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재 이름 ‘포공영’ 대신 ‘민들레’로 부른다면, 자연과 성큼 가까워질 텐데[알아두면 쓸모 있는 한의과학]
지난해 주택으로 이사를 오고 난 후에 작은 마당이 하나 생겼다. 집 안에 흙이 있다 보니 아무래도 사계절의 변화를 좀 더 쉽게 느낄 수 있다. 한겨울 추위가 조금 꺾이나 했더니 어느새 목련과 개나리에 꽃망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나무 밑에는 냉이와 꽃다지도 슬슬 올라오려 하고 있다.
뉴스를 보니 이미 남쪽에선 개나리와 진달래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요맘때쯤이면 하루하루 어떤 꽃들이 새로 올라오는지가 관심사 중 하나다.
학부모로 대전에 살다 보면 지방자치단체와 대덕특구의 영향으로 과학과 관련해 참여할 행사가 많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도 연구소에 재직하는 부모들이 매년 참여해 일일 과학교사가 되는 프로그램이 있다. 아이들에게 과학은 어렵고 다가가기 힘든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고 손쉬운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목적이다. 필자는 그 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항상 꽃 이야기를 들려준다.
꽃은 식물을 감별하기 위한 가장 직관적이고 손쉬운 대상이다. 식물분류학에선 뿌리의 조직, 잎의 모양, 줄기의 형태 등 다양하고 세세한 것을 따지지만, 이건 학자들의 몫이다. 그걸 잘 모르는 사람들이 다가가기에는 꽃만큼 좋은 것이 없다. 먼저 계절별 식물을 생각한 뒤 꽃 색깔을 살피고, 그다음에는 잎의 모양을 찾아가면 대개 어떤 식물의 꽃인지 알 수 있다.
여기서부터 한의사 아저씨의 재미없는 한약재 이야기를 시작한다. ‘연교’ ‘포공영’ ‘자화지정’을 꺼내놓고 식물이 어떻게 약이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은 어리둥절해한다. 연교, 포공영, 자화지정은 개나리와 민들레, 제비꽃을 약으로 쓸 때의 명칭이다.
한약재 이름이 한자이기 때문에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 한글로 풀어쓴다면 우리 가까이에 있는 동식물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한글 이름이 한자로 바뀌는 순간 익숙한 것이 매우 낯설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직도 의료는 전문성을 중요시하는 영역이라 그런지 언어가 낯설고 어렵다.
필자가 공부할 때만 하더라도 어려운 약재와 처방의 이름, 그리고 효능을 한자로 암기하다시피 외워야 했다. 하지만 요즘은 정보화 시대이기 때문에 손쉽게 한약과 관련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꽃과 식물을 사진으로 찍기만 해도 쉽게 감별해주는 앱도 많이 개발돼 있다. 그리고 식물 이름만 안다면 ‘한국전통지식포털’과 같은 여러 인터넷 공간에서 약재명과 효능, 관련된 특허와 논문까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된다”는 어느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가끔 ‘한의원의 약장에 순 한글을 적는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개나리 열매, 민들레, 소나무 가지, 사슴뿔처럼 말이다.
아마도 조금 어색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따뜻한 봄날에 새롭게 피어나는 꽃망울을 보면서 아이들과 함께 식물의 효능까지 생각해볼 수 있다면, 봄나들이가 훨씬 재미있지 않을까.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에 대해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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