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산불 상처 여전한데…전국 산불 위험 '고조' 비상

강원영동CBS 전영래 기자 2023. 3. 20.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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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산불 1년 지났지만 곳곳에 피해 흔적
피해 주민들 또 '악몽' 재현될까 불안
전국 대부분 지역에 건조특보 발효
지난 주말·휴일에만 산불 19건 발생
산불재난 위기경보 '경계'…총력 대응
지난해 3월 4일 밤 강풍을 타고 확산하는 삼척 산불. 삼척시 제공

지난해 3월 강릉·동해, 울진·삼척에서 대형산불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났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왔지만, 산불 피해지는 말그대로 '황량'했다. 복구작업이 여전히 진행 중인 가운데 숯덩이처럼 타버린 피해목 벌채가 이뤄지면서 화마가 휩쓸고 간 산림은 나무 밑둥만 남은 채 벌거벗은 민둥산으로 변해 있었다. 특히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과 주민들은 최근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자 또다시 악몽이 재현되는 것은 아닌 지 노심초사하며 불안에 떨고 있다.

대형산불 1년…아물지 않은 상처

지난해 3월 발생한 대형산불로 강릉시 옥계면 일대가 민둥산으로 변한 모습. 전영래 기자

지난 17일 찾아간 강릉시 옥계면 남양2리. 지난해 3월 화마가 휩쓸고 간 산불 피해지에서 만난 주민들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최근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는데다 간간히 바람까지 강하게 불면서 '악몽'같은 산불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일부 주민들은 "잊을만 하면 반복되는 산불에 정말 '트라우마'가 생겼다"며 치를 떨기도 했다.

주민 전양순(67)씨 "여기서 큰 산불을 두 번 겪었는데 요즈음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고 바람도 많이 불고 하면 너무 무섭고, 이 시기에는 하루하루가 불안하다"고 하소연했다.

산불로 40년 넘게 살던 삶의 보금자리를 한 순간에 잿더미로 변한 모습을 지켜 본 김옥자(93) 할머니는 기자를 보자마자 "왜 (내가) 안 죽소"라는 말부터 건네며 눈시울을 적셨다.

산불로 40년 넘게 살던 삶의 보금자리를 한 순간에 잃은 김옥자(93) 할머니가 임시주택 앞에 앉아 1년 전 산불을 회상하고 있는 모습. 전영래 기자


김 할머니는 "그 날 윗집에서 날 깨우지 않았으면 그냥 죽었지 뭐. 막 문을 두드려서 나가보니 집 근처의 산에 불이 다 붙었어…입고 있던 옷하고 장화만 신고 나왔어"라며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회상했다.

그러면서 "마을회관으로 대피한 뒤 나중에 와보니 집이 흔적도 하나도 없고 아무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때 얼마나 울었는 지 정신을 잃었고, 지금까지도 제정신이 아닌채 살고 있다"며 "얼른 죽었으면 이런 꼴을 겪지 않았을텐데…지난 겨울 얼마나 추웠던지 전기 장판을 틀고 이불 속에서 나오지도 못했다. 겨울을 또 맞이할까봐 무섭다"고 푸념했다.

산불 이후 현재 임시주거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할머니는 삼척에 살고 있는 둘째 아들이 자주 찾아와 돌보고 있지만, "한 평생 살아온 마을을 떠나지 못하겠다"며 열악한 환경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역대급 피해…더디기만 한 일상 복귀

동해안 산불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17일 오후 강릉시 옥계면에서는 벌채가 진행되고 있다. 전영래 기자

지난해 3월 4~13일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 강릉과 동해에서 발생한 '동해안 산불'로 산림청이 집계한 산불피해 면적은 2만 523㏊. 서울 여의도의 70배, 서울 전체 면적의 3분의 1에 달하는 규모다. 울진 1만 4140㏊, 강릉 1455㏊,, 동해 2735㏊, 삼척 2162㏊ 등이다.

당시 울진지역에서는 이재민 181세대가 발생했다. 이 중 현재 17세대가 주거지로 복귀하고 절반 가량인 74세대가 착공신고 등 복구를 추진 중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강릉과 동해, 삼척에서도 산불로 최초 51세대 8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현재 47대 73명이 임시조립주택과  LH임대주택 등에서 지내고 있다. 이 중 20여 세대가 신축이나 임시조립주택 매입 등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는 등 일상으로의 복귀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산림당국 등은 산사태 예방 등 응급복구는 장마철 이전에 모두 마무리하고, 불에 탄 나무의 긴급벌채와 도로 및 상하수도시설 등은 올 연말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복구 조림은 올해부터 연차적으로 진행한다는 계획이지만, 민둥산으로 앙상하게 변해 버린 산림이 제 모습을 찾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걸릴 전망이다.

울진·삼척지역은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등 4789ha를 대상으로 오는 2027년까지 325억 원을 투입해 생태복원사업을 추진하고 향후 10년 동안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한다. 산림생태복원은 자생식물 및 돌, 흙, 나무 등 자연재료와 피해목의 움싹이나 주변 나무에서 떨어진 종자를 자연 그래도 이용하고, 부분적으로 산림을 관리·보완하는 방식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기후위기에 따른 생물 다양성 감소 등으로 생태복원이 국제적으로 중요한만큼 산불 피해지 등 산림 훼손지에 대한 산림생태복원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건조한 날씨 산불 위험↑…전국서 산불 잇따라

기상청 홈페이지 캡쳐
올해도 3월 들어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산불 위험이 커지고 있다.

19일 기상청에 따르면 서해안과 남해안 지역을 제외한 전국 대부부 지역에 건조주의가 발효 중이다. 특히 경기도(성남, 구리)와 서울(동남권, 동북권)에는 건조경보가 발령되는 등 전국적으로 대기가 매우 건조한 상태다.

여기에 간간히 바람도 강하게 불고, 산불 확산에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낙엽의 수분 함량도 바닥을 치면서 불티 하나에도 대형산불이 날 수 있는 조건이 다 갖춰진 상황이다. 동해안의 경우 불에 잘 타는 소나무가 많은 점도 대형산불 위험을 더욱 키우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 18일 오후 4시 44분쯤 강원 평창군 진부면 신기리의 한 야산에서 불이 나 산림당국이 야간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산림청 제공

이런 가운데 지난 주말과 휴일 곳곳에서 산불이 잇따랐다. 지난 18일 오후 4시 40분쯤 강원 평창군의 한 야산에서 불이 나 산림 15h를 태우고 9시간 만에 진화됐다. 같은 날 오후 9시쯤 전남 순천에서도 산불이 발생해 산림 15ha를 잿더미로 만들고 12시간 만에 꺼졌다.

두 산불 모두 바람을 타고 번지면서 한때 대응 1단계까지 발령돼 일부 주민들이 대피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19일 오후 5시 기준 주말과 휴일 이틀 동안 강원, 충북, 전남 등 곳곳에서 18건의 산불이 잇따르는 등 산불 발생위험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대기가 매우 건조하고 낮 동안 바람이 약간 강하게 부는 곳도 있어 작은 불씨가 큰불로 번질 수 있으니 논·밭두렁 태우기와 쓰레기 소각 등 불씨 관리에 철저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봄철 50% 이상 발생…산림당국·지차제 총력 대응

산불진화 현장에 투입된 헬기.
산림청이 지난 2003년부터 2022년까지 20년간 산불 발생 추이를 분석한 20년 동안 연평균 산불 발생 건수는 535건이며, 산림 피해 면적은 평균 558ha로 나타났다. 특히 3월부터 5월까지 연평균의 56%인 303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봄철 중에도 3월에 가장 많은 평균 129건의 산불이 났다. 4월이 119건으로 뒤를 이었다.

산불의 원인은 입산자 실화가 32%로 가장 많았고, 논·밭두렁 소각 13%, 쓰레기 소각 12%, 담뱃불 부주의가 6%로 나타났다. 최근 10년간 산불을 낸 2141명이 검거돼 징역 등의 처벌을 받았다. 지난해 3월 방화로 강릉시 옥계와 동해시 일대 산림 4190ha와 주택 80채가 불에 타게 한 60대 남성은 징역 12년이 확정됐다.  

산림청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9일 0시 기준으로 발생한 산불은 벌써 280건을 넘어서고 있다. 지난 10년 같은 기간 평균인 176건의 1.5배를 훌쩍 넘는 수준이다.

이에 산림청과 행정안전부는 지난 6일부터 산불재난 국가위기경보를 '경계' 단계로 격상해 산불예방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특히 대형산불 위험이 큰 동해안 지역에는 선제적으로 소방력을 전진배치하고, 각 지자체들도 봄철 산림화재 특별경계근무에 돌입했다. 강릉시도 오는 4월 30일까지 산불방지 특별 기동점검반을 편성하고 산불 피해 최소화를 위한 총력 대응에 나섰다.

산림당국 관계자는 "산림 100m 안에서 소각하다 적발되면, 산불을 내지 않더라도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고, 실수로 산불을 낼 경우에는 강화된 법 적용을 받게 된다"며 "산불의 경우 실화 가능성이 높은 만큼 불을 낸 사람을 추적해 책임을 물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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