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석의 팔레트] 글쓰기 교실 말고

한겨레 2023. 3. 19.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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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석의 팔레트]

2021년 3월16일 오전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 앞에서 ‘산재처리 지연 규탄, 추정의 원칙 법제화, 산재보험 제도개혁 촉구 민주노총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현석 | 소설가·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얼마 전 ‘2023 노동자 건강권 포럼’에 다녀왔다. 일터의 다양한 건강 문제를 톺아보는 행사로, 특히 여성 노동자의 노동 경험과 산업재해를 다룬 세션이 기억에 남았다. 김영애 공공운수노조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의 발언 때문이었다. 그는 위원장이기 전에 학교급식노동자로 살아온 경험을 말했다. 많은 동료가 자기처럼 주부로 살다가 40대가 넘어 조리 일을 시작하고, 그중 적지 않은 사람이 조리원 생활 후에 요양보호사를 하려고 자격증을 준비한다 했다. 그가 표현한 대로 “평생 돌봄노동을 하다가 뼈마디가 녹”지만 중년 여성이 다수인 이들 직종에서 산재 신청은 현저히 적다. 이미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는 일이 몸에 배었으니 이 ‘골병’이 일터에서 비롯되었다고 자각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경험상 동료들이 자각해도 산재 신청을 주저하는 때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가 중요하다고 본 이유는 뜻밖에도 ‘글’이었다. 한국의 산재보험은 재해자가 직접 신청하고 업무관련성을 입증하는 신청주의를 따른다. 이 때문에 재해자는 스스로를 심문하듯 아프게 된 내막을 세세히 써 내려가야 한다. 그는 “계속 육체노동을 하면서 글쓰기라고는 작업일지에 동그라미 치는 것과 가계부 적는 게 전부였던 사람이 갑자기 육하원칙에 따라 자기가 병든 까닭을 쓰라고 하면 그게 어디 쉽겠습니까?”라고 물었다. 물론 이에 대해 자녀나 노무사 도움을 받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반문은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사회적 자원에 쉽게 접근할 만한 계층이라는 것 외에 어떠한 정보값도 가지지 않는다.

문맹처럼 명확한 제약이 아니기에 문턱은 희미하다. 희미한 문턱은 황량한 땅에 박힌 돌부리 같다. 걸려 넘어지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기보다는 홀로 주저앉게 만든다. 이런 문턱을 낮출 방법이 정말 없는 걸까. 글에 관한 문제니 돌봄노동자를 위한 글쓰기 교실을 각지에 여는 것도 한 방안일 수 있겠다. 물론 없는 것보다야 백배 나을 테지만, 진짜 문제는 재해경위서를 쓰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외려 그때부터 시작된다. 최근 <한겨레>가 ‘질병산재 황유미들의 733년’이란 기획기사로 보도했듯이 재해자들에게는 신청부터 승인 여부를 판단받기까지 걸리는 물리적인 시간 자체가 고역이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다’, ‘이제는 파산 직전이다’, ‘이건 완전 고문이다’. 나도 종종 들었던 말이다.

다행히 우리 사회는 이 문제에 바로 개입할 수 있는 제도를 이미 갖추고 있다. 그것은 ‘추정의 원칙’이다. 현재 경추간판탈출증, 회전근개파열 등 직업적 발병 빈도가 높은 근골격계 질환 8종의 경우 직업의 종류, 근무 기간, 진단 시점 같은 간단한 기준만 충족하면 다른 입증 절차 없이 업무상 질병으로 승인받게끔 법제화되었다. 탄광부·용접공·석공 등에게서 발생한 석면 폐암과 반도체·디스플레이 직종에서 발생한 직업성 암 8종 역시 고용노동부 지침을 통해 ‘추정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

2022년 기준, 전체 산재 신청 건수 대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된 사건은 5% 안팎이다. 만약 이 제도가 더 적극적으로 쓰이고, 더욱 다양한 질환과 직종으로 확대 적용된다면 훨씬 많은 사람이 글쓰기를 두려워할 필요도, 구구절절 읍소할 필요도, 기다림에 고통받을 필요도 없어진다. 물론 ‘추정의 원칙’에도 기본적으로 입증 책임이 재해자에게 있다는 한계가 있다. 산재보험을 ‘선 보장 후 정산 제도’로 바꾸거나 직권주의로 전환하는 등 장기적 과업이 산적한 것도 사실이다. 다만 쓸모 있는 도구가 명백히 존재할 때 그것을 방기한다면 의도적인 회피가 아닌지 의심이 들 수밖에. 이런저런 부연을 붙이려면 끝이 없으니 단순하게 마무리하기로 한다. 구호는 짧을수록 좋다지 않는가. 지금 당장 ‘추정의 원칙’을 확대 적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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