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의 밑반찬

칼럼니스트 최은경 2023. 3. 20.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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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육아] 자식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싶은 마음

남편이 양손 무겁게 반찬 가방을 들고 퇴근했다. 안 봐도 뭔지 알 것 같았다. 시어머니가 며칠 전에 "반찬 뭐 해주랴?" 하고 물어보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반찬 수혈(!)에 나도 깜짝 놀랐다. 

가끔씩 어머니는 반찬을 과잉(?) 공급해 주시는데 그 내역을 읊어보면 우선 김치. 어머니는 김치를 일 년 내내 담그시는 것 같다. 만드는 김치에 따라 계절이 느껴질 정도다. 봄이면 나박김치에(이번에 왔다), 여름이면 열무김치와 오이소박이, 가을이면 배추겉절이, 겨울이면 알타리와 김장 김치까지. 김치 담그시는 것만으로 1년이 빠듯할 지경인데 그 사이로도 한 번씩 반찬을 만들어 주신다.

어머니가 해주신 반찬들. ⓒ최은경

입맛에 맞지 않으면 참으로 곤란할 상황인데 30년 가까이 먹어온 친정 집밥보다 결혼하고 나서 먹은 시어머니 밥이 훨씬 맛있다(엄마, 미안). 별거 아닌 것 같은데 똑같은 재료로 흉내를 내보려해도 어머니가 해주시는 그 맛이 절대 나지 않는다. 

어머니에게 비법을 물어도 "뭐 별거 있니... 그냥 양념 안 아끼고 넣는 건데"라고만 하신다. 그 말만 믿고 나 또한 양념을 아끼지 않고 아무리 무치고 볶고 지져봐도 "마늘 맛이 너무 난다", "기름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느끼하다"라는 식구들 타박만 듣게 되니 원. 대체 '안 아끼고 넣는 양념'은 대체 어느 정도의 양일까.

남편이 반찬을 들고 온 그날은 이미 저녁 밥을 먹은 터라 반찬통을 냉장고에 고이 모셔 두었다. 다음날 점심에 먹으려고 꺼냈는데 세상에나. 반찬통이 터져나갈 것처럼 냉이무침과 오이무침이 꾹꾹 눌러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오이무침으로 말할 것 같으면 결혼 후 18년을 먹었어도 전혀 물리지가 않는 그런 맛을 자랑하는 아이다. 

어머니가 해주신 오이무침. ⓒ최은경

언젠가 어머니가 해주시는 오이무침이 너무 맛있다고 하니 "손목도 안 좋아 물기 짜는 것도 쉽지 않아서 자주 해먹지도 못하겠다" 하셔서 표정 관리가 어려웠던 적도 있었는데 여기에 냉이무침까지 콤보라니. 갑자기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냉이를 사서 손질 한번 해본 사람은 이유를 알 거다. 이 냉이가 손질의 끝판왕이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해주신 냉이무침. ⓒ최은경

냉이 된장국을 한번 끓여보겠다고 냉이 한 팩을 샀다가 손질하느라 열불이 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이런 걸 또 사나 봐라" 씩씩 대면서도 뿌리까지 먹는 게 좋다는 말을 들어서(실제 냉이의 맛과 향은 뿌리에 있다고 한다) 흙을 씻어내느라 진땀을 뺐던.

먹는 건 잠깐인데 손질하는 시간은 어찌나 길던지 비효율의 대표 식재료라고 생각했던 냉이를 어머님이 손수 다듬어서 뿌리째 삶고 무쳐내신 거다. 숨도 못 쉴 만큼 꽉 찬 반찬통만큼이나 내 속에 뭉클함도 차 올랐다. 나처럼 어머니도, 자식들과 손녀들 좋은 음식 먹이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 같아서다. 

사실 나도 나물은 그다지 좋아하는 반찬은 아니다. 다만 결혼하고 아이 키우다보니 이건 알겠더라. 나물 반찬은 호불호를 따져서 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야말로 있을 때 먹어야 하는 귀한 음식이라는 걸 말이다. 내 손으로 만들어 먹지 않는 이상 먹을 수 없는 반찬이니까(나물 반찬 먹겠다고 굳이 외식하는 일은 거의 없지 않은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으로만 먹을 수 있는 거였다. 그 누군가는 대부분 엄마이고. 

게다가 이 봄 냉이는 어떤 식물인가.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온몸으로 싹을 틔워 봄에 처음 수확하는, 그야말로 에너지가 응축된 식재료가 아닌가. 오죽하면 냉이는 뿌리, 줄기, 잎 할 것 없이 모두 음식 재료와 한약재로도 사용했을까. 최근 환절기에 편도가 부어서 일주일 넘도록 고생한 내 몸에, 또 갑작스럽게 일이 늘어서 힘들어하는 남편 몸에 어머니가 주신 냉이의 에너지를 잘 비축해야겠다.

근데 뭐지? 이번 냉이무침은 달다. 단 맛이 난다. 원래 냉이는 씁쓸한 맛 아니었나. 대체 어머니는 또 어떤 양념을 아끼지 않고 넣으셨길래 쓴맛을 상쇄하고도 남을 단맛이 이렇게 잔잔하게 남아 있는 걸까. 뭐 안다고 한들 나는 흉내도 못 내겠지만.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성에 대해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서 성교육 전문가에게 질문한 성교육 책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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