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윤 대통령, 일본의 독도 도발에 왜 침묵하나 / 손원제

손원제 2023. 3. 19.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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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일제 강제동원]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부부와 16일 도쿄 긴자의 한 스키야키·샤부샤부 전문점에서 만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손원제 논설위원

“물컵의 반 이상 찼다. 일본 호응으로 물컵은 더 채워질 것이다.” 박진 외교부 장관의 구애는 모욕으로 돌아왔다. 일본은 물컵을 채우기는커녕 뺨에 그 물 반 잔을 끼얹었다. 강제동원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 있는 사과도, 전향적 상응 조처도 없었다. 외려 ‘종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의 추가 양보를 요구했고, ‘다케시마’ 문제까지 거론했다고 일본 고위 관계자가 밝혔다.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대한민국 대통령 면전에 대고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능멸을 당하고서도 당한 줄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저 희희낙락이다. 부부가 함께 최고급 와규 스키야키를 깨끗이 비우고 얼굴 가득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2차 식사 자리에선 ‘최애’한다는 치즈오므라이스를 안주로 소주, 맥주를 들이켰다. 게이오대학 연설에선 하필 조선 침략론자인 오카쿠라 덴신의 말을 인용했다.

윤 대통령은 만 6살이던 1966년 아버지와 함께 일본에 체류한 적이 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선 “(모리소바, 우동 등) 일본 음식을 좋아한다”며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를 꼭 본다”고 말했다. 개인으로선 아름다운 유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 즐거운 미식 기행의 시간이었으리라. 그러나 그 자리에서 국민 권리 보호와 영토 보위라는 대통령의 책무를 다했는지는 물음표로 남아 있다.

무엇보다 만약 독도 문제를 일본이 거론한 것이 사실이라면, 결코 용납돼선 안 되는 도발이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배상 문제보다도 한층 심각하다. 영토주권 문제에 관한 한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면 곧바로 이렇게 맞받았어야 한다. ‘독도를 건드리면 한-일 관계 진전은 없다.’ 회담장을 박차고 나올 수 있다는 결기를 보여줬어야 한다. 만약 일본 고위 관계자 발언처럼 독도와 관련한 일본의 주장이 나왔는데도 윤 대통령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회담을 마치고 일본 총리와 웃으며 술잔을 주고받았다면, 유례없는 국가 최고 지도자의 직무 유기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 교과서에 다케시마를 일본 땅이라고 명기하겠다”는 일본 총리의 말에,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해 논란을 빚었다. 당시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지만, 요미우리는 “보도 내용은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이 대통령이 “기다려 달라”(hold back)고 했다는 주일 미국 대사관 전문이 나중에 위키리크스에 공개되기도 했다.

이번에도 대통령실은 17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문제든 독도 문제든 논의된 바가 없다”고 부인했다. 18일엔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와이티엔>(YTN)에 출연해 ‘독도 언급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최근에 제가 기억하기로는 일본 당국자가 우리에게 이 독도 얘기를 한 기억이 없다”고 답했다. ‘정상회담에서 독도 언급이 있었느냐’고 물었는데, 딴 다리 긁는다는 느낌을 준다.

반면, 일본 고위 관계자는 정상회담 뒤 백브리핑에서 ‘다케시마와 위안부, 레이더 조사, 수산물 수입 규제 등에 대해 어떤 의견 교환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총리는 한-일 간 현안에 대해서도 잘 대처해 나가자는 취지를 밝혔다. 거기에는 다케시마 문제도 포함된다”고 답했다. 독도를 거론했다는 뉘앙스다. 그렇다면 우리도 단지 “제 기억에는” 운운으로 그칠 문제가 아니다. 일본 총리의 독도 언급이 있었는지, 거기에 윤 대통령은 어떻게 대처했는지 분명하게 밝히는 게 정도다. 만약 일본의 명시적 언급이 없었다면, 일본이 왜 저의가 의심되는 브리핑을 했는지 단호하게 질책하고 선을 그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선, 일본이 도발했는데도 모르고 허허 웃고 넘어간 무능 외교가 벌어진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식시킬 수 없다.

윤 대통령의 이번 대일 외교 행태는 여러모로 기괴하다. 일본엔 입안의 혀처럼 굴면서, 받들어야 할 국민의 자존심과 피해자의 명예는 대한해협에 내던졌다. 그 무능과 게으름의 결과를 “결단”이라고 추켜세우며 우쭐대고 있다. “왜 없는 것들은 인생에 권선징악, 인과응보만 있는 줄 알까?” 일본이 드라마 <더 글로리>의 반성 없는 가해자 박연진을 빼닮은 건, 우리 대통령이 피해자 문동은의 존엄을 돈 몇푼에 짓밟은 친엄마의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이래서야 곧 있을 미국 ‘국빈’ 방문에선 또 어떤 어마어마한 청구서가 날아들까 두렵다. 이 공포의 질주를 멈춰 세워야 한다.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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