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케·위스키 없어 못 먹고 … 애니메이션 슬램덩크 돌풍
노재팬 이끌던 인터넷 사이트 폐쇄
"평화·이해로 긍정적 에너지 더하자"
◆ 매경 포커스 ◆
'노 재팬인데, 슬램덩크는 못 참는다.'
최근 대박 난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두고, 온라인상에 밈(meme)처럼 회자되는 말이다.
문화 시장도 이미 예스 재팬 분위기다. '오사카에 사는 사람들 TV' 마츠다 부장을 필두로 한 유튜브뿐만 아니다. 일본인을 흉내 내는 '다나카' 캐릭터의 개그맨은 공중파에서도 맹활약 중이다. 특히 슬램덩크 열기에는 MZ세대뿐 아니라, 4050 중장년층의 추억팔이도 한몫하고 있다.
유통가도 마찬가지다. 2019년 노 재팬 운동으로 한때 일본산 주류 제품 판매율이 큰 폭으로 떨어졌지만 최근 반전 양상이다. MZ세대를 비롯해 중장년층에서 일본산 주류 구입률이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주종은 사케와 위스키다. 슬램덩크 속 정대만 사케로 불리는 '미이노고토부키 준마이긴조'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급. 산토리 가쿠빈, 야마자키, 히비키 등 일본산 와인은 없어서 못 구할 정도다. 입고 소식이 알려지면 오픈런이 벌어진다. 3만원대 초반에 팔리던 제품 가격도 4만~5만원 수준으로 치솟았다.
아사히·삿포로·기린 등 일본산 맥주까지 덩달아 인기다.
관세청 무역통계를 보면, 올 1월 일본 맥주 수입액은 200만4000달러로 지난해 동월보다 314.9% 급증했다. 노 재팬 운동 당시인 2019년 7월(434만2000달러) 이후 최대 수입액이다.
자동차 수입 실적을 봐도 일본 브랜드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지난 2월 수입 승용차 신규 등록 대수는 렉서스와 도요타가 1344대와 695대로 지난해 동월보다 각각 183%, 149% 증가했다.
문화·유통 산업계의 예스 재팬 배경에도 2030세대의 당당함이 숨어 있다. 애국심과 소비 성향을 결부시키지 않는 MZ세대의 소비 성향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인상적인 건, 과거 '노 재팬'과는 차원이 다른 흐름이다. 노 재팬 운동처럼 정부나 관, 즉 위로부터 민간(아래)으로 번진 '주입식 운동'이 아니라, 민간에서 자연스럽게 싹트고 있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한일 양국은 겨우 '다시 동행할 결심'을 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보였을 뿐이다. 한데 민간 차원의 교류는 훨씬 앞서 나가고 있다.
사실 한일관계는 관이나 정부, 즉 위로부터의 반일·반한 감정 주입이 주를 이룬 경우가 많다. 이런 주입식 감정이 지배해도 결국 민간 차원의 긍정 에너지는 막을 수 없다는 의미다.
심원섭 목포대학교 관광학과 교수는 "정부와 관 주도였던 노 재팬 운동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실 예스 재팬이라는 용어로 표현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며 "자연스럽게 2030을 중심으로 퍼져가는 현상이며 그들의 취향이 반영된, 하나의 흐름으로 봐야 한다. 그래서 긍정적인 효과가 의외로 오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19년 '노 재팬' 운동을 주도한 인터넷 사이트 중 하나인 '노노 재팬'이 작년 3월 11일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올린 게시글이 예스 재팬 분위기에 대한 묘한 울림을 준다. '부정적인 에너지에 기반한 불매라는 키워드를 넘어 평화와 이해라는 단어에 기반하여, 긍정적인 에너지를 더하고자 합니다. 그래야만 더 나은 내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신익수 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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