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건설사, 공정위·국세청 등 ‘전관’ 선호…공직 퇴직 후 곧장 ‘환승’도 빈번

박상영 기자 2023. 3. 19. 21:1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세계 사외이사 후보에 전 공정위 상임위원·지방국세청장
법조인 출신 사외이사, 회사 법률 대리 맡는 ‘독립성 훼손’도

기업들이 관료 출신 ‘권력형 사외이사’를 선호하는 것은 검찰·국세청 조사 등 위기 발생 시 해결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내수 비중이 높은 유통·건설업에서 전관 출신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 기업들 간 영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공직을 그만둔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사외이사를 맡는 사례도 있었다.

올해 신세계 사외이사 후보에는 곽세붕 전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과 김한년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이 이름을 올렸다. 검찰 출신 영입에 공을 들여 이마트는 이상호 전 대전지검장을, 광주신세계는 이건리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을 사외이사 후보에 선임했다. 현대백화점은 채규하 전 공정위 사무처장을, 현대그린푸드는 국세청 조사국장을 지낸 임경구 현 세무법인 케이파트너스 회장을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건설사도 사정기관 출신 영입에 적극적이었다. 호반건설 계열사인 대한전선은 올해 사외이사에 검찰(이동열 전 서울서부지검장), 국세청(현석 전 국세청 자산과세국 자본거래과장), 공정위(노상섭 전 공정위 시장감시총괄과장) 출신을 골고루 채웠다.

관료 출신 중에는 공직 퇴직 후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기업 사외이사로 직행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번 주주총회에서 이억원 전 기획재정부 1차관은 LF에, 안도걸 전 기재부 2차관은 삼성바이오로직스에 각각 사외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LG에너지솔루션도 박진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을 사외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이들은 모두 지난해 5월 임기가 끝난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차관이었다.

법조인이 퇴직 후 총수 일가 소송을 대리하는 로펌에 재취업하면서 독립성 훼손 우려 사례도 생겼다. 김소영 전 대법관이 소속된 김앤장은 그가 사외이사로 선임된 효성이 2018년 공정위에서 사익편취 혐의 등으로 고발당하자 해당 사건을 대리했다. 김앤장은 삼성화재 노동자들이 임금피크제로 인한 임금 삭감과 관련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사측을 대리했는데, 김 전 대법관은 삼성화재 사외이사에도 선임됐다.

주주 의결권 자문기관인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회사나 지배주주 일가와 법률대리 또는 자문 계약을 체결한 로펌에 속한 인사는 사외이사로서 독립성이 부족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효성은 김 전 대법관뿐 아니라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을 지낸 유일호 전 새누리당 의원과 성윤모 전 산업부 장관도 사외이사진에 포함시켰다.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했던 최윤수 전 국가정보원 2차장(검찰 출신)도 효성중공업 사외이사 후보에 선임됐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최 전 차장은 올해 1월 특별사면을 받았다. 복수의 기업에 사외이사 후보로 이름을 올린 사례도 있다. 곽세붕 전 상임위원은 신세계와 현대로템 사외이사 후보에 선출됐고, 삼성전기 사외이사에 지명된 재정경제부(현 기재부) 출신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은 CJ 사외이사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결국 사외이사들이 ‘내부 감시’보다 ‘외부 활동’에 주력하다보니 경영권 감시라는 본연의 역할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공정위가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 67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21년 5월1일부터 2022년 4월30일까지 이사회에서 사외이사 반대로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은 전체 8027건 중 55건(0.69%)에 그쳤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