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인력 공백 막을 대책 세워달라”
재배 축소·영농 포기 농가 속출
인력 고용 적발땐 범칙금 폭탄
여주 농민들 정부에 대안 촉구
코로나19가 안정화하면서 정부가 대대적인 불법체류 외국인 단속에 돌입했다. 하지만 농번기를 앞둔 시점에 무리하게 단속이 이뤄지면서 농사가 중단되고 농민이 범법자로 몰리는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불법체류 외국인 단속은 코로나19 사태로 한동안 중단됐다가 지난해말 일부 재개됐다. 단속이 본격화한 건 이달부터다. 법무부는 3월2일∼4월30일 고용노동부·국토교통부·경찰청·해양경찰청 등 4개 부처 합동 단속을 전개한다고 최근 밝혔다.
단속은 농촌에 즉각적인 파장을 몰고 왔다. 인력난이 극심한 농업현장에서 불법체류자들의 일손을 빌리는 것이 ‘불편한 현실’이어서다. 내국인은 농사일을 기피하고, 합법적인 제도만으로는 인력을 충당하기 어려운 탓에 농민들은 불법체류자에게 농작업을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문제는 인력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속이 전에 없이 강화됐다는 점이다. 최근 인삼과 고구마 작업 등으로 분주한 경기 여주·이천 지역 농가에 따르면, 과거 외국인 거주지 중심으로 이뤄지던 단속이 최근 인삼포나 고구마 육묘장 등 현장까지 확대됐다. 고구마농가 김진태씨는 “과거엔 한번 단속 나온 지역은 며칠간 (재단속을) 나오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짧은 주기로 같은 지역을 단속하는가 하면 근로자들이 탄 버스째 연행하기도 한다”면서 “당장 외국인들이 잡혀간 것도 문제지만 불법체류자들 사이에 ‘밭에 나가면 추방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일손 구하기 자체가 어려워졌다”고 전했다.
높은 단속 수위에 농민들은 올해 농사를 포기하거나 영농규모를 크게 축소하는 지경으로 내몰렸다. 66만1157㎡(20만평) 규모로 인삼농사를 짓는 유근무 한국인삼6년근경작협회장은 “3월초∼4월 중순 인삼 파종을 못하면 6년 농사를 망치는 셈인데, 계절근로자는 아직 배정받지도 못했고 내국인은 돈을 줘도 구하기 어렵다”면서 “불법체류자까지 단속하면 농사를 포기하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농가들이 한순간에 범법자로 몰린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불법체류자를 쓰다 적발되면 고용 인원과 기간에 따라 300만∼3000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되는데, 이를 미납하거나 고용 인력·기간이 일정 정도 이상이면 검찰에 고발되기도 한다. 여주의 친환경농가 고모씨는 “고구마 선별장에 단속반이 들이닥쳐 12명이 체포되고 범칙금 2700만원을 부과받았는데, 납품기일을 맞추려고 어쩔 수 없이 다시 외국인들을 썼다가 재차 단속에 걸려 범칙금 1800만원이 추가됐다”면서 “절망스러운 상황에 농사 포기는 물론 극단적인 선택도 시도했었다”고 털어놨다.
전국이 본격적인 농번기로 접어들면 이런 문제는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농가 강형섭씨는 “통상 외국인 근로자가 일손이 필요한 지역을 순회하는데, 이번 단속으로 다른 지역도 연쇄적으로 문제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17일 기준 여주에서만 130∼140명, 전국에서는 8000∼9000명이 단속된 것으로 파악된다. 2018년 상반기 8400명, 2017년 상·하반기 1만3300명에 견줘 짧은 시간에 많은 단속이 이뤄진 셈이다.
법무부는 올해 분기별 한차례씩 모두 네차례 단속을 벌인다는 구상이다. 코로나19 사태 전에는 통상 상·하반기로 나눠 두차례 단속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최근 코로나19가 안정되면서 단기 비자로 입국했다가 불법으로 체류하는 외국인이 늘어 단속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농가는 단속에 앞서 농촌인력 대안이 필요하다고 요구한다. 17일엔 여주지역 농민 약 100명이 여주시청 앞에 모여 정부에 단속 중단과 농촌인력 대안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치권도 정부에 대안을 촉구했다.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경기 여주·양평)은 “합법적으로 농촌에서 일하는 인력이 전체 외국인 근로자의 10%에 불과한 상황에서 단속에 앞서 대책을 먼저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