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오카쿠라 덴신
오카쿠라 덴신(岡倉天心·1862~1913)은 일본 메이지 시대의 미술평론가이자 국수주의 사상가이다. 개항기 요코하마에 살던 오카쿠라는 어릴 적부터 서양인이 개설한 영어학원에 다니며 영어를 익혔다. 도쿄대학에 입학한 뒤 미국인 미술연구가 페놀로사와 인연을 맺었고 그와 함께 일본 각지의 고사찰을 연구하면서 미술사가로 입지를 굳혔다. 러일전쟁을 전후로 자신의 저작을 해외에서 영어로 출간했다. 일본 미술·문화를 선전하는 한편, 일본의 조선 병합이 타당하다는 논리를 서구로 전파했다.
1904년 11월 미국 뉴욕에서 출판된 <일본의 각성(The awakening of Japan)>에서 오카쿠라는 “조선반도는 선사시대부터 일본의 식민지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의 고고학 유적은 일본의 원시고분과 정확히 같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일본 왕실의 조상신인 “아마테라스오미카미의 동생이 조선에 정주했다고 전해진다. 그 나라의 초대 국왕 단군은 그 자식이었다고 한다”고 적었다.
오카쿠라는 또 “진구(神功)황후의 조선 정벌 이후 우리의 연대기는 8세기까지(즉 500년간) 식민지 보호의 기록으로 채워져 있다”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을 “13세기 몽골의 일본 침략을 조선인이 안내했던 것에 대한 보복조치”라고 했다. 조선통신사에 대해서는 조공국인 조선 국왕이 도쿠가와 쇼군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한 사절이라고 했다. 오카쿠라는 “조선반도를 적국이 점령하게 되면 일본에 육군을 쉽게 투입할 수 있는데, 조선이 비수처럼 일본 심장부를 겨누고 있기 때문”이라며 일본의 조선 지배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1930년대 공산주의자에서 전향한 아사노 아키라에 의해 ‘대아시아주의의 선각자’로 받들어졌고, 그의 ‘아시아는 하나’론은 일본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게이오대학 강연에서 ‘용기는 생명의 열쇠’라는 오카쿠라의 말을 인용했다. 윤 대통령은 “한·일 양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용기”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오카쿠라가 어떤 인물인지 알고 연설문을 썼을까. 알고도 인용했다면 심각한 문제이고, 몰랐다면 역사에 남을 실수다.
서의동 논설위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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