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하게' 이어지는 가뭄…'6일 단수 2일 급수' 보길도 가보니

이재영 2023. 3. 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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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에 찌든 작업복도 세탁 못하고 바닷물에 헹구기만
1년 넘은 남부 가뭄 해갈 요원…기후변화로 가뭄 등 '물 재난' 늘어
(완도=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가뭄에 물이 총저수량의 15%만 남은 전남 완도군 보길도 유일 식수원 보길저수지 15일 모습. 2023.3.15

(완도=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엿새 단수, 이틀 급수'.

전남 완도군 보길도는 가뭄에 작년 3월 10일부터 제한급수가 시행되고 있는데 현재는 엿새는 수돗물이 안 나오고 이틀은 나온다. 작년 8월에는 '여드레 단수, 이틀 급수'가 이뤄진 적도 있다.

엿새간 물이 나오고 이틀간 물이 안 나와도 생활이 매우 불편할 텐데 보길도는 그 반대 상황이니 김종덕 보길면 노인회장 말을 빌리면 불편함이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는 수준"이다.

기자가 보길도를 찾은 15일 섬에 완연한 봄기운이 감돌았다.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쬐면서 예년 이맘때보다 포근해 '날이 좋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말을 입 밖에 내진 못했다. 맑고 가문 날이 이어지면서 주민들 일상생활이 말도 못 하게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점심을 위해 찾은 식당에서도 한국수자원공사가 지원한 병입 수돗물을 줬다. 설거지는 어떻게 하는지 직원에게 물어보니 "물이 나오는 이틀간 물을 최대한 받아 놓고 쓴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모은 물을 다 쓰면 식당 문도 못 여는 것이다.

보길도와 그 이웃섬인 노화도는 '전복의 고장'으로 불릴 정도로 전복이 유명하다. 보길면은 주민 85% 이상이 전복 양식업에 종사한다. 그런데 요새 물이 부족해 양식장에 나가 일할 때 입는 '바닷물에 찌든' 작업복을 제대로 빨지 못한다고 한다.

김현주 보길면장은 "바닷일을 하면 빨래가 많이 나오는데 작업복을 집에 가져와 세탁은 못 하고 바닷물에 헹구기만 한다"라면서 "날이 더워지면 빨랫거리도 늘어날 텐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보길도에는 작년 한 해 비가 고작 704.4㎜만 내렸다. 최근 5년 평균 강우량(1천400.5㎜)의 절반 수준이다. 주민들도 "지난해엔 (9월에) 태풍 힌남노가 왔을 때만 비가 왔다"라고 할 정도로 1년 내내 가물었다.

올해 1월과 2월에는 비가 63㎜와 42㎜ 내려 5년 평균 강우량(39.8㎜와 36.7㎜)보다 많았지만, 해갈엔 역부족이었다. 땅이 워낙 바싹 말라 강우량 10㎜ 정도 비는 땅을 적시기에도 부족하다고 한다.

(완도=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가뭄에 물이 총저수량의 15%만 남은 전남 완도군 보길도 유일 식수원 보길저수지 15일 모습. 2023.3.15

보길도와 노화도 주민 7천400여명의 유일한 식수원 보길저수지에는 현재 총저수량(42만5천t)의 15% 수준인 6만5천여t의 물만 차 있다. 이는 주민들이 30일 정도 쓸 수 있는 양에 불과하다. 다만 최근 시범운영에 들어간 지하수저류지에서 하루 500~600t씩 지하수가 공급되고 급수차로 농업용 저수지 물을 하루 480t씩 가져오고 있어 이를 고려하면 물 공급이 60일까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보길도뿐 아니라 남부지방 전체가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14일 기준 73개 지방자치단체에 기상가뭄이 발생한 상태인데 세종, 충청 5개 지자체, 제주 2개 지자체를 제외하면 전부 남부지방이다.

기상가뭄은 6개월 누적강수량을 토대로 산출하는 '표준강수지수'가 -1 이하일 때를 말한다. 지역별로 차이는 있지만 보통 6개월 누적강수량이 평년의 65% 수준에 못 미치면 표준강수지수가 -1 이하로 떨어진다.

가뭄이 특히 심한 광주와 전남에서는 올해 홍수기 전 제한급수가 불가피하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광주 서·남·광산구와 전남 11개 시·군에 생활용수, 여수·광양산업단지에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주암댐은 16일 기준 저수율이 18%에 그친다. 광주 동·북구에 수돗물을 대는 동복댐은 지난 11일 '저수율 20%' 선이 약 100일 만에 다시 무너졌다.

광주시 상수도사업본부는 비가 내리지 않으면 주암댐은 5월 말, 동복댐은 6월 말 물이 고갈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1월 17일 오후 광주 광산구 수완동 한 상가건물에서 공무원이 '생활 속 물 절약' 실천 방안이 안내된 홍보물을 나눠주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남부지방 가뭄은 작년 2월 전남과 경남에서 시작했다. 지난해 남부지방 기상가뭄 발생일은 227.3일로 기상관측망이 전국에 확충돼 각종 기상기록 기준이 되는 1973년 이후 최장이다. 2위는 지금만큼 가뭄이 심했다던 2017년인데 차이가 65일에 달한다. 역대 최악의 가뭄을 겪는 중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지난해 여름 '우기' 때 남부지방은 후텁지근하기만 하고 비는 오지 않았던 여파가 극복되지 않고 있다. 작년 6~8월 남부지방 강수량은 483.3㎜로 평년 같은 기간 강수량(704.0㎜)을 크게 밑돌았다. 중부지방은 같은 때 강수량이 941.3㎜로 평년 강수량(759.6㎜)을 웃돈 것과 대비된다.

남부지방 가뭄은 작년 봄철 잦은 이동성고기압 영향에 맑은 날이 이어진 점과 북태평양고기압이 장마가 시작할 때부터 이미 가장자리를 한반도 쪽으로 뻗어 장마전선이 중부지방 위에만 걸쳐있었던 점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서태평양 해수 온도는 따뜻해지고 동태평양 해수 온도는 낮아지는 라니냐를 남부지방 가뭄 근본 원인 하나로 꼽기도 한다. 서태평양 수온이 높아지면서 이 지역 대기로 열이 더 많이 공급돼 고기압이 잘 발달한다.

최근 라니냐가 이례적으로 3년간 이어졌다는 점에서 라니냐를 남부지방 가뭄 원인으로 보면 남부지방 가뭄 역시 '기후변화에 따른 현상'이 된다.

다만 라니냐가 발생했을 때 우리나라에 항상 가뭄이 발생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라니냐를 남부지방 가뭄 원인으로 단정하기는 섣부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후변화로 극심한 가뭄이 늘어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최근 미국 항공우주국(NASA) 연구팀이 2002~2021년 전 세계서 발생한 가뭄과 홍수 1천56건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역사상 가장 더운 7년'인 2015~2021년 극단적 이상기후 현상이 가장 많이 발생했다. 이 시기 극단적 이상기후 현상은 매년 4건씩 발생해 이전 13년 연평균 발생 건수 3건보다 많았다.

jylee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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