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눈물 갚은 셔틀콕 천재, 안세영 시대 열렸다
2년 전, 도쿄에서 안세영(21·삼성생명)은 펑펑 울었다. 3년 동안 단 하루도 게으름 피우지 않고 정해진 일과대로 독하게 훈련했지만 꿈꿔왔던 올림픽 무대를 8강에서 마무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승하면 춤도 추고 관중석을 향해 화려한 세리머니도 할 줄 아는, 통통 튀는 10대 소녀였던 안세영은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안 된 거면,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거겠죠?”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안세영을 떨어뜨린 상대는 천위페이(25·중국)였다. 당시 세계랭킹 8위였던 안세영보다 한 단계 위인 랭킹 2위, 세계 최강자였다. 안세영은 한 번도 그를 이긴 적이 없었다. 네 번 만나 네 번 모두 졌던 천위페이를 올림픽에서, 하필 8강에서부터 만나 다섯번째 무릎 꿇은 안세영은 멈추지 않는 눈물을 닦아내며 “엄마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고 하셨는데 아직 있는 것 같다. 그래도 계속 도전해보겠다”고 했다.
안세영은 ‘천적’이라 불리던 천위페이에게 그 뒤에도 두 번을 더 내리 졌지만 굴하지 않았다. 8번째 대결이었던 지난해 7월 말레이시아 마스터스 결승에서 드디어 꺾어 ‘7전8기’를 쓴 데 이어 지난 1월 말레이시아오픈에서는 4강에서 만나 또 한 번 승리했다.
2승8패의 상대전적을 안고 다시 만난 것은 배드민턴 세계 최고의 무대 2023 전영오픈이었다. 안세영은 지난 19일 영국 버밍엄에서 열린 전영오픈 여자단식 결승전에서 천위페이를 2-1(21-17 10-21 21-19)로 꺾고 우승했다.
1세트를 따냈지만 2세트를 너무 무기력하게 내준 뒤 벌어진 3세트 대접전. 강력한 스매싱으로 공략하면서 뒤지던 점수 차를 가뿐히 뒤집은 안세영은 우승이 확정되자 시원하게 라켓을 던져버렸다. 관중석을 향해 뛰어오르며 어퍼컷을 날리고는 귀에다 손을 대고 팬들의 함성을 마음껏 즐겼다.
도쿄올림픽 이후 약 2년, 지금은 안세영이 세계 2위로 천위페이(4위)보다 랭킹도 높지만 그와의 천적 관계는 안세영의 가장 깨고 싶은 숙제 중 하나였다. 안세영은 올림픽 다음으로 가장 큰 무대, 전영오픈에서 그 숙적을 격파하면서 이제 완전히 숙제를 해결했다.
안세영은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동안 (천위페이와 대결에서) 여러 대회 경험들이 쌓여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내 경력에 한 획을 그은 것 같다.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동시에 한 단계 성장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 경기였다”고 메이저대회 우승의 감격을 드러냈다.
안세영이 천위페이를 꺾고 따낸 금메달은 한국 배드민턴 역사의 새 미래다. 1996년 방수현 이후 27년 만에 나온 한국의 여자단식 첫 금메달이다. 방수현 이후 전재연, 성지현 등 세계랭킹 상위에 랭크된 강자들이 있었지만 올림픽이나 전영오픈을 제패하는 꿈은 이루지 못했다.
중학교 3학년에 성인 선수들을 제치고 국가대표에 선발돼 역대 배드민턴 최연소 태극마크를 달아 ‘셔틀콕 천재’로 불린 안세영은 언젠가 한국 여자단식의 꿈을 이뤄주리라 가장 큰 기대를 받아왔다. 전영오픈 우승으로 진짜 방수현의 뒤를 이으며 만 스물 한 살에 명성을 입증했다.
현재 여자단식 세계랭킹 5위권 안에서도 2000년대생은 안세영이 유일하다. 1위 야마구치 아카네(26·일본), 3위 타이쯔잉(29·대만), 5위 허빙자오(26·중국)는 모두 20대 후반으로 접어들었다. 어리지만 독한 안세영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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