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성은 왜 그를 때렸나

장수경 2023. 3. 19.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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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의 안길호 피디가 과거 자신이 저지른 학교폭력을 사과했다는 내용을 보도한 <한겨레>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폭력 행위는 다를 바 없었지만, 안 피디에 대한 여론은 다른 학교폭력 가해자와 달리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었다.

안 피디의 당시 여자친구라고 주장한 이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친구들이 그런 폭행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런 말을 전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안 피디의 행동이 자신의 동의를 받지 않은 것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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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더 글로리> 안길호 피디. 넷플릭스 제공

[젠더 프리즘] 장수경 | 젠더팀장

“내 여자친구 괴롭히는 놈 나도 가서 쥐어팬다. 그걸 가만히 보고 있는 남자친구가 이상한 것 아니냐?” “괴롭힘을 당하는 여친을 위해 싸운 게 학교폭력이냐?”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안길호 피디가 과거 자신이 저지른 학교폭력을 사과했다는 내용을 보도한 <한겨레>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폭력 행위는 다를 바 없었지만, 안 피디에 대한 여론은 다른 학교폭력 가해자와 달리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었다. 여자친구를 놀린 이를 때린 건 참작할 만하다는 게 이유였다. 안 피디는 필리핀에서 유학 중이던 고3 시절, 친구들과 함께 중학생들을 폭행했다는 의혹을 받았었다.

기시감이 들었던 건 1년 전 이맘때 한 남성이 자신의 아내를 상대로 농담했던 다른 남성을 구타한 사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윌 스미스다. 윌 스미스는 지난해 3월 아카데미 시상식 생방송 도중, 갑자기 무대에 난입해 시상자로 나온 코미디언 크리스 록의 뺨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윌 스미스는 자리에 돌아온 뒤로도 두 차례나 “내 아내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마라”고 크리스 록에게 소리쳤다. 윌 스미스가 폭행하기 직전, 크리스 록은 윌 스미스의 아내인 제이다 핑킷 스미스의 헤어스타일을 빗대 “영화 <지 아이 제인>의 후속편을 기대한다”고 농담했다. <지 아이 제인>의 주연을 맡은 데미 무어는 극 중에서 삭발 투혼을 펼쳤고, 당시 제이다 핑킷 스미스는 병으로 원형탈모증을 앓아 삭발한 상태였다.

폭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당위’를 떼놓고 생각해보자. 대체 이 남성들은 자신을 상대로 한 놀림도 아니었는데, 애인·아내를 대신해 왜 발언자를 때렸을까. 과연 애정 때문만일까.

윌 스미스의 “내 아내”라는 말에서 추측해 볼 수 있다. 안 피디와 윌 스미스는 폭력 상황을 일으키기 전, 연인에게 의사를 묻지 않았다. 이들이 연인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상대를 ‘대리 응징’함으로써 안 피디의 전 여자친구와 제이다 핑킷 스미스는 스스로 사과를 요구하고 사과받을 기회를 잃었다. 의사결정권과 주체성이 무시당한 셈이다. 안 피디의 당시 여자친구라고 주장한 이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친구들이 그런 폭행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런 말을 전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안 피디의 행동이 자신의 동의를 받지 않은 것임을 밝혔다.

내 편이 모욕당하면 ‘당연히’ 기분 나쁠 수 있다. 하지만 이 당연함이 가부장제 아래 남·여 관계에 적용됐을 때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 한번쯤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여성의 주체성을 무시한다면, ‘나의 여자친구’ ‘나의 아내’란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소유 가능한 존재로 인식한다면, 이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통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알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에 공개한 지난해 상담 내용을 보면, 여성에게 폭력을 저지른 가해자 절반은 과거 또는 현재의 연인·배우자라고 한다. 또 지난해 1년 동안 남편, 연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86명이다. 살해될 위험에 놓였던 여성은 최소 225명이다. 언론에 보도된 건만 이렇다.

여성이 사회적 약자에 포함되는 건, 남성이 여성을 보호해달라거나, 여성을 대신해 항의해달라는 게 아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사회·경제적으로 열세에 놓여 있고, 동일한 인간으로서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여성들은 오랜 역사 속에 약자로 위치된 여성의 자리를 남성과 같은 자리에 올려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미투 운동 이후로 55%가량 늘어난 직장 내 성폭력, 가사노동시간 남성 대비 2.5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성별 임금 격차 1위,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오이시디 38개국 중 34위….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바뀌어야 할 수치들은 아직 너무 많으므로.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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