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시위, 시위, 시위하라!" 전직 대통령의 품격
2016년 제가 미국 연수를 마치고 귀국할 때쯤 미국은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 후보 간 대선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당시 모든 언론은 힐러리의 승리를 장담하고 있었지만 제가 연수하고 있던 지역이 보수색 강한 텍사스였던 터라 트럼프 바람이 심상치 않게 느껴졌습니다. '나홀로 집에' 깜짝 등장할 만큼 쇼맨십이 강했으니 당연한 것일까요? 어법부터 행동까지 기존 정치권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파격적 공약뿐 아니라 추문에서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해 말,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고 이후 스토리는 여러분도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여담이지만 당시 트럼프는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 남부 국경에 장벽을 세우되 미국 돈이 아닌 멕시코의 돈으로 세우겠다고 공약했습니다. 멕시코에서도 반발할 만큼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트럼프는 정치인들 상식으로나 불가능하지 자신은 사업가로 해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재임 시절 실제로 긴 장벽을 건설하긴 했는데 어디에서도 멕시코가 돈을 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제가 모르는 걸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미국 사회에서 왜 이런 지적이 없는지는 좀 의아합니다.)
의회 폭동 사태 겪고도…트럼프 "시위하라!"
트럼프 전 대통령을 둘러싼 가장 큰 이슈는 과연 그가 다음 대선에 출마할 수 있느냐입니다. 이를 결정할 가장 큰 변수는 대선 출마 때부터 시작해 재임 이후로도 꼬리를 물었던 각종 비위와 그에 따른 사법당국의 수사입니다. 특히 비밀 문건 유출과 자신의 회사 관련 세금 환급, 의사당 폭동 선동 등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트럼프는 바이든 정부가 공권력을 정치 무기화하고 있다며 반발하며 자신에게 적극 호응하는 지지자들을 방패막이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미 연방수사국 FBI가 트럼프의 플로리다 마러라고 별장을 압수수색했을 때가 좋은 예입니다.
그랬던 트럼프라 놀랄 일도 아닐까요? 현지시간 18일, 트럼프는 자신이 운용하는 소셜미디어에 '시위하라(Protest)!'며 마치 지지자들에게 폭동을 부추기는 듯한 메시지를 올렸습니다. 'Protest'이니 시위라고 봐야겠지만 잘 알려져 있다시피 트럼프는 2021년 1월 6일 의회 폭동 사태 때 자신의 지지자들을 말리기보다 오히려 이를 선동하는 듯한 발언으로 의회 조사를 받은 건 물론 정치적으로도 작지 않은 비난을 산 바 있습니다. 전례가 있으니 미국 언론에서도 이번 발언이 1.6 사태를 연상시킨다며 우려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현지시간 오는 21일, 그러니까 이번 주 화요일, '성추문 입막음' 혐의를 수사 중인 맨해튼지방검찰이 자신을 체포할 것이라며 지지층을 향해 행동을 촉구했습니다. 참고로 트럼프는 2016년 대선 직전 성인물 배우와 가졌던 과거 성관계를 숨기기 위해 회삿돈으로 합의금을 지급한 뒤 장부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아왔습니다. 현지 언론들도 검찰 수사가 현재 막바지 단계로, 기소가 임박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검찰 발표 전 선수 치기?…전직 대통령의 품격
현지 언론은 기소가 될 걸 예상한 트럼프가 검찰의 공식 발표 전 한발 앞서 이를 이슈화해 지지층의 분노를 부추기려 한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FBI가 마러라고 별장을 압수수색했을 때처럼 또 한 번 지지층을 들끓게 해 정치권은 물론 사법 당국까지 압박하려 한다는 겁니다. 여론이 악화되면 검찰도 어느 정도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노린 걸로 보입니다. 실제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한 한 지지자는 "그들(바이든 정부와 검찰)이 원하는 건 트럼프 전 대통령을 무너뜨리려는 겁니다. 트럼프는 이런 일을 당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가 걱정하는 건 우리, 국민뿐입니다. (All they want to do is take the man down, this man who does not deserve this. All he cares about is us, the people.)"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법적 판단 전이고 누구나 자기 주장이 있는 것이니 이 사람의 말이 맞다 틀렸다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현지 분위기 가운데는 '트럼프가 깨끗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현 정부에서 진행 중인 일련의 검찰 수사 역시 정치적 냄새가 나는 것 또한 사실이다'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설사 이런 분석이 사실이라 해도 자신의 정치적 안위를 위해 시위, 혹은 갈등을 부추기는 트럼프식 SNS 정치는 일반적인 민주국가에서 기대하는 전직 대통령의 품격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남승모 기자sm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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