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청천의 통쾌한 권선징악, 중국판 솔로몬 연극 ‘회란기’

허진무 기자 2023. 3. 19. 13:5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연극 <회란기>의 한 장면. 엠비제트컴퍼니 제공

장해당은 가난한 집안에 떠밀려 기생이 됐다가 부자 마원외와 사랑에 빠진다. 장해당의 어머니는 황금을 받고 장해당을 마원외의 첩으로 보낸다. 본처 마부인은 자식이 없었고, 장해당이 마원외의 아이를 낳는다. 마원외의 재산을 탐내던 마부인은 마원외를 독살하고선 장해당에게 누명을 씌운 뒤, 장해당의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한다. 마부인의 불륜 상대인 조영사에게 매수당한 마을 사람들도 마부인의 편을 든다.

연극 <회란기>는 명판관 포청천(포대제)이 장해당의 아이를 찾아주고 마부인에게 엄벌을 내린다는 단순한 이야기이다. 중국 원나라 때인 1200년대 중후반 극작가 이잠부가 쓴 잡극(雜劇)이 원작이다. 서울시극단 단장인 유명 연출가 고선웅이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과 <낙타상자>에 이어 세번째로 중국 고전을 각색해 연출했다. 고선웅이 대표를 맡은 극공작소 마방진 소속 배우들이 출연한다. 지난해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초연을 올려 대중과 평단에 두루 호평받았다. 올해는 중극장으로 규모를 키웠다.

무대 가장자리에 기둥과 문을 세워 중국 전통 가옥의 모습을 단순하게 재현했다. 덕분에 배우들은 텅 빈 무대를 마음껏 사용하며 연기한다. 배우들의 의상과 분장도 최소화했다. 포청천은 관모만 머리에 쓰고 있을 뿐 복장은 평범한 양복이다. 고선웅은 “연극의 원형, 연극의 본질을 보여주려 한다. 그 연장선에서 무대와 조명 같은 치장을 최소화했다”고 말했다.

단순한 서사가 통쾌한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전한다. 앵무새가 “진실은 파묻어도 햇빛에 드러나고, 거짓은 감추려 해도 쇠꼬챙이처럼 뚫고 나온다”고 소리친다. 권력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버리는 현실과 다르다. 장해당에게 누명을 씌웠던 범죄자들이 줄줄이 무릎 꿇고 앉아 고개를 떨구는 결말은 답답한 속을 확 풀어준다.

연극 <회란기>의 한 장면. 엠비제트컴퍼니 제공
연극 <회란기>의 한 장면. 엠비제트컴퍼니 제공

반전도 없고 예측 가능한 서사가 약 2시간 이어지기에 관객이 지루해할 수 있다. 고선웅은 코믹한 연출에 몽둥이까지 동원해 재미를 끌어올렸다. 주인공의 억울함이 사무치는 내용인데도 연극은 가벼운 웃음을 동력 삼아 경쾌하게 달려간다. 우선 연극이 시작되기 전에 관객에게 몽둥이를 보여주고 직접 때리기도 하면서 맞아도 아프지 않은 소품이라고 주지시킨다. 연극이 시작되면 포쾌(포졸) 역의 배우들이 이 몽둥이를 ‘풀스윙’하며 ‘퍽퍽’ 소리로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한다.

장해당 역을 맡은 배우 이서현의 연기가 특히 돋보인다. 왁자한 코미디 속에서도 어머니의 애절한 사랑 연기로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다. 올해에는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태왕사신기> 등으로 유명한 배우 박상원이 배우 호산과 함께 포청천 역에 더블 캐스팅됐다.

구약성서 열왕기에 나오는 ‘솔로몬의 재판’이 떠오르는 이야기다.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 <코카서스의 백묵원>도 <회란기>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졌다. 포청천이 재판정 바닥에 하얀 원을 그리고 아이를 중심에 세운 뒤 장해당과 마부인에게 양쪽에서 팔을 잡아당기도록 하는 마지막 장면을 따왔다. <회란기>는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4월2일까지 공연한다. R석 7만원, S석 5만원이다.

연극 <회란기>의 한 장면. 엠비제트컴퍼니 제공
연극 <회란기> 포스터. 엠비제트컴퍼니 제공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