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 인수타결로 시장 안도…그래도 긴축은 계속된다?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위기에 빠졌던 크레디트스위스(CS)가 스위스 최대 은행 UBS에 인수됐습니다. 인수 총액은 32억3000만 달러(4조2000억원)였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스위스 정부의 구제금융을 거절한 CS가 당시 스위스 정부 지원으로 살아난 라이벌 은행 UBS의 손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는 점을 다시 깨닫게 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은행발 위기'가 종료될까요. 시장은 아직 물음표를 던지고 있습니다. 은행발 위기의 진앙지인 미국과 유럽에서 투자자들의 불안은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미 중앙은행(Fed)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요. 인플레와 금융안정 중 어느 쪽 손을 들어줄까요. 오는 22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후 제롬 파월 Fed 의장의 발언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은행발 위기와 금리 결정을 중심으로 이번 주 주요 일정과 이슈를 정리하겠습니다.
'은행 위기' 진앙지 낙인 피하라
위기 때 가장 피해야할 게 있다면 1번입니다. 매를 절대 먼저 맞아선 안된다는 얘기입니다. 가급적 피하는 게 상책이지만 맞아도 버텼다가 뒤에 맞아야 합니다.
작금의 은행 위기 정국에서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되면 끝장입니다. 모든 고통을 혼자 감내해야할 지 모릅니다. 코로나19 시기에 1번 확진자가 갖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현재 각국들은 1번의 부실국가가 되는 걸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습니다. 미국은 미국대로 지역은행 2~3곳 정도로 이번 위기를 넘어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위스도 크레디트스위스은행(CS)을 살리기 위해 절치부심 중입니다. 다른 나라들은 아예 위기를 말이 나오지 않도록 철저히 단속하고 있습니다.
은행 위기를 결사적으로 피하려는 여러 방안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은행의 위기는 유동성 리스크입니다. '폰 뱅크런'을 통해 예금이 빠져나가는데 현금화할 자산이 없어 생긴 유동성 부족 현상입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엮인 투자은행(IB)들의 부실 투자가 원인이 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는 다릅니다.
파생금융상품으로 얽히고 설켜 누구까지 살려야하는 지 조차 가늠할 수 당시엔 전체 금융시스템을 살리기 위해 리먼 브러더스를 파산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시적 유동성 부족현상을 겪는 지금은 다소 결이 다릅니다. 다만 처음엔 유동성만 넣어주면 그만일 것 같았던 작금의 은행 위기가 쉬이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자본 증액이나 안전한 은행에 인수돼야만 일단락되는 형태로 바뀌고 있습니다.
양적긴축은 끝났다?
유동성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모범답안은 1차 위기 진앙지인 미국과 스위스에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1번은 미국에서 꺼내든 '모든 예금 전액 보호'라는 카드였습니다. 실리콘밸리은행(SVB)과 뉴욕 시그니처은행의 예금을 모두 지급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쓰지 않은 특단의 카드였습니다. 처음엔 시장에서 합격점을 받았습니다.
2008년엔 무이자 예금에 대해서만 예금자 보호한도를 넘더라도 보증을 해줬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전격적으로 모든 예금에 대해 보호를 해줬습니다.
그리고 중앙은행이 유동성 지원에 나섰습니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미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담보로 주면 액면가로 대출을 해주는 형태입니다. 이걸 해주지 않으면 미 국채의 위기 나아가 미국의 신용위기로 직결되기 때문에 1년짜리 즉시 담보대출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형태로 1주일간 119억 달러(약 15조5000억원)가 나갔습니다. 그리고 Fed로부터 일반 은행이 대출받는 재할인창구를 통해 1528억5000만 달러가 지급됐습니다. 총 1648억 달러(약 216조원)가 시중에 풀린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규모입니다.
Fed는 지난해 3월부터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대차대조표상 자산을 줄이는 양적긴축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해 6월부터는 미 국채와 MBS를 매각하는 형태로 매달 950억달러를 줄이기로 했습니다. 실제 축소 규모는 목표의 절반을 조금 넘습니다. 지난해 6월부터 올 2월까지 5000억 달러 정도의 국채와 MBS를 줄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양적긴축은 힘을 잃었습니다. 양적긴축 속도조절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양적완화입니다. 실제 3월 들어 Fed의 자산 규모는 늘었습니다. 금리인상이나 양적긴축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입니다. 은행 위기로 인해 Fed의 긴축 정책이 꼬이고 있는 것입니다.
은행별 옥석 가리는 기준은 수익성
미국 지역은행들은 여전히 사선에 있고 크레디트스위스가 완전히 신뢰를 회복할 지 미지수입니다. 조그만 악재에도 주가가 휘청이고 예금이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다행인 건 이미 노출된 악재로 치명상을 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점입니다.
문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다른 위험입니다. 가령 유럽과 아시아의 은행은 어떨까요. 미국이나 스위스처럼 안전자산에 속하는 화폐와 국가 채권을 가진 나라는 그래도 괜찮습니다. 방파제 역할을 해주지 못하는 나라의 은행은 위기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요.
이합집산 형태인 유럽연합(EU) 내 이탈리아나 스페인 은행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한국 내 은행권은 안정권일까요.
아무래도 향후 은행들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수익성이 될 전망입니다. 현재 구조에서 돈을 벌지 못하면 주주들과 예금자들은 바로 등을 돌릴 수 있습니다.
지금도 적자인데 예금이 빠지면 조달금리가 올라가고 수익성은 더욱 악화되고 그렇게 되면 또다시 예금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습니다. 어닝시즌에 은행주 실적에 따라 변동성이 극도로 커질 수 있습니다.
은행위기가 끝나는 조건
은행발 위기는 언제쯤 끝이 날까요. 근본적으로 Fed가 기준금리를 내리기 전까지 계속될 전망입니다. 고금리가 지속되는 한 은행들의 리스크가 사라지기 힘듭니다.
상당수 은행들은 이미 저금리로 30년 고정금리 대출을 해줬는데 금리가 너무 빨리 올라 수익성을 맞추기 힘들었습니다. 이게 정상화되려면 금리가 떨어져야 합니다. 이런 상황을 아는 파월 의장도 기준금리를 빨리 올리기 힘듭니다.
3월 FOMC에선 25bp 올릴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동결 가능성도 올라가고 50bp 인상 가능성은 사라졌습니다. 만약 금리를 더 빨리 인상하면 국채 가격이 떨어져 국채를 보유한 은행들은 더 위험해집니다.
이번 FOMC에서 금리 인상폭보다 더 중요한 건 최종금리입니다. 금리를 어디까지 올릴 지가 관건입니다.
인플레가 잠잠해지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시장은 더 큰 불안에 떨 수 있습니다. 인플레도 안 잡히고 은행발 위기라는 산불도 안 잡힌다면 패닉에 빠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의도치 않게 은행발 위기가 인플레 정국의 '게임체인저'가 됐습니다. 뜨거운 노동시장도 끈적끈적한 물가도 모두 집어 삼킬 태세입니다. '노 랜딩'은 오간데 없고 경기침체 가능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현 시점에선 물가와 고용 안정 대신 금융시장 안정이 Fed의 최우선 의무가 돼야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이달 9일 실리콘밸리은행(SVB)의 뱅크런 소식이 전해진 지 2주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번 주에 있는 FOMC의 결정과 글로벌 금융시장 향방이 '은행발 위기가 일시적이냐' 여부를 판가름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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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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