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소통으로 빚어내는 연구개발 혁신

2023. 3. 1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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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는 스스로와의 싸움이되, 외롭지 않아야 한다. 흔히 연구자라고 하면 복잡한 장비에 둘러싸여 홀로 고뇌하는 괴짜를 떠올리기 쉽다. 어려운 전문 분야에 몰두해야 하는 속성을 투영한 이미지이겠지만, 좋은 성과를 내는 연구자들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우리 연구원들이 개발한 '3차원 메디컬 홀로그램'이라는 기술이 있다. 각기 바이오와 인공지능 분야에서 일하는 까닭에 일면식도 없을 것 같았던 연구원들이 의기투합해 내놓은 결과였다. 연구소 내 동호회에서 만나 아이디어를 주고받았다는 사연에 자못 흐뭇한 마음이었다. 다양성이 만남을 통해 얽힘으로써 연구의 경계를 크게 넓힌 것이다.

한 명의 연구자에서 연구소 전체를 책임지는 경영자의 자리로 옮기면서 한 다짐이 있다. 모두가 공감할 비전을 제시하고 그 달성 과정에서 소통을 조직의 문화로 내재화하겠다는 것이었다. 기관장 취임 첫해, '타운홀미팅' 제도를 만들었다. 현장 참석뿐 아니라 온라인 중계,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전 직원이 현안을 공유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제안하는 자리이다. 대부분의 답변을 현장에서 필자가 직접 했다. 개인평가 제도부터 연구자들이 답답해하는 규제까지 다양한 주제를 놓고 허심탄회하게 토론했고, 제안된 의견은 검토를 거쳐 그 결과를 다시 공지했다. 분기에 한 번씩 꼬박꼬박 운영한 덕에 많은 제도를 다듬을 수 있었고 특히 평가 제도 혁신은 넓은 공감대를 얻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최근 과학기술로 국가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연구계의 체질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작금의 치열한 기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독보적인 핵심 기술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는 국책연구기관에서도 글로벌 어젠다와 국가 현안에 대응하는 '해야만 하는 연구'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최고를 지향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연구'가 새로운 일익(一翼)을 담당해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기존 연구 체계는 실패 자체를 허용치 않아 달성 가능한 목표를 좇는 연구를 강제해 온 것이 사실이다. 분명 타파해야 할 구태이다. 우리 연구소 안에서부터 혁신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실천 방안은 소통을 통해 마련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세계 최초, 최고 기술에 도전하는 초고난도 연구 사업이다. 인공 시각 복원, 자폐 진단 등 과연 성공할까 싶은 주제에 과감히 도전 중이다. 새로운 시도 후 이제 1년 반 남짓, 언젠가 세계를 선도할 성과가 탄생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피 바칼이 '룬샷'에서 말한 바처럼 '불가능에 도전하는 미친 프로젝트'가 세상을 바꾼다. 2019년 지구촌 곳곳의 연구기관들이 소통하고 협력하여 구현한 사건지평선망원경은 블랙홀 관측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놀라운 영감은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갑자기 얻어질 수 있고, 협력을 통해 실현된다. 연구자들이 도전적 연구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나아가 다양한 동료들과 협력하고 소통하는 것이 절실한 이유다.

[윤석진 KIST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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