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일부터 불펜서 던지는 일본 투수들…우리는 그렇게 안될까
(서울=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가 올해 일본 오키나와현에 스프링캠프를 차린다는 소식을 접한 일본프로야구 닛폰햄 파이터스는 삼성 구단에 연습 경기를 하자고 지난해 11월에 요청했다.
날짜는 지난 2월 9일이었다. 삼성이나 닛폰햄 모두 2월 1일 스프링캠프 훈련을 시작했다.
19일 삼성 구단 관계자에 따르면, 훈련 시작 열흘도 안 돼 실전을 치르는 것에 고심도 했지만, 박진만 감독이 일본 팀과 연습 경기를 해보는 게 좋겠다고 판단해 닛폰햄의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닛폰햄과 붙었지만, 게임다운 게임이 될 리가 만무했다.
닛폰햄 투수들은 스프링캠프 시작과 더불어 불펜에서 전력투구하고 실전을 준비한 데 반해 삼성 투수들은 그만큼 페이스를 끌어올리지 못했다.
삼성 구단 관계자는 "투수들의 구속에서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비단 삼성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프로 10개 구단의 사정은 대동소이하다.
비시즌 동안 선수들이 알아서 몸을 잘 만들어왔다지만, 스프링캠프 초반부터 전력투구하는 투수들을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불펜에서 20∼30개 던지고 며칠 쉰 뒤 다시 공을 뿌리며 일정에 맞춰 서서히 컨디션을 올려간다.
투수가 공을 던질 시점에서야 연습 경기가 가능하므로 보통 2월 20일 넘어 각 구단은 실전 체제로 들어간다.
우리와 달리 일본에서는 스프링캠프 개막이 곧 실전이라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잡혔다.
홈페이지에 스프링캠프 연습 경기 일정을 공개한 일본프로야구 구단을 살핀 결과 닛폰햄을 비롯해 요미우리 자이언츠·주니치 드래건스·지바 롯데 머린스(이상 2월 11일), 라쿠텐 골든 이글스(2월 12일), 한신 타이거스(2월 15일) 등 6개 구단이 훈련 개시 보름 안에 실전에 들어갔다.
그만큼 일본 투수들이 일찌감치 공 던질 준비를 했다는 점을 알려준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보름 정도 일찍 프로야구 시범경기를 시작한다.
따라서 투수들이 서둘러 컨디션을 조율할 수밖에 없다. 일본이 지리적으로 우리나라보다 따뜻한 남쪽에 있어 선수들이 동계 훈련을 대비하기에도 용이하다.
기후의 차이와 수 십년 째 굳어진 스프링캠프 훈련 시스템을 무시할 순 없다. 그렇다고 이 격차가 한국과 일본의 야구 수준 차를 정의하진 않는다.
다만, 우리 구단들이 스프링캠프 훈련 방식의 변화를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은 수긍할 만하다.
특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드러난 한국 투수들의 집단 제구 난조를 두고 여러 요구가 봇물 터지듯 분출하는 상황이라 확실한 개선책이 필요하다.
프로야구에 국한한다면 투수들의 절대적인 훈련량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다.
A 구단 관계자는 "스프링캠프에서 던지는 투수들의 투구 수가 과거보다 훨씬 적다"고 했다.
B 구단 관계자는 "프로야구선수협회의 비활동 기간(12월∼이듬해 1월) 팀 훈련 금지 방침을 존중한다"면서도 "돈 많이 버는 각 팀 주전급 선수들에겐 맞는 정책이지만, 저액 연봉자들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이들만이라도 예전처럼 1월 중순께 모여 팀 훈련을 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여러모로 나아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선수들의 프로 의식은 예전보다 크게 나아졌다. '루틴'(각자만의 준비 방식)을 정립한 선수들도 제법 많다.
그러나 이런 루틴은 컨디셔닝, 웨이트 트레이닝 등 지향점이 우리와 신체가 비슷한 일본이 아닌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 꽂힌 경우가 대부분이다.
빅리거를 꾸준히 키워내는 일본의 저력을 배우자는 열풍이 프로야구에 한때 몰아쳤지만, 지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온통 메이저리그 얘기만 떠돈다.
일본 투수들의 경쟁력은 탄탄한 하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교한 제구에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일본 투수들의 뛰는 양은 여전히 많다고 한다.
WBC에서 등판한 일본 투수들의 하체는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단련된 우리 투수들과는 사뭇 다르게 단단하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또 스프링캠프에서도 많은 공을 던진다. 많이 던져야 투구 밸런스가 잡히고, 제구 능력도 키울 수 있다고 일본 야구를 체득한 선동열 전 야구대표팀 감독은 누누이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장점은 소모적인 '어깨 혹사' 논란에 가려 빛을 잃었다.
선배 야구인들은 훈련량 감소를 두고 선수들의 '루틴'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타협'한 후배 지도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쓴소리하기도 했다.
투수에게 구속보다는 제구가 생명이라는 진리가 WBC에서 증명된 만큼 각 구단과 지도자들은 컨트롤을 개선할 훈련법을 '투수 왕국' 일본의 사례에서 찾아내야 한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새로 지휘봉을 잡은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 박진만 삼성 감독이 지난해 마무리 훈련부터 스프링캠프까지 단내가 날 만큼 투수와 야수들에게 많은 훈련을 시켰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다만, 무턱대고 일본을 따라 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C 구단 관계자는 "일본 투수들의 투구 메커니즘은 아주 좋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선수들이 없다"며 "투구 메커니즘을 숙련하지 않고 훈련량만 늘린다면 (부상 등의) 리스크가 더 커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세계와 격차가 벌어진 우리 야구의 정체성을 이제는 확실하게 인정하고 아마추어 야구부터 프로야구를 아우르는 전반적인 발전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cany99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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