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힘들었지, 이제 데리러 갈게…NASA 우주예인선 개발 추진
#우주복 내부에 산소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리는 경고음이 우주 비행사의 귓전을 연신 때린다. 이산화탄소를 마셔 흐릿해지는 의식을 붙잡고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들어갈 입구를 사력을 다해 찾지만, 복잡한 선체 구조 탓에 쉬운 일이 아니다. 라이언 스톤 박사(샌드라 블럭 분)는 허블 우주망원경을 수리하던 중 우주 쓰레기 세례를 만났다. 타고 온 우주왕복선은 대파됐고, 동료들은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그는 ISS 안으로 들어가야 살 수 있다. 일단 산소를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 천신만고 끝에 ISS의 출입구를 찾은 라이언은 숨이 넘어갈 듯한 순간에 생사의 고비를 넘긴다. 2013년 개봉한 미국 영화 <그래비티>의 초반부 장면이다.
<그래비티>에서 라이언을 살린 ISS는 1998년에 건설이 시작돼 2011년 완공한 현존하는 물체다. 미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총 15개 나라가 만들었다. 중량은 약 400t, 길이는 73m다. 지구 상공 약 400㎞를 돈다. 그런데 만약 이런 ISS에서 공기가 샌다면 어떤 문제가 벌어질까. 사실 그런 일은 이미 수년 전부터 현실이 됐다. ISS의 노후화 때문이다.
이 때문에 ISS는 2030년까지만 유지되다 폐기될 예정이다. 문제는 이런 거대한 물체를 어떻게 버릴 것이냐다. 이와 관련해 미국이 ISS를 현재 궤도에서 끌어내 폐기하기 위한 기술 개발에 예산을 투입하기로 해 주목된다. ISS의 최후를 준비하는 일에 속도가 붙었다.
국제우주정거장 2030년 이후 폐기
지구 약 400㎞ 상공에서 끌어내려
우주선 공동묘지 ‘포인트 니모’로
■ ‘ISS 폐기’ 거액 예산 배정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과학매체 스페이스닷컴 등에 따르면 NASA에는 내년 예산으로 272억달러(약 35조원)가 배정됐다. 그런데 이 가운데 1억8000만달러(약 2300억원)가 ISS를 현 궤도에서 끄집어내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쓰일 예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ISS 폐기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에 예산이 잡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예산은 의회의 승인을 받은 뒤 확정된다.
NASA가 만들려는 건 ‘우주 예인선’이다. 현실 세계의 예인선은 항구에 다가온 배를 끌어와 정박시킨다. NASA가 개발할 우주 예인선은 지구 상공 약 400㎞에 떠 있는 ISS를 끌어내려 바다에 추락시키는 것이 핵심 임무가 될 것으로 보인다.
NASA가 ISS를 폐기하려는 건 무엇보다 노후화 때문이다. 무중력 상태의 과학 실험실로 수십년간 운영되며 다양한 고장이 생겼지만, 요즘에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2018년에는 공기 누출로 내부 압력이 떨어져 긴급 수리가 이뤄졌고, 그 뒤에도 공기가 새는 고장이 자꾸 발생하고 있다. 인간이 사는 공간인 ISS에서 공기 누출은 치명적이다.
지난해 2월 NASA는 남태평양 한복판인 ‘포인트 니모’를 ISS 추락 지점으로 지목한 연구를 내놨다. 포인트 니모는 남미와 남극 대륙 사이에 있는 바다의 한 점이다. 가장 가까운 육지는 모아이 석상으로 잘 알려진 이스터섬으로, 포인트 니모와 2688㎞ 떨어져 있다. 서울과 부산 거리의 약 6배다. 이곳은 이미 ‘우주선 공동묘지’로 쓰이고 있다. 1971년부터 2016년까지 포인트 니모에 수장된 우주비행체는 263기나 된다.
미, 러시아 의존 탈피 역량 키우기
2028년엔 액시옴 스페이스 건설
향후 민간 우주정거장 시대 주도
■ 미 ‘독자 역량’ 기르려는 의도
주목할 점은 ISS 폐기를 위해 왜 미국이 이토록 팔을 걷어붙이느냐이다. 사실 ISS 고도를 관리하는 임무는 러시아가 맡고 있다. 미국은 전력공급과 생명유지 장치 등을 관리한다. 러시아는 ISS 동체에 붙어 있는 자국 우주 화물선 ‘프로그레스’의 엔진을 때때로 작동시켜 고도 400㎞를 유지한다. ISS 궤도를 바꿔 폐기하는 일도 러시아의 역할이 되는 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최근 러시아의 태도가 심상찮다. 지난해 5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서방 제재에 항의하면서 2024년 ISS에서 철수하겠다고 미국을 압박했다. 갈등은 봉합됐지만, 2030년 ISS의 최후를 준비하는 데 러시아가 선선히 손을 빌려줄지 의문이라는 시각이 나온다.
지난주 기자회견에 나선 캐시 루더스 NASA 인간우주비행 부문장은 현지 언론에 “ISS를 궤도에서 이탈시킬 우주선을 미국이 보유하는 건 ISS 폐기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에 의존하지 않고도 ISS를 폐기할 독자 역량을 기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어차피 ISS의 살림을 책임지는 건 미국인 만큼 폐기도 미국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는 진단도 나온다. 장영근 한국항공대 교수는 “현재 러시아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실질적인 ISS 운영비는 미국이 대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ISS 운영 비용 대부분에 해당하는 연간 30억달러(약 3조9000억원)를 부담한다. 러시아는 10분의 1가량인 3억3000만달러(약 4290억원)를 낸다. 장 교수는 “러시아는 ISS 이전에도 ‘미르’(2001년 폐기)와 같은 다른 우주정거장을 운영했다”며 “(경제적 기여보다는) 당시 습득한 러시아의 ‘경험’이 ISS 운영에 필요했던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ISS 폐기 뒤에는 민간이 주도하는 우주 정거장 시대가 열린다. 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인 미국의 ‘액시옴 스페이스’는 2028년까지 우주 정거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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