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 휠체어를 가로막는 계단은 언제 체포되나?
한국의 내로라하는 워커홀릭의 이름을 내려 적는다면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의 이름을 빼놓아선 안 될 것이다. 그는 밤늦은 시간까지 회의를 해도 매일 아침이면 새로운 제안서나 밤새 떠오른 시상 같은 것이 곁들여진 성명서를 불쑥불쑥 들이민다. 그래서 활동가들은 박경석 대표에게 항의하는 일도 잦다. ‘밤에는 좀 주무세요! 일정을 줄여야 합니다!’
그럴 때면 박경석 대표가 내미는 전매특허 오리발이 있다. “나는 장애를 입고 방에만 있어서 이제 쉬는 게 정말 싫은데!”라며 따진다. 결론적으로 일은 회의를 통해 조정되거나 분담되지만, 이 말을 듣고 나면 박경석 대표에게 ‘그만 좀 하시라’ 말하긴 싫어진다. 해병대를 전역한 청년 박경석은 취미로 즐기던 행글라이더와 함께 토함산에서 추락했다. 움직이지 않는 다리는 그의 삶을 방에 가뒀다. 슬픔조차 느낄 수 없던 5년의 시간 동안 박경석 대표는 텅 빈 무감각의 시간을 헤맸다고 한다. 휠체어를 탄 사람은 갈 곳도, 이동할 방법도 없었다. 그 시간을 상상하면 쉬라는 말이 남다른 이유를 깨닫게 된다.
이는 박경석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장애를 가진 다른 동료들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옛날얘기가 아니라 지금도 그렇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이들 가족의 삶도 함께 멈춘다. 장애와 빈곤, 질병과 같은 보편적 위기 앞에서 우리 사회는 가장 먼저 가족을 호출하고, 최대한 마지막까지 각자 해결하기만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사이에 스스로 세상을 떠나거나 화재, 수해 등 참사에 휘말린 이들의 숫자를 헤아릴 수가 없다.
그래서 장애인의 이동과 노동, 탈시설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전장연의 요구는 단지 언젠가 달성하고 싶은 미래의 꿈이 아니라 이미 박탈당한 시간에 대한 복수다. 경찰과 몇몇 정치인들은 체포와 구속 같은 겁박으로 전장연의 시위를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는 이들이 건너온 세월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정부가 상대해야 하는 것은 지하철역에 모여 있는 한 줌의 사람들이 아니라 장애를 가진 시민들이 겪은 차별의 역사, 부조리했던 모든 시간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전장연의 장애인 권리예산 요구에는 응답하지 않다가 박경석 대표에게 체포영장을 보냈다. 지난 17일, 경찰에 출석한 박경석 대표는 우리는 흉악범도 아니고 경찰을 피해 도망갈 곳도, 도망칠 수단도 없다며 “국가가 지켜야 할 편의시설도 지키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도망가겠는가” 되물었다. 갈수록 세상은 중층의 위기에 빠져들고 있는데, 정치는 표피만을 다루는 데 지나치게 열중한다. 전장연의 장애인 인권에 관한 수많은 요구를 무시한 채 ‘지하철 정차 여부’만 문제 삼고자 하는 일 역시 이를 닮았다. 전장연 시위가 불법이라면 휠체어를 가로막는 계단은 언제 체포되나?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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