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 될 뻔한 `인천 29층 창 구멍` 범인 어떻게 잡았나...집념의 `쇠구슬` 수사

경찰 수사진, 8mm 쇠구슬로 끈질긴 추적
쇠구슬 발사각과 발사 거리로 의심 세대 명단 확보
표면 꺼칠한 쇠구슬 판매업체 50곳 수소문해 구매자 확인

인천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한 고층 아파트에서 새총으로 쇠구슬을 쏴 이웃집 3곳 유리창을 파손한 혐의를 받는 60대 A씨가 19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인천 연수경찰서가 특수재물손괴 혐의로 60대 A씨를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17일 밝혔다. 사진은 쇠구슬로 깨진 아파트 유리창. [독자 제공=연합뉴스]

인천 송도국제도시의 32층짜리 한 아파트에서 쇠구슬을 쏴 이웃집 유리창을 깨트린 사건의 범인을 검거하기까진 고작 1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자칫 미제 사건으로 남아 더 큰 사고를 유발할 수도 있었던 이번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경찰의 끈질긴 수사 덕분이었다.

통상적으로 주택가에서 벌어지는 쇠구슬 발사 사건은 용의자를 잡지 못해 미제로 남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경찰이 옆 동 의심 세대의 쇠구슬 구매 내역을 확인해 빠르게 피의자를 검거할 수 있었다.

20일 인천 연수경찰서에 따르면 인천의 고층 아파트에서 유리창 파손 신고가 경찰에 접수된 건 주말을 앞둔 금요일인 지난 10일 오후였다.

오후 4시 50분쯤 이 아파트 거주자 A씨는 유리가 깨지는 듯한 요란한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다급하게 거실로 나와보니 3㎜ 두께의 유리 2장 중 바깥 유리에 3㎝ 정도 되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깨진 구멍 주변으로는 금이 가 있었다. 멀쩡한 창문 유리에 저절로 금이 갈리도 만무했고,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 게 더 수상했다. 더군다나 A씨 집은 지상에서 100m 높이인 29층이었다.

A씨의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11일과 12일 형사팀과 강력팀 수사관 20여명을 동원해 아파트 일대를 수색했고, 단지 1층 외부 인도에서 지름 8㎜짜리 쇠구슬 2개를 찾아냈다.

경찰은 쇠구슬을 찾은 다음 날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통해 유사 피해를 본 세대가 2곳 더 있다는 신고를 추가로 접수했다.

이후 깨진 유리창들을 분석해 발사각이나 발사 거리를 예측한 결과, 옆 동에서 쇠구슬이 날아왔으며 피해 세대보다 높은 층에서 쐈을 것으로 추정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사건 현장의 '탄도 레이저 분석' 통해 쇠구슬 발사 위치로 옆 동을 지목했다.

경찰은 쇠구슬을 날린 의심 세대를 10여곳으로 압축한 뒤, 세대원 명단이 확보되자 이번에는 쇠구슬 판매 업체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먼저 수백곳인 쇠구슬 판매 업체 중 겉이 정교하게 깎이지 않아 꺼칠꺼칠한 쇠구슬만 파는 업체 50여곳을 골랐다. 앞서 아파트 1층에서 발견한 쇠구슬 2개의 표면이 매끈한 공업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서울과 경기도 등지에 흩어진 업체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의심 세대원 중 구매자가 있는지 확인했다. 전화로는 협조할 수 없다는 업체에는 형사들이 직접 찾아갔다.

이틀간의 탐문 끝에 경기도의 한 업체에서 이번 사건 피의자인 B(61)씨의 이름을 확인했고, 사건 발생 1주일 만인 지난 17일 그를 체포했다.

최근 3개월간 업체의 구매기록을 확인한 결과 B씨는 5차례 이상 쇠구슬과 새총 등을 인터넷으로 직접 주문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의 집에선 무더기로 쌓인 새총과 쇠구슬외에 표적지와 표적 매트를 놓고 발사 연습을 한 흔적이 나왔다.

최근 구속된 B씨는 경찰 조사에서 "쇠구슬이 어디까지 날아갈 수 있을지 호기심이 생겨 실제로 쏴봤다"면서도 "특정 세대를 조준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경찰 관계자는 "보통 아파트 등 주택가에서 일어나는 쇠구슬 사건은 범인을 잡기가 쉽지 않아 미제로 남는 경우가 많다"며 "곧바로 의심 세대를 찾아다니며 탐문했다면 B씨가 새총과 쇠구슬을 모두 숨겨 사건이 장기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쇠구슬 구매자와 의심 세대원 이름을 대조해 피의자를 빨리 검거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박양수기자 yspark@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