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향한 도 넘은 악성댓글, 법으로 제한해야 할까

송진식 기자 2023. 3. 2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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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월 사회재난 뉴스 댓글 금지법 발의
시민단체 등 “표현의 자유 제한은 반대”
국가가 피해자·유가족 보호 문화 만들어야
이태원 참사 100일을 이틀 앞둔 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주간경향] 지난 1월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1명이 사회재난 관련 뉴스에는 독자 의견게시판(댓글창)을 만들지 못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정통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규정을 어긴 언론사와 뉴스를 제공하는 포털 등에는 위반 시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이 개정안의 골자다.

헌법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국내에서 인터넷 댓글을 규제하려는 과거 20년간의 시도는 늘 숱한 논란과 함께했다. 결과적으로도 실패였다. 2002년 첫 논의가 시작된 ‘인터넷 실명제’는 2006년에 ‘선거기간 인터넷 실명제’와 나란히 국회를 통과한 뒤 시행됐다. 인터넷 실명제는 이후 헌법재판소에서 만장일치로 위헌 결정(2012년)을 받았다. 선거기간 인터넷 실명제도 합헌(2015년)과 위헌(2021년)을 반복한 끝에 폐지됐다.

비록 제한 범위를 사회재난으로 한정했더라도 한 의원 등이 발의한 정통망법 개정안은 과거 인터넷 실명제보다 규제 수위가 더 높다. 실명 여부 확인 차원을 떠나 아예 댓글을 달지 못하도록 법으로 제한하기 때문이다. 이에 개정안에 대한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도 “입법이 힘들 것”이란 쪽에 무게가 실린다.

개정안이 나온 계기가 된 건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희생자와 그 유가족에게 쏟아진 온갖 모욕과 폭언, 조롱 등의 악성 댓글이었다. 우리가 지난 20년의 논쟁 속에 규제하지 않기로 결론 내린 댓글은 정말 ‘표현의 자유’를 위해 존재하는지 돌아볼 때가 됐다. 우리 사회가 희생자와 남겨진 가족들을 보호하고 위로할 수 있게끔 제도적으로, 의식적으로 성숙해 있는지도 개정안의 국회 통과 여부와 관계없이 여전히 되새겨봐야 할 문제다.

뉴스 이용자 10명 중 8명 “혐오 댓글 심각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12월 발간한 <‘이태원 참사’ 관련 보도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보고서를 보면 이태원 참사 관련 뉴스를 본 이용자의 79.5%가 댓글을 읽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포털에서 뉴스를 본 이용자의 69.5%가, 언론사 홈페이지에서 뉴스를 본 이용자의 64.2%가 참사 관련 혐오·인신공격성 댓글을 읽거나 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포털 뉴스 댓글을 본 이용자의 86.9%가, 언론사 홈페이지 뉴스 댓글을 본 이용자의 84.3%가 혐오·인신공격성 댓글에 대해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국민일보는 이태원 참사 당일인 지난해 10월 29일부터 11월 9일까지 참사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 123만여개를 분석한 결과 혐오가 포함된 댓글이 58.27%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댓글 10건 중 6건꼴이다. 해당 분석에서 혐오 댓글의 내용을 보면 절반이 넘는 51.12%가 욕설 등의 악플이었다.

한 의원 등은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최근 이태원 참사 관련 기사에 희생자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성 댓글들이 작성되면서 그 가족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고 있다”며 “댓글이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의견 표현을 넘어 특정한 개인 또는 집단의 비난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표현의 자유가 다른 사회구성원의 기본권 침해까지 이어지는 현재 상황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희생자의 댓글 피해와 더불어 불필요한 사회 갈등도 유발되고 있어 공동체 보호라는 측면에서도 조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개정안에서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언론사 및 인터넷뉴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포털 등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조 제1호 나목에 따른 사회재난과 관련된 기사를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거나 매개하는 경우 해당 기사에 대해 독자가 생산한 의견을 게재하는 게시판(댓글)을 운영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이에 따르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조 제1호 나목에 규정된 사회재난과 관련된 뉴스는 모두 댓글창을 의무적으로 닫아야 한다. 해당 조항에서 사회재난은 ‘화재·붕괴·폭발·교통사고(항공·해상사고 포함)·화생방사고·환경오염사고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규모 이상의 피해’로 규정돼 있다. 국가 핵심기반의 마비, 감염병 또는 가축전염병의 확산, 미세먼지 등으로 인한 피해도 사회재난에 해당한다.

사회재난이 워낙 다양하게, 예고 없이 발생하기 때문에 법으로 그 유형을 모두 정의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시행령에서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규모 이상의 피해’에 대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대처가 필요한 인명 또는 재산의 피해 ▲그 밖에 제1호의 피해에 준하는 것으로서 행정안전부 장관이 재난관리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피해 등으로 그 범주를 넓게 열어뒀다. 사회재난에 해당하는지의 판단을 정부가 하도록 했다.

댓글 규제의 대상이 되는 ‘사회재난’을 명확히 규정하기 어렵다 보니 ‘사회재난 뉴스’를 특정하는 문제도 간단치 않다. 예컨대 이태원 참사를 기사에서 단순 언급해도 ‘사회재난 뉴스’가 되는 것인지,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 대응을 주로 비판하는 기사도 ‘사회재난 뉴스’가 되는 것인지 등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시행령에서 ‘행안부 장관이 인정하는 피해’로 규정해 놓고 정작 그 기준은 마련되지 않은 것을 보면 사회재난을 구분하는 기준 자체가 모호한 것으로 보인다”며 “의무를 부여하고,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의 처벌을 내리려면 명확한 기준부터 마련하는 게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표현의 자유 보장해야”, “댓글 순기능도 고려를”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기본권 보호, 사회적 갈등 방지 등의 입법 취지에도 불구하고 댓글을 아예 쓰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는 지나치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오픈넷은 “개정안은 사회재난을 놓고 시민들 사이에서 다양한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가치에 역행하고, 국론 분열 방지를 이유로 전체주의적인 사고를 강요할 위험이 있어 그 자체로 정당한 입법목적이라 보기 어렵다”며 “사회재난과 관련한 모든 내용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으로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명백히 위배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오픈넷은 “이 같은 규제가 용인되면 다른 모든 온라인 뉴스 기사 섹션의 댓글 게시판을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이나, 나아가 뉴스 기사 댓글 게시판뿐 아니라 다른 형식의 인터넷 공론장도 금지하는 내용의 극단적인 법안들이 정당성을 주장하며 우후죽순으로 발의 및 통과될 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5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국회추모제에서 종교 추모의례 도중 두 손을 모아서 기도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사회재난 뉴스의 댓글창을 닫아도 피해자에 대한 혐오나 모욕 등이 근절될 가능성이 낮다는 점도 반론 사유다. 한 미디어 업계 관계자는 “과거 연예·스포츠 부문 뉴스의 댓글창을 폐지한 뒤 스포츠나 연예 관련 커뮤니티 등에서 혐오와 모욕 표현이 증가한 사례가 있다”며 “최근에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미디어나 매체를 통해 혐오가 양산되고 확산되는데, 이는 댓글을 막는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공론의 장으로서 사회재난 뉴스의 댓글이 갖는 ‘순기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정부가 재난에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 등 문제 인식을 공유하거나 참사를 위로하기 위한 통로로 댓글이 활용되는 경우도 많다”며 “문제가 있다면 임시로 댓글창을 닫거나 기존에 마련된 법을 통해 처벌하는 등 원칙을 가지고 대응을 해야 하지 차단하는 건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개정안의 계기가 된 이태원 참사 댓글 문제의 경우 유가족들이 개별적으로 댓글에 대응해왔다. 발의에 앞서 개정안을 놓고 유가족들과 의원들 간 별도의 협의 과정이 있었던 건 아니다. 김덕진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대외협력팀장은 “유가족과 대책회의 차원에서 각 언론사에 추모주간 등을 고려해 댓글창을 임시로 닫아달라고 요청한 적은 있지만, 법으로 규제하도록 해달라고 국회 차원에서 요청하거나 관련 협의를 한 적은 없다”며 “다만 일방적으로 희생자와 가족들을 폄훼하는 댓글이 많은 게 사실이고, 이를 악용하는 언론 역시 있는 게 사실인 만큼 일정 부분 규제는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민주당 내에서도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긴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발의에 참여한 의원들은 입법 의지가 상당히 강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반론이 많아 21대 국회에서 처리되긴 어려울 것”이라며 “개정안을 계기로 현재 댓글 규제의 문제점이나 언론사의 행태 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고, 관련 논의의 장이 열린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악성댓글은 제도와 인식의 미성숙이 가져온 산물

개정안에 대한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입법 찬성이 반대보다 약간 높게 나타났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지난해 11월 25~30일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국가적 재난이나 사고 발생 시 관련 뉴스 및 정보에 달리는 댓글을 차단해야 한다’는 질문에 절반이 넘는 55.8%가 찬성(매우 찬성 18.4%·약간 찬성 37.4%)한다고 응답했다. 가장 우선적으로 댓글을 차단해야 할 곳으로는 포털 뉴스 댓글(35.1%)을 가장 많이 꼽았다.

댓글 차단 대상으로 포털 뉴스를 우선적으로 꼽은 건 그만큼 포털들의 악성 댓글 대응이 미흡하다는 점을 의미한다. 포털 뉴스는 크게 기사를 클릭했을 때 포털을 통해 뉴스를 보는 ‘인링크(Inlink)’와 직접 해당 언론사 사이트로 연결되는 ‘아웃링크(outlink)’로 구분된다. 아웃링크 뉴스의 경우 댓글창 생성이나 관리 등은 전적으로 해당 언론사가 맡는다. 포털들은 인링크 뉴스의 댓글창을 관리한다.

양대 포털인 네이버나 다음의 댓글관리 방법은 유사하다. 비속어나 욕설, 혐오표현 등이 포함된 댓글을 아예 작성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해당 댓글을 자동으로 가려주는 인공지능(AI) 시스템을 기본적으로 운영한다. 여기에 더해 댓글 신고 제도 및 상습 악플 작성자에 대한 제재, 뉴스 이용자가 댓글을 스스로 가릴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가장 중요한 인링크 뉴스의 댓글창을 생성할지 닫을지 여부는 해당 언론사에 판단을 맡겼다. 악성 댓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포털들을 향해 “책임 회피”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언론사의 경우 포털 수준의 댓글 관리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을 뿐더러 사회재난 기사 댓글창 생성에 대한 문제 인식도 전반적으로 부족하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지난 2월 2일 참사 100일을 맞아 2월 3일부터 5일까지 사흘간 포털과 언론사에 참사 관련 보도 댓글창을 닫아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포털의 경우 다음은 자체적으로 관련 인링크 기사의 댓글창을 모두 닫았고, 네이버는 “각 언론사에 맡기겠다”며 요청을 사실상 거절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각 언론사의 대응을 모니터링한 결과 전체 언론사 45곳 중 12곳은 네이버 인링크 기사의 댓글창을 한 번도 닫지 않았다. 모니터링 대상 기사 217건으로 놓고 보면 요청에 응해 댓글창을 닫은 기사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105건이었다.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국회 추모제에서 희생자들의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댓글 문제에 대한 포털과 언론사들의 미지근한 대응은 ‘자율규제’에 대한 신뢰에 의문을 품게 만든다. 익명을 요구한 한 언론학자는 “포털을 통해 뉴스가 유통되는 국내와는 달리 해외에선 언론사 홈페이지에서 뉴스가 유통되고, 댓글도 해당 언론사에서 직접 관리하며 삭제나 차단하는 등 여러 제약을 가한다”며 “댓글을 달 자유가 무제한 보장되는 게 아니란 점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그는 “포털사들은 악성 댓글 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하고, 언론사들은 기사 페이지뷰를 높이기 위해 악성 댓글을 방조하는 행태까지 보인다”며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성 댓글들이 과연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에 부합하고, 여론이나 공론형성에 기여하는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월호 참사 때부터 사회재난과 치유 문제 등을 연구해온 유해정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는 “혐오·모욕 등의 댓글로 유가족이 겪는 고통과 아픔은 말로 헤아릴 수 없다”면서도 댓글창을 제한하는 개정안의 입법에 반대한다. 필요 없어서가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회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댓글 문제가 끊이지 않는 건 그만큼 우리 사회의 제도와 인식이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유 활동가는 말한다. 그는 “국가의 책임이 명료한 사회적 재난은 피해자들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하고 보호할 것인지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사회 인식도 피해자들을 옹호하고 보호하려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혐오를 줄여가야 한다”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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