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권 몰락’ 유령도시로... 잿빛 뒤덮은 동두천 [미군 떠난 그후, 휘청이는 동두천①]

송진의 기자 2023. 3. 19.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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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평택기지 이전 등에 따라 지역 경제 무너져... 대낮에도 적막
“공여지 미반환, 지역 발전 걸림돌... 정부·지자체 특단조치 필요한 때”

경기 북부의 작은 도시 동두천. 70여년 전 미군기지가 들어서고 상권이 형성되면서 수십년 동안 지역 일대는 불야성을 이뤘다. 이 때문에 군사도시와 기지촌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씌워졌지만, 동두천은 그 어느 때보다 황금기를 누렸다. 하지만 이런 동두천과 인근 파주 등 미군 주둔지로 쓰였던 지역들이 최근 급속도로 쇠퇴하고 있다. 미군의 평택 기지 이전 등으로 긴 세월 동안 고착화된 미군 의존적 산업구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미군공여지 반환 역시 수년째 지연되면서 지역경제는 그야말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본보는 국가 안보를 위한 희생으로 수많은 고초를 겪어온 경기 북부지역의 현황과 실태를 살펴보고 지역경제를 다시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70여년 전부터 형성됐던 동두천시 미군기지 주변 상권이 주한미군이 떠나면서 급격히 붕괴되고 있다. 19일 오후 생연동 양키시장이 휴일임에도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조주현기자

“가게 문을 열고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습니다.”

19일 오후 1시께 동두천시 생연동 양키시장. 점심시간임에도 200여m에 달하는 시장 내부에선 돌아다니는 사람을 찾기조차 어려웠다. 시장 초입에 있는 카페와 음식점은 언제 사람이 다녀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적막감만 맴돌고 있었다. 이곳에서 주류 가게를 운영하는 최모씨(39)는 “가게를 열고 있는 것 자체가 손해여서 하루하루가 두렵다”며 “예전에는 관광객도 많았고 새로운 손님들도 자주 보였는데, 지금은 그냥 소수의 단골 정도만 가게를 방문한다”고 토로했다.

인근에 있는 보산역은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 상점 10곳 중 7, 8곳은 불이 꺼져 있거나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다. 1호선 지하철이 정차하는 역이지만, 유동 인구가 거의 없어 운행을 중단한 역처럼 보였다.

19일 보산역 앞 상점가가 주말임에도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다빈기자

보산역 앞 외국인 관광특구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거리 양옆으로 늘어선 가게 중 불이 켜져 있는 곳은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불이 꺼진 가게는 언제 문을 닫았는지 모를 정도로 바닥에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상태였다. 관광특구 내 건물주 장모씨(78)는 “가게가 폐업해도 매물을 찾는 사람이 없어 정리도 하지 않고 ‘임대문의’ 안내문조차 붙이지 않는다”면서 “동네가 점점 더 폐허처럼 변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과거 미군 주둔 시절 대낮에도 북적거리던 동두천 지역 일대가 유령도시로 전락했다. 미군 부대 이전과 인구 이탈 가속화로 지역 경제가 침체된 후 회복되지 않고 있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날 동두천시에 따르면 주한미군 감축으로 지역 내 400여개에 달하던 미군 관련 점포들은 지난 2018년까지 약 120개로 감소했다. 현재는 100개도 채 남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역 상인들은 보고 있다.

지역 상인들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동두천시의 발전을 가로막는 근본적인 원인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고영철 전 송내동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장은 “죽어가는 상권과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아파트 단지나 문화시설 등 생활 인프라를 갖춰 인구가 유입되도록 해야 하는데 미군 기지 반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 놓였다”며 “지자체와 정부가 나서서 특단의 조치를 마련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동두천시 미군 공여지 현황. 동두천시 제공

인구 9만명선 아슬아슬... 지역 소멸위기 현실화

주둔했던 미군 대부분이 지역을 떠나고, 미군공여지 반환조차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동두천의 지역소멸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미군의 지역 이탈로 미군 의존적인 산업구조가 무의미해졌지만, 공여지 반환이 지연되는 탓에 산업 전환을 위한 개발조차 추진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19일 동두천시에 따르면 동두천 지역에서 미군이 사용했던 공여지 면적은 시 전체 면적(95.66㎢)의 42.47%(40.63㎢)에 달한다. 현재까지 이 중 57%(23.21㎢)가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 등으로 반환됐다.

문제는 반환된 면적의 대부분(22.93㎢)이 산지여서 활용가치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반환된 지역 중 극히 일부인 0.23㎢ 부지만 대학교 캠퍼스와 군부대 관사 등으로 개발된 상태다.

지리적으로 핵심적인 땅은 여전히 미군이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6개의 미군기지(△캠프케이시 14.15㎢ △캠프호비 14.05㎢ △캠프님블 0.07㎢ △캠프모빌 0.21㎢ △캠프캐슬 0.21㎢ △짐볼스훈련장 11.94㎢) 중 동두천 중심에 있는 캠프케이시와 캠프호비는 아직까지 반환 자체가 불투명한 상태다. 캠프케이시에는 대북작전의 핵심 부대인 제210야전포병여단이 주둔하고 있고, 반환이 일부 이뤄진 캠프호비 역시 캠프케이시와 연계해 순환 병력이 주둔하고 있어서다.

동두천에 주둔 중인 미군은 당초 2016년까지 평택으로 이전하기로 돼 있었다. 캠프케이시에 주둔하는 제210야전포병여단만 국군의 대북 화력전 대체 능력 등을 이유로 2020년까지만 머물기로 했지만, 아직까지 잔류 중인 것이다.

이처럼 공여지 반환 지연으로 인한 개발 차질 등으로 지역 경제가 무너지면서 주민들의 이탈도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 2016년(9만8천277명) 10만명을 바라보던 동두천시의 인구 수는 이제는 9만명 선마저 깨질 위기에 놓였다. 당장 최근 3개월만 보더라도 지난해 12월 9만1천546명에서 1월 9만1천255명, 2월 9만883명으로 매달 300, 400명씩 줄어들고 있다. 이대로라면 올해 상반기 중으로 9만명 선이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 최희신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사무국장은 “인구 감소와 미군 이탈로 상권이 몰락하면서 그나마 있는 미군들도 홍대나 이태원으로 나가 주변 상점들의 폐업이 가속화되는 등 악순환의 고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동두천은 안보의 희생양이 아니다. 국가가 나서 대책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송진의 기자 sju0418@kyeonggi.com
한수진 기자 hansujin0112@kyeonggi.com
이다빈 기자 ilwoldabin97@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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