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드리운 ‘미분양 악몽’…그때는 대형, 지금은 지역 양극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달리
대형 주택 적고 60~85㎡ 규모 많아
올해 전체 물량도 당시의 절반 수준
“실거주 수요 있어 리스크 낮을 것
대구·경북지역 위기로 끝날 수도”
조정기에 접어든 부동산 시장에 ‘2008년의 악몽’을 불러온 미분양 폭탄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휩쓸고 간 2008년은 전국 미분양 주택이 역대 최고인 16만가구를 넘어섰던 해다. 올해 1월 미분양 주택은 약 7만5000가구로, 절대량 자체는 2008년의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대구 등 지방 미분양 증가세가 가파르고, 고금리·고물가로 건설사 줄도산 우려가 커진다는 점은 닮아 있다.
그때 미분양엔 있고, 지금 미분양엔 없는 것도 있다. 바로 ‘국민평형’(전용면적 84㎡)보다 큰 대형 주택이다. 2008년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앞두고 건설사들이 ‘밀어내기 공급’한 대형 주택은 전체 미분양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짧게는 4년, 길게는 10년 넘게 ‘악성재고’ 신세를 면치 못했다. 당시 대형 주택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던 데는 건설사들의 수요·공급 예측 실패도 있지만, 저출생과 핵가족화라는 생활패턴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측면도 컸다.
일각에선 “최근 미분양의 70% 이상이 실거주자 수요가 많은 60~85㎡ 규모로 상대적인 리스크는 (2008년보다) 낮을 것”(2023 KB부동산보고서)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경향신문은 2008년과 2023년 전후 규모별 미분양 주택 현황을 비교해봤다.
■ “2년 살아보고 반품하세요”
부동산 활황기였던 금융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대세’는 85㎡ 초과 대형 주택이었다. 건설사 입장에선 더 비싼 값을 매길 수 있는 대형 주택이 수익성 면에서 더 나은 선택이었다. 수요자들도 ‘이왕이면 큰 주택’이라는 심리가 있었다. 정부 역시 광교·판교 등 수도권 신도시 공급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건설사들이 분양가상한제 적용(2007년 9월 이후)을 피하기 위해 ‘밀어내기 분양’에 나서면서 중대형 평수의 과잉공급이 본격화됐다. 2007년 상반기만 해도 미분양의 95%는 지방이었으나, 하반기부터는 수도권 미분양 물량도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팀 수석연구원은 “2007년 상반기 인허가를 받은 주택은 분양가상한제 적용에서 면제되다보니 2008년 전후 분양한 주택은 고분양가 논란이 컸다”며 “이명박 정부가 ‘반값주택’으로 불린 보금자리주택을 강남 등 수도권에도 공급하면서 민간분양 인기가 더 식었다”고 했다.
20일 국토교통부의 미분양 현황 통계를 보면 2007년 11만2254가구였던 미분양은 2008년 16만5599가구로 정점을 찍은 뒤 2009년 12만3297가구로 감소했다. 이 중 전용면적 60~85㎡ 주택 비율은 47.7%→42.2%→38.8%로 점차 감소한 반면, 85㎡ 초과 주택 비율은 47.2%→53.4%→56.5%로 늘었다.
2010년 분양시장이 활기를 되찾기 시작하면서 중소형 미분양은 빠른 속도로 줄었다. 반면 수도권에 집중 공급된 대형 평수는 이후로도 한동안 애물단지로 남았다. 1~2인 가구가 늘어난 데다 전용면적 59·84㎡도 ‘방 3개·화장실 2개’ 구조로 효율화되면서 굳이 큰 평수를 선택할 유인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건설사들은 중대형 평수에 한해 20~30% 분양가 할인, 발코니 확장 무료 옵션, 중도금 무이자 혜택을 제공하며 ‘재고 처리’에 나섰다.
현대건설과 GS건설이 시공한 경기도 용인 ‘수지성복힐스테이트&자이’는 분양 개시 후 무려 10년이 넘도록 물량을 털어내지 못하며 ‘악성재고’로 남았다. 계약 2년간 살아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시행사가 되사주는 파격 마케팅까지 동원했지만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미분양 증가로 유동성 위기를 겪던 동부건설은 2013년 월 230만~800만원의 생활비 지원(남양주 도농센트레빌), 건설사 보유분에 한해 전세계약(인천 계양센트레빌)이라는 특단의 조치까지 동원했다. 대형 미분양은 정부의 주택대출 규제완화에 공급 자체가 줄어든 2014년이 되어서야 사실상 소진됐다.
■ 2023년 애물단지는 소형 미분양?
이후로는 85㎡ 초과 대형 평수 물량 자체가 빠르게 사라지며 전용면적 59·84㎡ 구조가 사실상 세팅됐다. 2023년 1월 기준 전국 미분양의 73.3%는 실수요가 많은 60~85㎡ 주택이다. 85㎡ 초과 대형(11.8%), 40~60㎡ 소형(11.7%), 40㎡ 이하 초소형(3.2%)이 그 뒤를 이었다.
업계에서는 평형별 양극화가 심했던 2008년 이후 미분양과 달리, 최근의 미분양은 지역별 양극화가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대구·경북 미분양 아파트는 전체 미분양의 30%를 차지했다. 반면 부산·제주·서울·광주·세종의 미분양은 모두 합쳐도 전체의 10%를 넘지 않았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중요한 것은 공급 대비 수요”라며 “2008년과 달리 서울·수도권은 수년간 주택 공급이 워낙 부족했고, 정부도 공공주택 공급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이 아니어서 대구·경북발 미분양이 전국으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미분양이 적은 서울에서도 정부의 아파트 규제를 피할 수 있는 ‘대체 투자 상품’으로 인기를 끌었던 소형 주택은 애물단지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1월 서울 민간 미분양 주택의 68%는 전용면적 60㎡ 이하 소형 주택이었다. 그중에서도 전용면적 40㎡ 이하 초소형 주택이 전체의 33%를 차지했다.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의 경우 전체(342가구)의 27%가 40㎡ 이하였다. 업체별 현황을 뜯어보면 2인 이상이 실거주하기 힘든 비좁은 면적임에도 주변 아파트 시세를 훌쩍 뛰어넘은 ‘배짱 분양가’를 책정한 도시형생활주택이 대부분이다.
신세계건설이 마포구 노고산동에 지은 도시형생활주택 ‘빌리브드에이블’은 신촌역·서강대역 더블 역세권임에도 전용면적 38~49㎡ 분양가가 7억8000만~13억7000만원에 달해 지난해 4월 계약 마감 후 현재까지 95%가 미분양 상태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아파트를 대체할 수 없는 소형 오피스텔은 부동산 호황기에 투자 수요를 타고 우후죽순 생겨났지만, 지금 같은 시장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최근에는 2인 가구도 중소형 이상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삶의 질에 대한 기준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이라고 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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