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으로 상처입은 아이들 마음 ‘노래’로 보듬어요”

김경애 2023. 3. 19.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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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국내 1호 모험놀이 상담가이자 가수 방승호 교사

‘국내 1호 모험놀이상담가’ 방승호 교사가 퇴직 기념으로 학교폭력 예방 노래 ‘콜드 블루, 골목길’을 세상에 내놨다. 사진 푸른나무재단 제공

1950년대 하와이 카우아이섬의 주민들은 대부분 지독한 가난과 약물중독, 범죄 등에 노출돼 있었다. ‘환경이 인간발달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하던 한 발달심리학자가 1955년 이 섬에서 태어난 신생아 833명의 인생을 30년간 추적 조사했다. 심리학사에 길이 남을 이 종단연구 결과, 부모처럼 약물중독이나 범죄자가 된 자녀와, 부모와 달리 건강하고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한 자녀의 분기점이 드러났다. 그것은 자신을 지지해주고 믿어주고 사랑해주는 ‘단 한명의 존재가 있느냐’ 여부였다.

35년 교직 생활을 통해 수많은 학생들에게 그 ‘단 한 사람’이 되어주고자 했던 ‘국내 1호 모험놀이상담가’ 방승호 교사가 최근 퇴임 기념으로 푸른나무재단과 손잡고 학교폭력 예방을 기원하는 노래 ‘콜드 블루, 둘레길’을 발표했다. 이 노래는 학교폭력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고등학생들이 작사·작곡했으며, 방 교사가 래퍼 아웃사이더와 함께 불렀다.

지난 14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 본사에서 만난 그는 “학교폭력 피해를 당한 아이들의 핸드폰에는 자신을 위로하는 시와 노래가 꼭 들어있었다”면서 “그 아이들을 노래로 위로해주고 세상으로 꺼내주기 위해서 음원을 발매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1988년 2월 교직을 시작한 그는 이달 초 서울 은평문화예술정보학교 교장을 끝으로 교단에서 내려왔다. 그는 “교사를 하면서 단 한 번도 그만두거나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을 정도로 학교만 가면 그렇게 좋았다”면서 “다른 일을 했더라면 끝까지 못하고 그만뒀을 텐데 교사는 나에게 ‘천직’ 그 이상이었다”고 은퇴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다른 사람들은 힘들다고 하는데 나는 아이들을 상담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고 내 인생의 축복이었다”면서 “왜 이렇게 재밌을까 생각해보니 나 자신을 완전히 성장시켜주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대학에서 토목공학교육을 전공하고 중학교 기술 교사로 출발한 그는 10년차 즈음 참여했던 미국의 ‘모험놀이상담’ 연수를 통해 인생을 바꾸었다. “너무 충격적이었요. 모험놀이상담이라는 게 옆 사람과 손을 잡고 놀이를 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느낀 점을 말하는데, 제가 굉장히 내성적인 사람인데도 5분 만에 마음의 문이 확 열리는 게 놀라웠어요. 그때 한국에서는 한 명이 잘못해도 반 전체가 단체기합을 받고 반성문을 쓰던 시절이었잖아요. 와 이런 게 상담이구나 하는 걸 알게 됐죠. 2주 연수 기간 내내 받아적고 질문하면서 열심히 배웠어요. 그리고 돌아와서 교장 선생님께 우리 학교 ‘문제아’ 15명만 맡겨달라고 했죠.”

실제로 그 아이들과 2주간 모험놀이상담을 해보니 성공적이었다. 그는 팔씨름, 동전놀이, 발등밟기 등 몸으로 노는 놀이를 통해 아이의 마음의 문을 두드렸을 뿐이었는데, 아이들은 순식간에 스스로 문제를 자각하고 제자리를 찾아갔다. 동료 교사들도 시연 5분 만에 웃음꽃이 피고 마음이 열리는 걸 목격하면서 그는 전국의 학교와 지역아동센터를 찾아가 모험놀이상담을 알렸다. 그 과정에서 그는 모험놀이상담을 한국 실정에 맞게 다양한 버전으로 진화시켰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도 따고, <우리집 모험놀이> <기적의 모험놀이> 등 책도 여러권 펴냈다.

직·간접 피해 고교생들 작사·작곡
래퍼와 듀엣 ‘콜드 블루, 둘레길’ 발표
수익금 푸른나무재단 기부 ‘학폭 예방’

1990년대말 미국에서 ‘모험놀이’ 연수
아이들 성장 다큐 ‘스쿨 오브 락’ 화제
“35년 교단 마쳤지만 상담·노래 계속”

그러다가 아현산업정보학교 교장으로 발령이 났다. 날마다 100여 명이 지각을 하고 학내 흡연도 심하고 술에 취해 등교하는 아이들도 있는 상태였다. 그는 동물탈과 가발을 쓰고 다니면서 아이들을 웃기며, 교장실을 놀이터로 만들었다. 역시나 아이들이 모험놀이상담을 하면서 놀랍게 변해갔다. 그 모습은 2년 전 다큐멘터리 <스쿨 오브 락>으로 만들어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큐에서는 그가 ‘너구리굴’인 학교 화장실 앞에서 기타를 치면서 금연송 ‘노 타바코’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들의 60%가 담배를 폈는데, ‘노 타바코’를 부르고 나니 흡연율이 0%로 줄었어요. 아무리 훈계하고 징계해도 안 되는 게 흡연 문제인데 노래를 불렀더니 해결이 됐어요.” 그가 지각송 ‘교문에서’를 부르고, 게임하는 아이들을 위해선 ‘돈 워리’를 불렀던 이유다.

​방승호 교사(오른쪽)가 래퍼 아웃사이더와 함께 학교폭력 예방을 기원하는 노래 ‘콜드 블루, 골목길’을 녹음하고 있다. 사진 푸른나무재단 제공

이번에 ‘학폭 예방’ 노래를 부른 것도 “어떤 교육정책보다 강한 노래의 힘을 알리고 싶어서였다”는 그는 “사람의 마음의 문을 여는 데는 놀이와 문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실 그는 9집 앨범까지 발매한 가수이기도 하다. “아이들과 상담하면서 어린시절 꿈이 뭐였는지를 묻다 보니 내 가수의 꿈도 깨어나서 실제로 이루게 됐어요. 앞으로도 계속 앨범을 내고 가수로 활동할 겁니다.”

그는 “은퇴를 했는지 안 했는지 못 느낄 정도로” 지금도 계속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3년 전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아이들과 대면상담이 어려워지자, 카톡으로 매일 아침 삶에 대한 질문과 답을 이어왔는데, 뜻밖에도 좋은 상담 효과를 보였다. ‘살면서 도움받은 사람 3명이 누구이며 그들의 공통점이 무엇이니?’ ‘가상의 인생을 살면 하고 싶은 것 5가지는 무엇이니?’ 등 108개의 질문과 답을 주고받자 아이들이 스스로 상처를 딛고 잊었던 꿈을 찾아서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그는 같은 방법으로 신참 교사들도 돕고 있다. 강연과 공연 무대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도 모시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 가족은 어머니를 모시면서 더 화목해지고 서로 고마워하는 일이 많아졌다”면서 “이 모든 게 아이들의 마음을 살피다가 내 마음까지 다져진 덕분이어서 감사할 뿐”이라고 했다.

한편, ‘콜드 블루, 둘레길’은 각종 음원 사이트에서 내려받을 수 있으며, 수익금 전액은 푸른나무재단에 기부해 학교폭력 예방에 쓰일 예정이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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