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칼럼]ESG와 정부의 역할

이준희 2023. 3. 19.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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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진 두이에스지(DoESG) 공동대표

가뭄으로 남부지역 저수지의 저수율이 50%대로 떨어졌다. 농업용수가 부족해 농가가 어려움에 처해있고, 먹을 물마저 위태롭다. 식수원인 주암댐의 저수율은 22%밖에 되지 않아서 발전용 댐인 보성강댐에서 물을 빌려준다고 한다. 한국수자원공사는 발전량이 줄어들어 생긴 손실을 한국수력원자력에 보상한다는 협약을 맺었다. 이상기후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다. 개별기업들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잘하면 이런 문제들이 해결될까.

'속도와 규모(Speed & Scale)'라는 제목에 '기후위기를 풀기 위해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액션 플랜'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존 도어(John Doerr)의 책이 번역 출간됐다. 저자는 시종일관 지금 당장 시급한 속도(Speed)와 방대한 규모(Scale)로 행동해야 함을 주장한다. 2050년까지 '넷제로' 즉 대기에서 제거하는 온실가스보다 더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지점에 도달하려면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생태계 붕괴와 거주 불능 지구를 막으려면 필사적으로 달려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벤처투자자인 존 도어의 목적과 의도가 무엇이건 간에 그의 책에서 주장하는 액션 플랜 가운데 두 가지 대목이 눈에 띄었다. 하나는 넷제로를 향한 목표별 수치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관리해야 하며, 다른 하나는 이를 위한 정치와 정책의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는 점이다.

ESG의 'E(환경)' 영역 제한에 대해 살펴보자. 대한민국이 넷제로에 도달하려면 목표 수치와 관리는 어디서 누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를테면 전력 부문 배출량은 몇 년까지 현재의 몇 퍼센트를 감축할 계획인지, 신규 승용차와 버스, 화물선, 트럭, 항공기는 언제까지 몇 퍼센트를 탄소중립으로 만들 건지, 산업 공정용 화석연료 사용은 언제까지 어떻게 폐지할 것인지 등이다. 이러한 각 부문의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과 기술개발 집중 예산을 지원·집행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면 '국가' '정부'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온실가스 배출만이 아니라 재생 에너지 사용 비율까지 관리돼야 할 E(환경) 영역에서 해당 수치를 공개할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 ESG 평가기관인 ESG모네타에 따르면 ESG평가 대상 상장기업 1093개 가운데 에너지 사용량 데이터를 보고한 기업은 439개, 재생 에너지 사용을 공시한 기업은 33개였다. 스코프(Scope) 1, 2, 3의 개념을 이해하기도 어려운 중소기업에서는 사용량 측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른다.

협력업체에 ESG 실사를 요구하는 공급망 실사법으로 중소기업들은 당장 거래나 계약이 중단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지난 2월 21일 기재부가 주재한 '제1차 민관합동 ESG정책협의회' 회의내용은 이런 상황을 '구경'만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가이드라인 마련, 컨설팅 지원이나 특성화 대학원 내 교육과정 개설 수준 등으로 그칠 일이 아니다. 기업들이 ESG에 생존을 걸고 있다면 정부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관리지표를 설정하고 구체적 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지원 수단과 예산을 밝혀야 한다. 상황 관리판이라도 만들어 중소기업 협력업체들에 대한 공급망 실사 대응계획이 제시돼야 한다.

'대통령직속 2050 탄소중립 녹색성장위원회'의 정책자료 게시는 작년 5월에 멈췄고,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2021년 11월 자료로 정지됐다. 화석연료로 움직이는 도로교통의 배출량 감축을 위한 연차별 계획이라도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정치와 정책의 역할은 법 제도를 만들어 놓는데 그치지 않는다. 기업의 ESG는 투자와 경영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국가의, 정부의 ESG는 어떤 계획을 보여주고 있는가. 농업용수가 바닥이고, 먹는 물이 말라가는 남부의 가뭄은 ESG와 정부의 역할과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방정부라도 나서서 ESG 도시를 만들기 위한 속도와 규모를 밝혀주길 바란다.

이숙진 두이에스지(DoESG) 공동대표 leesjdream@does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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