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제주 바다에 '세 사람'이 뛰어들었다[인류애 충전소]

남형도 기자 2023. 3. 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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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안경비단 남기상 경감(54), 한겨울 제주 바다에 죽으려 뛰어든 20대 2명 살려…"병원서 깨어났단 말에, 살아줘서 진짜 고맙단 생각만…홀로 힘들어 말고, 곁에 있는 이와 접촉할 용기만이라도 가져주기를"

[편집자주] 세상도 사람도 싫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래도 어떤 날은 위로받기도 하지요. 숨어 있던 온기를 길어내려 합니다. 좋은 일도, 선한 이들도 꽤 많다고 말이지요. '인류애 충전소'에 잘 오셨습니다.

새벽 1시에 사람을 구하러 왔던 그날의 바다를, 14일 오후 오랜만에 다시 찾은 남기상 제주해안경비단 경감(54). 그냥 봐도 두려운 거센 파도에, 그것도 추운 겨울에, 어두컴컴한 밤에, 소방도 아닌 경찰이 뛰어들었다. 사람을 살리겠단 마음 하나만으로./사진=남형도 기자
/일러스트= 조보람 작가(@pencil_no.9)

"친구가 제주에 갔는데, 나쁜 마음을 먹은 것 같아요. 도와주세요."

지난해 2월 4일 새벽 1시쯤. 제주 경찰 지구대에 112 신고가 이리 접수됐다. 제주에 간 친구가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를 남겼단다. 내용이 이랬다. 죽으려고 제주에 왔다고, 그런데 사실은 죽긴 싫다고.

긴박한 상황이었다. 즉시 '코드 1(원)' 지령이 발동됐다. 핸드폰으로 자살 위기자 위치를 추적했다. 카페 인근 바다로 나왔다. 경찰이 5분 만에 출동했다. 직원 한 명이 황급히 먼저 갔다.

파도가 휘몰아치는 추운 겨울 밤바다. 거기에 들어가는 이들을 발견했다. 20대 여성 두 명이었다. 경찰이 소리쳤다.

"어어이, 잠깐, 잠깐만!"

그들은 경찰을 힐끗 보았다. 그러나 망설임 없이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주저할 수 없이 '비상'이었다. 경찰은 지구대에 지원 요청을 했다. 팀장이었던 남기상 경감(54)도 즉시 경찰차에 올랐다. 구명환이 있는지 재차 확인했다. 출동하며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오갔다. 끊임없이 이미지를 그렸다. 만약 물에 떠서 있으면 어떻게 할지, 헤엄쳐서 어디까지 갈지.

그만큼 살리고픈 마음뿐이었다.

죽으려던 사람, 기어이 살리려던 사람
남기상 제주해안경비단 경감(54). 실은 만난 자리에서 인터뷰 사진을 찍어줬는데 내가 잘 못 찍어서, 보내준 사진으로 대신하기로. 취재원의 의사를 가장 존중한다./사진=남기상 경감 제공
남 경감에게 인터뷰 요청을 한 건 지난해 12월이었다. 그는 대번에 안 하겠다고 거절했다. 혹여나 바다에서 구한 이들에게 재차 상처가 될까 걱정이라며. 또 그리 잘했다고 드러낼 것도 아니라며. 어느 누가 해도 할 거라고, 언론에 나오는 건 창피하다고 말이다.

알겠다며 시간을 조금 더 두었다. 한 달 정도 지난 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의인(義人)들에게 상 주는 자리에 찾아갔다. 그를 만나 다시 조심스레 인터뷰를 요청했다. 취지를 자세히 설명했다. 혹여나 스스로 생을 끊으려는 이들이 또 있지 않겠느냐고, 걱정된다고. 그보다 더 살리고픈 이들도 많단 걸 크게 떠들어, 방향을 죽음이 아닌 삶으로 돌리고 싶다고. 고심하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석 달이 지나 계절이 바뀌었다. 지난 14일 오전, 봄이 스며든 따뜻한 제주에서 남 경감을 만났다. 공항까지 마중 나온 이는 멀리 오느라 고생했다며, 내게 뜨신 제주 몸국과 고등어구이를 사줬다. 맛있게 먹은 뒤, 그날 그 일이 있었던 바다로 향했다. 여기인 것 같다며 남 경감이 차를 세웠다. 내려서 함께 걸어갔다. 까맣고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 지대를 지나, 윤슬이 반짝이는 푸르고 장엄한 바다와 마주했다. 이내 컴컴했을, 그날 새벽을 짐작했다.

남기상 경감과 함께한 점심식사. 몸국과 고등어구이, 맛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형도 : 가까이에서 보니 파도가 더 세네요. 겨울이라 수온도 낮았을 거고요. 도착하셨을 땐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기상 : 바다에 들어가 물에 떠내려갔어요. 그런데 정말 다행히 조류에, 파도에 밀려서 뭍 방향으로 조금씩 온 거예요. 가보니 한 친구는 물에 반쯤 잠겨 있었고, 다른 친구는 물에 다 잠겨 있더라고요.

형도 : 다시 돌아왔다니 정말 큰일 날 뻔했네요. 그리고 어떻게 됐을까요.
기상 : 정신이 있는 친구는 직원들 도움으로 부축해서 갔어요. 물에 잠긴 친구가 큰일이었지요. 제가 바다에 들어갔어요. 제 키가 180cm인데, 발이 안 닿아 힘들더라고요. 옆에 돌을 잡았어요. 파도가 좀 치더라고요. 그 친구가 떠내려가지 않게 지탱하면서, 그 친구가 호흡할 수 있게 들어 올렸지요.

발이 닿지 않아 돌을 짚어가며 구했다고. 호흡을 할 수 없는 이를 밀어올려서, 어깨로 심폐소생술을 해서 의식이 돌아오게 했다. 사람을 그리 힘겹게 살렸다. 살아줘서 너무 고마웠다고./사진=남형도 기자

형도 : 겨울이고 밤바다인데요. 수온은 낮고, 컴컴하고, 파도도 세고요. 또 소방이 아닌 경찰이시고요. 걱정되는 상황이지요.
기상 : 그땐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젊은 친구들이잖아요. 제 딸이 그 또래라, 딸 생각이 나더라고요. 긴장된 상태였는지 춥단 생각도 안 들더라고요. 살도록 견디게만 해주자, 그 마음이었습니다. 직원들이 더 와서 힘을 합쳐 들어 올렸지요.

등에 업고, 현무암반 길 50m 걸어서 살렸다
현무암반지대가 펼쳐져 구조가 더 힘든 상황이었다고./사진=남형도 기자
바닷물에 젖은 두 사람이 물에서 뭍으로 나왔다. 어렵사리 꺼내었으나 빠졌던 이는 의식이 없었다. 그는 몸이 축 늘어져 있었다. 호흡을 돌아오게 해야 했다. 심폐소생술이 절실했다. 남 경감의 이야길 거기까지 듣고 나서, 당시와 같았을 바닥을 봤다. 울퉁불퉁하고 굴곡진 현무암투성이였다. 게다가 소방도, 해경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형도 : 심폐소생술을 하려면 가슴 압박을 세게 가해야 하는데요. 바닥이 이래서, 하기가 힘들었겠습니다.
기상 : 맞아요. 업어가야 하는데, 의식이 없어서 뭐라도 먼저 해야겠다 싶더라고요. 그런데 바닥에 눕힐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궁여지책으로 구조한 분을 들쳐업었어요. 그 상태로 가슴과 명치를 어깨로 치면 호흡이 돌아올 거라 생각했지요. 대여섯 번을 하니까 "윽"하는 소리가 나더라고요.

형도 : 아…의식이 돌아오는 소리였군요.
기상 : '아, 살았다. 이제 데려가자' 싶더라고요. 등에 업어서 나가야 했지요.

울퉁불퉁한 현무암반 지대를 남 경감과 함께 걸어가봤다./사진=남형도 기자

그 이야길 나누며, 현무암반 지대를 남 경감과 함께 걸어 나갔다. 돌덩이가 온통 울퉁불퉁했다. 홀로 중심을 잡고 걷기도 쉽지 않았다. 기우뚱하다가 결국, 중심을 잃은 내 한쪽 발이 물웅덩이에 푹 빠지기까지 했다. 하물며 물에 잔뜩 젖은 사람이, 구조한 이를 등에 업고 걸어 나간다니. 상상이 잘되지 않았다.

형도 : 구조한 분을 업고 나간다니, 너무 힘드셨겠어요.
기상 : 그게 솔직히 제일 힘들긴 하더라고요(웃음). 제 옷도 다 젖어 있는 상태여서요. 중심 잡고 가야 하는데, 중간에 넘어지면 큰 사고잖아요. 그래도 다리로 하는 건 자신 있단 생각이었습니다. 2004년부터 마라톤을, 7~8년 전부터 배드민턴도 꾸준히 하고 있고요. 경찰에선 태권도 대표로 나갔었고요. 긴 거리도 아니고 여학생이니까요.

마라톤과 배드민턴, 태권도 등 운동으로 평소 체력 관리를 철저히 하는 남기상 경감./사진=남기상 경감 제공

형도 : 그리고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갔겠군요.
기상 : 업어서 나가니 구급차가 와 있더라고요. 나중에 병원에 가서 의식을 찾았단 얘길 들었어요. 그냥, 진짜 고맙더라고요. '내가 구했어', 그런 게 아니라 그저 살아줘서 고맙다고요. 이후에 연락은 없었어요. 잘살고 있다고 알려주지 않아도, 전혀 상관없어요. 그 친구가 앞으로 잘 살면 돼요. 그거면 됩니다.

꼭 해주고픈 이야기…"잘 살 용기 아니어도 괜찮아요, '나 힘들어' 그 정도라도"
의로운 경찰, 세 자녀에게 자랑스러운 아빠, 멋진 남편이라고./사진=남기상 경감
대화 도중 계속해서 "함께한 직원들 덕분"이라며 공을 돌리던 사람. 제주에서 태어나 현무암 지형은 어렸을 때부터 수영하러 다녀 잘 안다던, 의롭고도 의로운 경찰. 덤덤히 말하던 그도 자녀들 얘기엔 함박웃음을 지었다. 특수부대에 복무 중인 과묵한 아들은 "고생하셨어요"라고 했고, 딸은 아빠가 의인으로 수상한 걸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것 같았다고.

세 자녀에게 누구보다 자랑스러웠을 아버지. 다만 누구보다 걱정했을 아내에겐, 한소릴 들었단다.

형도 : 그럴 수밖에요. 너무 걱정되면 화까지 나니까요.
기상 : 퇴근하고 갔더니 "위험하게 왜 뛰어드냐"고 뭐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물에 빠진 걸 구한 게 처음이 아니거든요. 2008년쯤에 제주 돈내코 유원지에서, 고등학생 한 명이 물에 빠지는 걸 봤어요. 수영 금지 지역에서 놀길래, 불안했었거든요. 발이 미끄러져서 밑으로 쑥 들어가더라고요. 잠수해 들어가 밀어 올려 구했지요.

/사진=남기상 경감 제공

형도 : 사모님께서 그때도 뭐라고 하셨겠는데요.
기상 : 욕먹었지요(웃음). 왜 뛰어드냐고요. 애들도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으니까요. 평소 이 상황에서 사고가 생기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을 자주 해요. 유원지 구조도, '빠질 수 있겠다, 위험한데'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대응이 빨리 된 거고요. 그래도 한편으론 뭐라고 하지만, 사람 구한 거니까 고생했다고 하더라고요.

형도 : 소방관을 하셨어도 잘하셨겠어요.
기상 : 그걸 해야 했었나 봐요, 경찰이 아니라(웃음).

형도 : 혹시, 경감님께서 살려낸 분들이 이 글을 보신다면요. 꼭 전하고픈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아주 혹시나, 죽음을 생각하는 분들께도요.
기상 : 제가 만약에, 힘든 일이 있다면요. 이렇게 해결할 것 같아요. 내가 풀지 못하는 걸 선생님, 부모님, 친구, 동생이 풀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얘길 나눠보는 거고요.

혼자 일을 너무 확대하거나, 자신을 학대하거나,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 잘 살아야지', '나 뭐 돼야지', 그런 용기 말고요. '실은 제가 좀 힘들어요, 고민이 있어요, 만나주세요', 그 용기만 내어보기로요. 옆에 있는 사람과 접촉할 수 있는 용기만이라도 가져보라고요. 풀릴 수 있는 거니까요.

나아질 거란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힘듦이 한없이 이어진단 생각을 할 때, 절망에서 선택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남기상 경감은 내게 간곡히 당부했다. "부디, 희망을 줄 수 있는 제도를 많이 발굴해주십시오"라고./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죽음을 생각한 이들을 구해 경찰 지구대에서 잠시 보호할 때가 있단다. 그럴 때 남기상 경감이 다가가 말을 걸곤 했다고.

"걱정이 뭡니까, 한 번 들어나 보게요."

처음엔 절대 얘기하지 않는단다. 그럼 가만히 옆에 앉는다. 그렇게만 해도 절반 정도는 푸념한다고. 이야길 들으며 "아, 그랬느냐"고 공감해준다. 그렇게 집에 돌아가는 이들도 있다.

어떤 사람은 살려낸 그에게, 외려 뭐라고 하기도 한다. 죽게 놔두지 왜 그랬냐고. 그 말에 남 경감이 이리 답했단다. 제주도 사투리로.

"삼춘 살리는 게 우리 일인디, 그럼 죽게 놔둡니까."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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