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식 한 달 장기휴가' 청사진, 왜 안 통했나

최유빈 기자 입력 2023. 3. 19.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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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S리포트 - 근로시간 유연화의 그림자] ② "현장 모르는 탁상행정"… 들끓는 직장인들

[편집자주]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이 도마에 올랐다. 주 52시간으로 제한된 된 현행 근로시간을 확대하려는 계획에 '장시간 노동으로의 회귀'라는 비판이 따라붙고 있어서다. 정부는 근로시간을 유연화하는 대신 근로자가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해 '일할 땐 확실히 일하고 쉴 땐 확실히 쉬는 문화'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현재 부여된 연차조차 눈치를 보고 써야 하는 현실을 간과한 것이란 지적이다. 정부가 끌어 안으려던 MZ세대마저 근로시간 유연화를 반대하고 나서자 윤석열 대통령은 재검토를 지시했다.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 방향은 어디로 갈 것인가.

정부가 근로시간 개편안 재검토에 돌입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이미지투데이
▶기사 게재 순서
①MZ세대 반발에 화들짝… '주 69시간' 백지화
②'유럽식 한 달 장기휴가' 청사진, 왜 안 통했나
③'근로시간 개편' 숨 고르기… 재계 숙원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윤석열 대통령이 69시간 근로제를 비롯해 노동시간 유연화 법안에 대한 재검토를 지시했다. 그동안 정부는 연장 근로시간 확대에 따른 보상으로 유럽식 한 달 휴가 등을 크게 부각했으나 근로자들의 거센 반발에 한 걸음 물러난 것이다. '일한 만큼 몰아서 쉬도록 하겠다'는 정부 정책의 현실성을 높이기 위해선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촘촘한 법적 근거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근로자가 원하는 때 장기휴가 간다… 정부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추진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6일 노동개혁 추진 점검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윤 대통령은 지난 3월14일 근로시간 유연화 법안과 관련해 "입법예고 기간 중 표출된 근로자들의 다양한 의견, 특히 MZ세대의 의견을 면밀히 청취해 법안 내용과 대국민 소통에 관해 보완할 점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주당 최대 69시간 노동 허용과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 등 근로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근로시간저축계좌제는 연장, 야간, 휴일근로 등에 대한 보상을 현금 또는 미래의 휴가(저축 휴가)로 선택하도록 하는 제도다. 적립한 시간은 '저축휴가'로 근로자가 원하는 시기에 사용할 수 있으며 기간 내 사용하지 못한 시간은 정산하거나 이월된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추가 근로에 대해 가산수당 지급이 원칙이다.

정부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도입해 장기휴가를 활성화함으로써 노동의 질을 높일 계획이었다. 연차와 저축휴가를 결합하면 제주 한 달 살기 등 장기휴가가 가능해 충분한 휴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이번 개편안이 현장에서 악용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이번 개편안이 당초 의도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근로자의 권리의식, 사용자의 준법의식, 정부의 감독행정 등 세 가지가 함께 맞물려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속도감 있게 제도 개편을 추진해 위 세 원칙이 산업 현장에서 확고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있는 연차도 못 쓰는데… '탁상행정' 비판 쇄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이미지투데이
정부 발표 직후 직장인들의 원성이 폭발했다. 법적으로 근로자에게 보장된 연차도 못 쓰는 경우가 많아 정부 정책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이유다. 지난해 말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평균 연차 소진율은 58.7%로 전년(63.3%)보다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직장인들은 과도한 업무와 인력 부족 등으로 자신의 휴가를 모두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응답자의 39.9%는 연차를 소진하지 못한 이유로 ▲업무량 과다 또는 대체인력 부족을 꼽았고 ▲미활용 연차휴가에 대한 금전적 보상(23.2%) ▲연차 부여 일수가 많아서(20.5%) ▲상급자 및 동료의 눈치(15.2%) 등이 뒤를 이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사업체일수록 일손 부족에 시달려 정부가 도입한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등을 활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소규모 사업체(5인~9인) 소속 응답자의 45.8%는 업무량 과다와 대체인력 부족으로 연차를 소진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반면 대기업 근로자는 미활용 연차 휴가에 대한 금전적 보상(30.8%)을 위해 쓰지 않았다고 했다.

스타트업에 재직 중인 A씨(30)는 "업무를 대체해줄 직원이 없어 휴가도 눈치를 보며 쪼개서 쓰고 있다"며 "그마저도 중요한 일이 생기면 휴가지에서 노트북을 펴고 일하는 일이 많다"고 토로했다.


정부, 근로제도 '재검토' 돌입… 정책 실효성 높이려면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이미지투데이
직장인들은 '자유로운 장기휴가'라는 정부의 도입 취지와 달리 제도가 악용돼 근로자의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사업주가 연장근로 보상을 돈이 아닌 휴가로 주겠다고 한 뒤 근로자가 휴가를 사용하려 할 때 회사 사정 등을 이유로 반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제시한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초안에 근로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을 뿐 사업주를 규제할 방법이 빠져있다는 점도 우려를 키운다. 정부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선 근로제도를 악용하는 사업주를 규제할 법적 근거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의 정현철 사무국장은 "이미 근로 현장에서 제도를 악용하는 사용자가 많은데 정부의 정책 목적에 따라 근로자가 휴가를 붙여서 사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근로제도 악용 가능성에 대해 고용부 장관이 권리의식을 이야기하며 나이브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현장을 전혀 모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도입한다면 기업과 사용자가 이를 지키지 않았을 때 처벌할 수 있는 체계 등이 함께 마련돼야 근로자를 보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유빈 기자 langsam4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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