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규 "노무현 시계 보도는 MB정권 국정원이 배후"
고대영 KBS 보도국장과 국정원 대변인 통해 확인
"국정원에서 하라는데 국영방송이 어떻게 하겠어"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의 명품 시계 수수 의혹 보도 배후에 이명박(MB) 정권 국가정보원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 전 부장은 이명박 정권은 노 전 대통령 수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 부장은 최근 펴낸 자신의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누가 노무현을 죽였나'(조갑제닷컴)에서 2009년 4월 22일 KBS 9시 뉴스에서 시계 수수 의혹을 보도한 이후인 같은 해 6월 30일 당시 KBS 고대영 보도국장(전 KBS 사장)이 "노 전 대통령 부부의 시계 수수 사실은 국정원에서 준 것"이란 취지로 자신에게 말했다고 주장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식집에서 열린 고교(경동고) 동문 공직자 모임에서 나온 얘기라고 했다. 이 전 부장은 2009년 노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의혹 수사 책임자였다.
이 전 부장이 "시시하게 시계 수수 사실을 보도해 전직 대통령에게 망신을 주느냐"고 묻자, 고 전 사장은 "국정원 대변인 이OO이 우리 고교 친구잖아. 국정원에서 하라는데 국영방송이 어떻게 하겠어"라고 답했다고 했다. 이 전 부장은 고 전 사장과의 대화 내용을 업무일지에 적어뒀다고 한다. 이 전 부장은 자신과 검찰의 무고함을 풀기 위해 2019년 11월 고 전 사장에게 "해당 보도는 국정원에서 취재한 것"이란 확인서까지 받았다고 한다. 고 전 사장은 그러나 2017년 국회 국정감사에선 "검찰 측에 확인해봤다"며 검찰 취재원을 '소스'로 지목한 바 있다.
회고록에는 고 전 사장이 언급한 국정원 대변인도 해당 사실을 인정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전 부장이 2009년 5월 13일 8시 뉴스에 나온 SBS의 이른바 '논두렁 시계' 보도 경위까지 확인하려고 2022년 1월 14일 국정원의 이모 전 대변인을 만나 'KBS 보도를 선배님이 시켜서 한 게 맞냐'고 묻자, 이 전 대변인이 겸연쩍게 웃으면서 "맞다"고 순순히 시인했다는 것이다.
이 전 부장은 이어 이 전 대변인에게 "'논두렁'이란 단어는 누가 만들어낸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이 전 대변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국정원에도 검찰과 같이 원장 측근에서 정보를 다루는 '정보비서관' 직책이 있었는데, 당시 고OO이란 친구 작품"이라 말했다고 한다. 이 전 부장은 당시 동석한 고교 동창에게 대화 내용에 관한 확인서도 받았다고 책에 썼다.
이 전 부장은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 망신주기는 이명박 정권 차원에서 기획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회고록에는 다음 대목이 나온다.
'이명박 정권은 박연차 회장 수사를 통해 본래 얻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했다. 겉으로는 현직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을 배려한다는 제스처를 보여 주고, 속으로는 노 전 대통령에게 망신을 주고 정치적 입지를 어렵게 만들어 그의 영향력을 없애려고 한 것이다.'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 회고록 425쪽
이 전 부장은 2009년 4월 10일쯤 정동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부터 전화가 와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 수사하되, 명품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도덕적 타격'을 가하는 것이 어떠냐"는 주문을 받았다고 회고록에 실었다. 이 전 부장은 이를 거절하며 "수사에 간섭하지 말라"고 했으나, 그 무렵 이명박 전 대통령 측근으로부터 "청와대가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하되 망신을 주기로 방침을 정했다"는 말도 전해들었다고 밝혔다.
나흘 뒤인 2009년 4월 14일 국정원에서 검찰을 담당하는 강모 국장과 대검찰청을 출입하는 권모 요원 등 2명이 자신을 찾아와 "명품 시계 수수 사실은 언론에 공개해 도덕적 타격을 가하는 게 좋겠다"고 말한 사실도 공개했다. 이 전 부장은 검찰을 국정원처럼 공작이나 하는 기관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모욕적으로 느꼈다고 했다. 이 전 부장이 "내일 기자 브리핑에서 이런 사실을 알리겠다. (국정)원장께도 그리 전해주십시오"라고 하자, 강 국장 등은 "저희가 실수한 것 같다. 오지 않은 것으로 해주십시오"라고 했다고 한다. 이 전 부장은 업무일지에 강 국장 명함을 붙인 뒤 이 대화를 메모로 적었다고 밝혔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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