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봄이 오는 길목에서 활짝 웃는 버드나무 꽃[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정충신 기자 2023. 3. 19. 10:2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버드나무 가지 잎보다 먼저 핀 꽃…신록으로 오인하기도
가막살나무도 빨간 열매와 새싹…봄·겨울 공존
청계천 봄의 전령사인 버드나무 꽃이 천변에 활짝 피어 있다. 3월17일 촬영

<오동나무는 천년 늙어도 항상 그 곡조 간직하고 / 매화는 평생 추운 겨울 꽃 피우나 향기 팔지 않네(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래 성질 남아있고 / 버드나무 백번 꺾여도 새 가지가 또 올라온다(月到天虧餘本質 柳經百別又新枝)>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이조좌랑을 지낸 상촌(象村) 신흠(申欽)의 이 칠언절구 한시는 퇴계 이황이 이 시를 책상에 붙여놓고 좌우명으로 삼았고, 백범 김구 선생의 생활 철학으로 자리 잡은 명시이자 명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거문고 가야금 재료인 오동나무와 매난국죽 사군자의 첫번째인 매화나무가 상징하는 음악과 향기는 잘 알려져 있다. 달의 영원성과 비교되는 버드나무가 ‘백번을 꺾이어도 또 새로운 가지가 올라온다’ 강렬한 의지는 불의에 절대 꺾이지 않는 선비의 강한 지조와 절개를 잘 나타낸다.

지난 17일 오후 버드나무 꽃과 가막살나무 새순이 피어나는 청계천 물속에서 백로가 물고기를 잡기 위해 물속을 노려보고 있다.

지난 17일 오후 찾은 청계천은 천변에 드문드문 핀 노란 산수유와 개나리, 백매(白梅)의 봄향기가 그윽했다. 백로가 배고팠던지 지나가는 사람을 의식 않고 물고기 잡기에 여념이 없고, 암수 청둥오리가 느긋하게 오수를 즐기고 삼삼오오 물길질로 바빴다.

봄이 오는 길목의 3월 중순 청계천은 드문드문 가막살나무 등의 새싹이 돋아나고는 있지만 여전히 무채색 계열이다. 가막살나무조차 가을에 열린 빨간 열매가 매달린 채 연두빛 새순과 함께 피어 있다.

지난 17일 봄이 오는 청계천. 천변 왼편에 버드나무 연노랑 꽃이 활짝 피어 있고, 오른쪽에 노란 산수유, 개나리가 피어있다.

청계천변 ‘봄의 전령사’는 송충이를 닮은듯한 연녹색 ‘버드나무(Willow)’ 꽃이다. 물을 한껏 올려 낭창낭창한 연두빛 새순 가지를 흔들기 전의 꽃이다. 버드나무 가지의 연두빛은 언뜻 보면 새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보들보들 보드라운 은빛 솜털 뒤집어쓴 갯버들 꽃, 흔히 버들강아지라 불리는 갯버들 꽃은 깜찍한 모습으로 널리 소개되지만 정작 버드나무가 이른 봄 일찌감치 꽃을 피운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버드나무는 버드나무목 버드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전국 각처에 서식하나 특히 냇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520여종,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버드나무는 수양버들, 능부버들, 갯버들, 왕버들,호랑버들 , 쪽버들, 용버들, 여우버들, 떡버들 등 30여종에 이른다고 한다.

이 버드나의 연녹빛이 모두 꽃송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꽃은 암수 딴그루에서 피지만 드물게 같은 나무에서 암꽃과 수꽃이 함께 피는 경우도 있다. 꽃은 4월에 잎보다 먼저 혹은 어린 잎과 함께 핀다. 열매는 5월에 익으며 열매 안에는 하얀 솜털이 달린 종자가 들어있다.

버드나무는 암꽃보다 수꽃이 더 화려하고 예쁘다. 수꽃은 노란빛이 도는 연녹색, 암꽃은 연녹색으로 구분한다. 먼발치에서 봤을 때 전체적인 색깔이 노란빛으로 보이면 수꽃 달린 수나무이고 연녹빛이면 암꽃이 달린 암나무인데 구분이 쉽지 않다.

버드나무는 쌍떡잎식물로 버드나무목 버드나무과의 낙엽교목이다. 원산지는 주로 유럽과 아시아이다. 가로수로 많이 심는 나무로 전세계에 300여종이 있다. 버드나무는 암꽃과 수꽃이 따로 피는, 은행나무·소철과 같은 자웅이주(雌雄異株·암수딴그루)이지만 때로는 같은 나무에 달리기도 한다. 암꽃과 수꽃 구별이 쉽지 않다. 수꽃은 1∼2㎝ 정도이고 가운데 축을 중심으로 수술이 빽빽하게 돌려난다. 수술은 2개씩이고 전체적으로 노란빛을 띤다. 이에비해 암꽃은 수꽃과 비슷한 크기로 암술머리는 4개로 갈라지며 전체적으로 연두색을 띤다.

가마살나무 새순이 청계천 징검다리 위에서 빨간 열매와 함께 피어 오르고 있다. 3월17일 촬영

버드나무 영어 속명 ‘살릭스(Salix)’는 ‘물가에 산다’는 뜻의 라틴어가 어원이다. 버드나무는 물가에서 잘 자란다. 버드나무의 왕성한 뿌리는 수질을 정화하는 기능이 있다. 영어 이름 ‘윌로(Willow)’는 ‘회전한다’는 뜻의 ‘웰(well)’에 어원을 두고 있다. 버드나무 잎이 떨어지며 나선형으로 회전하는 모습에서 연상된 듯한 이름이다.

버드나무 꽃말은 ‘솔직’‘자유’ ‘경쾌’ ‘태평세월’ 등 쾌활하고 기분좋은 단어다. 대기오염과 수질오염을 정화하는 능력이 뛰어나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뿌리 응집력이 강해 호수나 하천 변에 심어 토사유실에 대비하기에 좋다. 외국에서는 잎이나 줄기 색깔이 다양한 품종들이 개발된다고 한다.

5월이면 버드나무에서 날리는 솜털 때문에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꽃가루로 오인받아 수난을 당하기도 한다. 버드나무는 벌·나무등 곤충이 꽃가루받이를 돕는 충매화( 蟲媒花)이기에 꽃가루와는 무관하다. 꿈틀거리는 송충이 같은 꽃이 그다지 예쁘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사랑스럽다.

버드나무는 종류 불문하고 독성이 없으며 약용 기능이 뛰어나다. 버드나무 약성을 살리실산이다. 항염증 작용으로 피부병 치료제와 아스피린의 기본 성분으로 해열, 진통제로 사용된다. 서양에서는 버드나무 아래 마녀들이 모이고 숨는 장소라고 한다.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살랑살랑 움직이는 소리는 사람들의 우울함을 부추기는 ‘악마의 속삭임’이라고들 한다.

버드나무 연두색 꽃이 청계천 징검다리 위에 드리워져 있다. 3월17일 촬영

능수버들이나 수양버들의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귀신으로 회자되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썩은 버드나무 줄기는 깜깜한 밤이면 빛이 난다고 한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도깨비 불’이라고 했다. 습지의 버드나무가 무성한 숲속에서는 어김없이 도깨비불이 나타났다고들 한다.

‘수양버들(Weeping willow)’. 줄기를 길게 늘어뜨린 모습이 마냥 처연하게 보여서 서양에서는 ‘흐느끼는 버드나무’란 이름으로 불린다. 그래서 꽃말은 ‘내 마음의 슬픔’‘사랑의 슬픔’이다. 수양버들 꽃말은 슬프게 가지를 드리우는 모습 때문이 아니라 “포로가 된 유대인 여자들이 바빌론 강가에 앉아 고향 팔레스타인을 그리며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노래를 부르지 않고 기슭의 버드나무 아래서 거문고를 탓다”는 구약성서 기록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수양버들의 속명 ‘살릭스 바벨로니카(Salix Babylonica)’. ‘Babylonica(바벨론)’은 구약성경 시편 137편에 나오는 바빌론 강변의 버드나무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바빌론 왕국에 의해 나라를 잃은 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론 강가에서 조국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의 배경이다. “바빌론 강가에서 우리는 앉아 있었죠. 그래요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면…”로 시작되는 보니 엠의 ‘Rivers of Babylon(바빌론의 강가에서)’는 망국의 슬픔이 묻어나는 비장한 노래다.

버드나무는 물을 좋아해서 하천이나 호수 옆에서 많이 자란다. 높이가 20∼25m까지 자란다. 성장 속도는 빠르지만 수명은 40∼75년 정도로 나무 수명으로 봐선 길지 앞은 편이다.

글·사진=정충신 선임기자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