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암초를 군사기지化… 주변국선 美 손잡고 ‘대치 전선’ [세계는 지금]

이귀전 2023. 3. 19.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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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의 화약고’ 남중국해 긴장 고조
中 ‘영유권’ 국제재판소 패소 판결에도
인공섬 만들어 공항 등 군사시설 조성
민간선박 호위 구실로 해군 함정 파견
比 경비함 향해 레이저 쏴 실명 유발도
필리핀, 美와 해상 순찰 6년 만에 재개
전투기 등 동원… G2 충돌 가능성 커져
아세안, 분쟁 방지 ‘행동강령’ 제정 추진
3월 말 첫 회의 전망… 中 측 대응 관심
러시아, 캐나다,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영토를 가진 중국의 면적은 약 960만㎢,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의 44배다. 총연장 약 2만2000㎞에 달하는 중국 국경과 맞댄 나라도 인도·몽골·러시아 등 14개국이다. 땅은 그나마 철조망 등을 쳐서 국경선을 획정할 수 있다. 명확한 경계 구분이 힘든 바다에선 영유권을 둘러싼 분쟁이 수시로 벌어진다. 대표적인 곳이 풍부한 자원과 지정학적 가치가 높은 남중국해다. 중국과 대만,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6개국이 치열하게 분쟁 중이다.
필리핀 해안경비대가 스프래틀리 군도 해역에 있는 중국 해상민병대 주위를 순찰하고 있다. SCMP제공
◆자원의 보고 남중국해

국제 사회에서 영향력이 커진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주변국 선박이나 항공기에 대한 무력시위 등 물리적 마찰을 주저하지 않는다. 중국의 ‘남중국해판 동북공정’에 맞서 동남아 국가는 미국과 함께 대응에 나서고 있어 남중국해가 언제든 우발적 충돌이 발생할 ‘화약고’가 될 가능성 또한 커졌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산하 아시아 해양 투명성 이니셔티브(AMTI)는 17일(현지시간) 남중국해 유역에 원유 110억배럴과 천연가스 5조4000억㎥가 매장돼 있다고 추정했다. 한국의 연간 석유소비량이 8억배럴 정도니 어마어마한 양이다. 남중국해는 여기에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의 각각 3분의 1, 2분의 1이 수송되는 중요 통로다.

중국을 비롯해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이 남중국해에서 유전과 가스전 등의 개발을 진행 중이다. 영해가 넓어질수록 자원 확보가 용이해지니 각국은 ‘단 1인치도 양보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미군이 필리핀에서 철수를 결정한 1992년 이후 중국은 남중국해에 영유권을 놓고 목소리를 키웠다. 중국은 한나라 시대 문헌과 명나라 시절 정화(鄭和)의 남해원정 자료 등 역사적 내용을 들이대며 남중국해 90%를 차지하는 ‘U’자 형태의 9개선 ‘남해9단선(南海九段線)’을 주장했다.

이는 영유권 주장을 하는 주변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과 겹칠 수밖에 없다. 대만 역시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에선 뜻을 같이한다. 국민당 정부는 중국을 지배하던 1947년 남중국해를 차지하기 위해 남해9단선의 원조인 11단선을 주장했다. 필리핀과 베트남 등은 국제법상 경제 주권이 인정되는 EEZ를 이유로 들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 군사기지화하고 있는 스프래틀리 군도의 미스치프 암초. AP제공
◆패소에도 영유권 고집하는 中

중국의 주장은 네덜란드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2016년 법적 근거가 없다며 패소 판결을 받았다. 남해9단선을 근거로 인공섬을 조성하는 것도 다른 국가의 주권을 침해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중국이 완패한 것이다.

중국은 이를 무시했다. 오히려 보란 듯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확보를 위해 암초를 확장하고 군사기지화하고 있다. 시간당 6000㎥의 모래를 굴착하는 준설선 등을 이용해 암초 주변을 매립해 섬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중국은 핵심적인 영유권 분쟁 지역인 스프래틀리(중국명 난사) 군도의 피어리크로스·미스치프·콰테론 암초 등 7곳을 인공섬으로 전환한 뒤 부두, 레이더, 공항, 군사 캠프 및 대형 항공기 격납고 등 군사 시설을 조성했다.

중국 한 연구 기관은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주장을 위해 섬들을 활용하는 물류 인프라 네트워크를 구축할 경우 10년에 걸쳐 60억위안(약 1조1400억원)에서 200억위안(3조8000억원)의 비용이 들 것으로 예측했다.

다른 나라도 스프래틀리 군도, 파라셀(중국명 시사) 군도, 스카버러섬(중국명 황옌다오) 등에서 전초 기지 건설에 나서고 있다. 대만은 약 1500㎞ 떨어진 스프래틀리 군도에 있는 이투아바섬(대만명 타이핑다오)을 실효 지배 중이다. 2020년부터 추진한 항만 준설 및 부두 개조 프로젝트 사업을 연내 완공할 계획이다.

베트남도 준설과 매립 작업을 통해 스프래틀리 군도 남이트, 피어슨, 샌드케이, 테넌트 암초 등을 인공섬으로 전환하고 있다. 필리핀이 실효 지배 중인 티투섬은 면적이 0.33㎢ 밖에 되지 않지만 주민 60여명이 살고 있고, 학교도 있다. 해안경비대 병력도 주둔 중이다.
◆中 위협에 美와 손잡는 동남아

중국은 다른 나라 어선이나 함정 등을 위협하는 도발도 서슴지 않고 있다. 필리핀 티투섬 앞바다에 지난 4일 중국 해상민병대 42척과 함정 1척, 해안경비정 1척이 나타났다.

필리핀 해안경비대는 “중국이 무해통항권과 무관하게 지속적이고 노골적으로 영해를 침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무해통항권이란 다른 나라의 질서와 안전을 해치지 않으면 해당 국가의 영해를 통과할 권리를 뜻한다. 더구나 중국은 민병대를 민간 선박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호위한다는 이유로 해안경비대와 해군 함정까지 보낸 것이다. 필리핀의 활주로 및 부두 시설 보강 공사를 저지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월에는 스프래틀리 군도의 세컨드토머스 암초 부근에서 중국 해경선이 필리핀 경비함의 암초 접선을 막기 위해 레이저를 쏴 선원들이 일시적으로 실명한 경우도 발생했다. 동남아 국가들도 중국 선박을 향해 경고하며 대응하고 있지만 역부족이었다.

필리핀은 지난달 미국과 공동 해상 순찰을 6년 만에 재개키로 합의했다. 미국은 중국의 위협을 견제하기 위해 필리핀 군 기지 4곳의 사용권을 확보했다. 미국과 중국이 직접적으로 부딪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필리핀은 일본과의 협력도 강화해 3국 방위 협정을 맺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주필리핀중국대사관은 12일 “미국이 영유권 분쟁 해역에서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려는 중국과 필리핀의 노력을 방해하고 약화하려는 해상 순찰을 통해 남중국해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며 “늑대를 집에 들이고 도둑에게 문을 열어 주는 악한 길은 말할 것도 없고 다툼을 일으켜 소란을 피우는 비뚤어진 길도 버려야 한다”고 경계했다.

미국은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 해역에 구축함이나 전투기 등을 진입시키는 ‘항행의 자유’ 작전을 펴고 있다. 지난달 남중국해 상공을 지나는 미국 해군 초계기에 중국 전투기가 150m가량 접근한 것처럼 두 나라 군대가 대치하는 일도 수시로 벌어지고 있다.
남중국해에 중국 해상민병대 선방이 모여 있다. AFP제공
◆협상하는 아세안과 中… 타결 미지수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해결을 위해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중국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회원국을 상대로 중국이 반복적으로 무력 도발 등을 하다 보니 구체적인 남중국해의 행동 규칙을 만들자는 것이다.

올해 아세안 의장국을 맡은 인도네시아는 지난달 외교장관 회의에서 “아세안은 올해 ‘남중국해 행동강령’(COC)을 확정하기 위해 움직이기로 결정했다”며 중국 측에 협상 참여를 촉구했다.

COC는 아세안과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확대를 막기 위해 2002년 발표한 ‘남중국해 분쟁 당사국 행동선언’(DOC)을 구체화하기 위한 조약이다. COC 초안 작성 작업을 시작하기로 2018년 합의했지만, 실질적 협상은 진행되지 못했다.

중국이 PCA 패소에도 고집을 부리고 있어 아세안은 국제법에 근거한 자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협상장에 앉을 방침이다. 영유권과 관련이 적고 중국과 가까운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4개국을 설득해야 한다.

중국과 아세안은 3월 말 첫 회의를 열 것으로 보인다. 아세안 국가들은 중국과 협상을 하는 동안 중국의 위협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국도 동남아 국가들과 갈등이 확대돼 앞마당에 미국이 진을 치는 상황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아세안의 분위기가 달라지자 친강(秦剛) 신임 외교부장은 2월 말 인도네시아를 찾아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중국이 고집을 부리고 있는 영유권에서 얼마나 물러날지는 미지수다. 남중국해서 미국의 영향력을 억제하는 선에서 미봉책으로 일관하며 시간 끌기에 나설 가능성도 크다. 딜런 로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는 “중국은 동남아 국가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점이 많아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해왔다”며 “이 지역에서 미국의 존재가 환영받고 있다는 사실은 중국에 불안감을 유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베이징=이귀전 특파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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