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황·크레디트스위스·SVB…망자의 배후엔 [맨해튼 클래스]

뉴욕=박준식 특파원 입력 2023. 3. 1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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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골드만삭스 - No. 1 투자은행

[편집자주] 세계인들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부르는 뉴욕(NYC)과 맨해튼(Manhattan)에 대해 씁니다. 국방비만 일천조를 쓰는 미국과 그 중심의 경제, 문화, 예술, 의식주를 틈나는 대로 써봅니다. '천조국'에서 족적을 남긴 한국인의 분투기도 전합니다.

골드만삭스


금융위기 이전에 5대 투자은행(IB)이 있었다.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리먼브라더스 메릴린치 베어스턴스. 이들이 티어 원(Tier 1)이었다.

금융위기 이후 2개는 살아남고 3개는 사라졌다. 리먼브라더스는 파산해 공중분해됐고 메릴린치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베어스턴스는 JP모간이 사들였다.

알다시피 금융위기는 주택모기지 파생상품의 머니게임이 촉발했다. 그 중에서도 골드만삭스의 플레이는 탁월했다. 위기 직전에도 CDO(부채담보부증권)가 망할 줄 알고 베팅했던 헤지펀드 폴슨앤코와 상품을 함께 만들어 팔았다. 이 상품 '아바쿠스(ABACUS)'를 사들인 이들은 나중에 호구로 드러나 망한 AIG 이외에 경쟁 IB는 물론이고, 심지어 물정 모르는 개인투자자들도 수두룩했다.

어려우니까 쉽게 말하면 이런거다.

골드만삭스는 집 파는 중개인이자 건축가인데 건축주인 존 폴슨(폴슨앤코 창업주)과 같이 대충 겉만 번드르하게 집을 짓고 이 집 소유권을 여러개 증권으로 쪼개 판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아니다.

허깨비 집을 팔면서도 주변에 휘발유를 왕창 뿌려두고는 구매자 몰래 거액의 화재보험에 가입을 해둔 것이다. 이게 그 유명한 CDS(신용부도스와프)다. 그리고 실제로 이 집은 팔린 지 2주 만에 시한폭탄 같던 보일러가 터져 불이났고, 뿌려둔 휘발유가 폭발하면서 그 주변 마을까지 홀랑 다 타버렸다.

이후 10년 여 년간 골드만삭스의 이런 행태는 잠잠한거 같았지만 2년 전에도 한 건 멋지게 했다. 한국이 낳은 불세출의 월가 스타, 빌황을 한방에 보내버린 것이다.

UCLA를 수석 졸업한 목회자 아들 빌황은 타이거펀드 로버트슨의 눈에 들어 월가에 입성했고, 아케고스캐피탈을 만들어 레버리지 롱숏 플레이로 2021년 사건 전까지 100억 달러(13조원) 규모 자산을 운용했다.

빌황은 이익극대화를 위해 5~10배 짜리 레버리지 플레이를 즐겼는데, 어느 날 빌의 프라임 브로커 노릇을 하던 5개 증권사가 모여 회의를 했다고 한다.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도이치뱅크 크레디트스위스 노무라다. 이들의 회의 안건은 "빌의 플레이가 너무 크고, 너무 공격적"이라는 것이었다.

회의에 들어갔다 나온 것은 아니기에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중론은 기회를 더 줘보자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회의 다음날 모건스탠리가 골드만삭스의 눈치를 보면서 반대매매(마진콜)를 시작했고, 이 첩보를 실시간으로 입수한 골드만은 무려 하루만에 330억 달러 어치의 마진콜로 위험을 청산해버렸다.

누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결과적으로 빌황이 100억 달러를 모두 날린 것은 물론이고, 위험을 청산하지 못하고 손실을 떠안은 남겨진 브로커의 손실도 이와 비슷한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대상은 크레디트스위스와 노무라였는데, 이들이 책임져야 할 대가는 각각 70억 달러(약 9조1000억원)와 20억 달러(약 2조6000억원)에 달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167년 역사의 유럽 IB로 수신고가 2000조원에 달하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 건으로 인해 흔들리기 시작했다. 돈도 돈이지만 누구는 빠져나온 문제를 멍청하게 뒤집어 썼다는 인식이 부자 고객들 사이에서 퍼졌다. 결국 지난해 사실상의 뱅크런 사태를 겪었고, 120조원 이상 스마트머니가 빠져나갔다. 이 스위스 은행은 글로벌 석유재벌 사우디아라비아에 SOS를 쳐서 지난해 가까스로 살아났지만 지난주에는 사우디로부터도 더 이상의 투자는 어렵다는 딱지를 맞았다.

마지막은 이야기는 이제 CS와 함께 최근 미국시장을 뒤흔든 SVB파이낸셜그룹이다. 1983년 실리콘밸리은행이라는 지방은행으로 시작해 금융그룹으로 커온 이들은 브랜드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서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과 금융거래를 통해 커왔다.

코로나19 시기 유동성이 풀려 IT 산업이 부흥일 때는 쾌도난마처럼 달렸다. IPO(기업공개)와 M&A(인수·합병)으로 떼돈을 번 고객들로부터 쏟아지던 달러를 주체하지 못한 것이다. 실제 2020년 1월 550억 달러이던 예금 수신고는 지난해 말 1860억 달러로 세 배 넘게 늘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게 독이었다. 따뜻한 서부에서 구김없이 커서 돈이 많아 뭘 해야 할 지 모르던 모범생은 추운 동부에서 경쟁자들을 죽이며 살아온 이에게는 순진한 먹잇감에 불과했다. 실제로 SVB는 동부의 유명한 IB에 자기네 유동성 자금의 포트폴리오 투자 자문을 맡겼는데 그게 골드만삭스다. 넘쳐나던 돈을 그들 조언에 따라 장기 국채와 MBS(주택저당증권)으로 돌렸다. 그러나 잠재적 경쟁자에게 대놓고 자기 금고를 맡긴 SVB는, 각설하면 결국 망했다.

SVB 근거지인 캘리포니아 지역구의 민주당 하원의원 20명은 18일 골드만삭스가 SVB 붕괴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조사해보자고 성명을 내고 관계 금융당국을 압박했다. SVB의 채권 투자를 자문하면서 해당 포트폴리오를 골드만이 역으로 사들이기도 했다는 게 의원들 주장이다.

사실 매도와 매수를 동시에 조언하거나 해당 거래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쌍방대리로 이해관계인 충돌의 문제를 낳는다. 그건 심각한 모럴 헤저드다. 하지만 미국 내에선 어쩌면 골드만삭스 늘 그랬듯(?) SVB를 의도적으로 망하게 해서 이익을 본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타난다.

이게 사실일까 음모론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얄미울 정도로 똑똑해서 항상 위기를 피해가는 것처럼 보이는 골드만삭스에 대한 세간의 질투 정도일까.

사실 이 물음의 대답과 그 진실 여부는 어쩌면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게 맞다고 한들 금융위기 당시에 그 많던 비판과 책임추궁을 이들은 매우 유려하게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미국 재무장관은 물론이고 심지어 대통령을 이들이 정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유태계 금융의 대명사, 골드만삭스에 대한 인식 자체다. 금융계나 산업계에서 어느 정도의 성공과 부, 자산을 쌓으면 골드만삭스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들과 거래할 때는 한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그건 졸면 죽는다는 거다.

뉴욕=박준식 특파원 win047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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