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싫어서 안간다? 항공권 없어 못간다! NO 재팬 밀어낸 'GO 재팬'

신익수 기자(soo@mk.co.kr) 2023. 3. 19.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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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것과 역사는 별개"
MZ세대 등장이 분위기 바꿔
삼일절 연휴에도 일본행 폭증
작년 해외로 출국한 한국인
6명중 1명은 일본으로 떠나
황금연휴 항공권 이미 매진
후쿠오카행 53만원도 뚫려
LCC가 더 비싼 기현상까지
'인증샷'도 거침 없이 공개
인스타 해시태그 태국의 3배
구글맛집 리뷰 30%는 한국인
MZ세대 日 호감도 확 높아져

◆ 매경 포커스 ◆

'방일 한국인 급증… 아무리 저렴해도 일본에 가지 않는다는 태도 달라져… 그 이유는?'

지난 2월 24일 뉴스위크 일본판의 기획 기사 타이틀이다. 경제 보복 조치로 촉발된 노 재팬(No Japan) 운동이 불과 4년 만에 '예스 재팬(Yes Japan)' 분위기로 돌변한 한국의 변화상을 기획으로 다룬 보도다. 기사의 결론, 어김없다. '짠돌이'로 은근히 한국 여행족을 비꼰다.

"노 재팬 당시 한국인의 55.7%가 '아무리 저렴하더라도 일본에 가지 않겠다'고 답하더니 열기가 사라졌다"며 "그래도 일본에는 도움이 안된다. 코로나19 이전에도 방일 외국인 중 가장 지출을 적게 한 사람들이 한국인이었다"는 결론이다.

이거, 팩트다. '노 재팬'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 자리를 '예스 재팬'도 모자라 '러시(Rush) 재팬'이 메우고 있다. 정말이지 일본행 광풍이다. 벌써 6월 현충일 징검다리 연휴 항공권이 동이 났다. 후쿠오카 항공권 '마의 저항선'이었던 '53(53만원) 라인'도 뚫렸다. 수요가 몰리다 보니 저비용항공사(LCC) 가격과 대형 항공사의 가격이 역전되는 기현상까지 발생했다. 이 가격에도 6월 주말 항공권은 구할 수조차 없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 눈치 안 본다…MZ가 만든 일본행 광풍

현충일인 6일을 붙여 4일을 쉴 수 있는 6월 황금연휴. 이미 일본행 항공권은 하늘의 별따기다. 이 기간 후쿠오카행 왕복 항공권 가격은 무려 53만원대. 심지어 제주항공 53만3800원, 대한항공 53만2900원으로 LCC가 더 비싼 가격 역전 현상까지 빚어졌다. 기종 불문, 크기 불문. 이마저도 '광클릭'을 해야 구할 수 있을 정도다.

한마디로 일본행 광풍이다. 통계만 봐도 그렇다. 노 재팬을 떠들면서도 작년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방문한 나라, 놀랍게도 일본이다. 법무부 조사 결과, 작년 658만145명이 출국했는데, 이 중 109만3260명이 일본을 찾았다. 해외 여행자 6명 중 1명꼴로 일본을 방문한 셈이다.

노 재팬으로 대변되던 반일 감정,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관광 전문가들과 여행업계는 코로나 사태 후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가세를 꼽는다.

욕구 표현에 솔직한 MZ들에게 힐링을 위한 여행과 애국심은 별개의 문제다. 두 가지를 철저히 분리한다. 그저, 가고 싶으면 간다는 인식이다. 노 재팬 운동 초기 '샤이 재팬'족이 늘면서 인증샷 노출을 꺼린 채, 몰래 일본 투어를 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오히려 대놓고 인증샷도 올린다. 거리낌이 없다. MZ세대가 주로 활용하는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나라'로 가장 폭발적인 숫자가 터진 곳이 일본이다. '#일본' 숫자는 891만개로 1000만개에 육박한다. 반면 #미국 #유럽은 217만회와 327만회에 그친다. 심지어 한국인 최애 인기 휴양지인 '#베트남, #태국'도 268만회와 239만회 수준이다.

일본 현지에서도 MZ세대가 여행을 주도하고 있다. 일본 현지에서 한국인 대상 버스투어를 운영하는 테라투어는 후쿠오카에서만 일평균 400명의 한국 여행족에게 투어버스를 제공하고 있다. 45인승 7대에서 8대가 매일 온천도시 유후인까지 오간다. 러시 재팬이 시작된 작년 말부터 올 3월까지는 거의 매일 풀부킹이다. 놀라운 건 이들 중 절반 이상이 2030세대라는 것. 패키지 대신 스스로 일정을 짜서 온 자유여행족들이다.

뉴스위크 일본판 역시 한국인의 일본행 광풍에 대해 MZ세대가 가세하면서 바뀐 인식 변화를 첫 요인으로 꼽는다. 뉴스위크 일본판은 "노 재팬 운동이 한창인 2020년 초 엠브레인 조사에서 49.9%에 달했던 '(일본은)적대국' 감정이, 작년 말 설문에서 36.1%대로 내려앉았다. '일본에 가지 않겠다'는 응답은 26.8%로 급감했다"며 "비자카드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한국인이 1년 안에 가보고 싶은 관광지 1위는 일본이었다"고 분석했다.

저렴한 항공권이나 엔화 약세는 오히려 부차적 이유로 들고 있다. 러시 재팬을 주도하는 MZ세대의 가세와 함께 눈치를 보던 나머지 세대까지 한꺼번에 몰리면서 항공권 가격이 치솟자 '호텔+항공+현지투어'를 묶은 패키지 여행도 낙수효과를 보고 있다. 일본행의 70%가 패키지 상품인 하나투어의 경우 작년 한 해 20·30대 비중이 25.9%로, 코로나 사태 직전인 12.8%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여행업계는 또 한 번 폭발적인 촉매제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 유행했던 무박 2일 밤도깨비(밤올빼미) 일본 투어다. 이미 피치항공 등 일본 저가항공 노선이 금요일 밤 늦은 시간대에 한국을 출발해 일요일 밤 늦은 시간에 일본을 출발하는 코스를 3월 말부터 선보이면서 MZ세대가 주로 활동하는 일본 여행 전문카페 네일동 등에는 '밤도깨비' 투어 도전 내용이 하나둘 올라오고 있다.

일본 여행 전문여행사 테라투어의 심원보 대표는 "4월부터 밤도깨비 같은 주말을 끼고 가는 무박 상품들이 대거 등장하면 또 한 번 일본 여행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 것"이라며 "후쿠오카 항공권이 '53' 저항선까지 뚫은 것은 여행업계에서도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 구글 日 맛집 평점의 30%는 한국인 MZ

최근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세종시 한 아파트의 일장기 게양 사건을 굳이 들지 않아도 된다. 정상적인 한일 외교관계 속에서도 한국인들이 가장 민감해 하는 일본 여행 시기는 3월이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으로 이어진 만세운동 시기와 겹쳐서다. 사실, 이 시기만큼은 여행사에서도 계절적 비수기로 친다. 한데, MZ세대가 가세한 올해는 이것마저 뒤집혔다. 3월 1일 '삼일절' 연휴를 이용해 장기 일본 여행을 예매한 고객이 폭증해 버린 것이다.

티웨이항공의 경우 2월 마지막 주말인 지난달 25일부터 3월 1일까지 닷새에 걸친 한국발 일본행 항공권 평균 예약률이 93%를 찍었다. 사실상 완판인 셈이다. 진에어, 제주항공 또한 같은 기간 평균 예약률이 90% 이상을 돌파했다. 삼일절이 평일인 수요일이라는 점을 이용해 월·화요일 휴가를 붙여 장기 일본 여행을 떠난 이들이 많았던 셈이다.

당연히 티켓 싹쓸이 배후에는 MZ세대가 있다고 업계는 입을 모은다. 눈치 보지 않고 '쿨하게' 떠나는 성향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는 지적이다. 주로 2030세대가 활약하는 일본 여행 전문카페 네일동은 이 뉴스가 뜨고 난리가 났다. 2500건 이상이 조회되고 댓글이 70개가 넘게 달린 게시물이 '3·1절에 일본 가면 안대(안돼)? 이런 말하는 사람 꼰대?'라는 글이다.

당연히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아름아룸이라는 아이디의 글쓴이가 '놀러가는 거라면 삼일절하고 광복절은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는 댓글을 달자, 즉각 삼선짜장(아이디)이 '간다고 해서 애국심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자기 돈으로 자기가 간다는데 뭔…'이라는 댓글을 올렸다.

오히려 "가면 안 된다"고 말하는 이를 '꼰대'로 모는 댓글도 상당수다. '일본 간다면 이런 말 꼭 듣는다, 베스트' 게시글에는 '1위. 방사능 먹고 온다, 2위. 유럽도 가봐(해외 안 가본 이들의 말), 3위. (난) 애국심 때문에 일본 것은 사지도 않는다(자기가 쓰는 게 일본 제품인지도 모르는 이들)' 랭킹까지 달려 있다.

맛집도 폰(구글맵)으로 찾는다. 한국인들이 점령한 후쿠오카 인근의 맛집들은 구글맵의 맛집 별점과 평점의 30% 이상을, 이들 MZ가 매기고 있다. 일본 소비문화까지 점령하고 있는 셈이다. 심원보 대표는 "택시나 편의점, 심지어 백화점까지 비대면 결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등지는 마치 한국인 MZ세대의 소비 성향에 맞춘 분위기"라며 "제주나 명동을 휘젓듯 자유롭게 여유를 즐긴다"고 귀띔했다.

일본에 대한 이들의 인식이 흥미롭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2월 말 내놓은 20·30대 청년세대 한일관계 인식 설문 조사 결과다. MZ세대 626명이 참여했다. 응답자의 42.3%가 긍정적이라고 답했고, 부정적이라는 답은 17.4%에 그쳤다. 일본에 대한 호감도는 5.7점(10점 만점)으로 평균 이상이다.

심원섭 목포대 관광학과 교수는 "즐기는 것과 역사를 철저히 분리하는 게 MZ세대의 성향"이라며 "가격이 비싸도, 마음에 들면 기꺼이 다녀온다. 지금 이들 세대의 취향은 일본이다. 6월 연휴도 '현충일' 주간보다 연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일본행 항공권도 이들이 벌써 선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익수 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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