시니어클럽에서 지원나온 직원 1명을 비롯해 60대 이상 25명이 4~5명씩 돌아가며 시간제로 일한다. 이들은 노인 일자리 사업 보조금과 국수 판매 수익금 등을 따져 한 달에 35만원가량을 받는다.
서구는 천원 국시가 사회 은퇴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건강하고 활동적인 노후생활기반 조성에 기여하는 한편 안전한 먹거리 조성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서구 관계자는 “고물가 시대에 시민들에게 든든한 한끼를 제공하겠다”며 “앞으로도 맛 평가 등 이용자 만족도조사를 통해 국수 맛을 최상으로 유지해 나가는 데 관심과 지원과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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