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과점 없애 경쟁 촉진” vs “지금은 부실 증가 대비할 때” [뉴스 인사이드-‘금산분리 완화’ 논의 재점화]

안승진 2023. 3. 18.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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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대통령 국정과제 개혁 추진 의지
18개 은행 중 5대 은행 점유율 ‘77%’ 달해
2022년 ‘고금리장사’ 성과급 잔치 벌여 빈축
“거대 은행 대항 위해 산업자본 도입 필요”
새 은행 만들어 경쟁 촉진 목소리 높여져
당국, 스몰 라이선스·챌린저 뱅크 등 거론
다양한 형태 산업·금융 융합 요구도 분출
美 SVB 등 소규모 은행 연이은 파산 여파
“은행 많아지면 건전성 악화” 지적도 나와
지난해 고금리 장사로 5대 은행이 성과급 잔치를 벌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새로운 은행을 등장시켜 경쟁을 촉진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은행의 과점 폐해를 들어 대안을 지시하면서 금융 당국은 은행의 경쟁 방안에 대한 신속한 검토에 나섰다. 새로운 은행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약 40년 동안 이어온 금산분리(금융과 산업 자본의 분리)가 완화될지는 이번 논의에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다. 새로운 은행이 거대은행 자본과 맞서기 위해서는 해외처럼 산업자본을 도입해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다. 다만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등 소규모 은행이 연이어 파산하면서 금융 소비자를 보호할 방안을 고려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우려도 작지 않다.

◆尹, 국정과제에 담긴 금산분리

1982년 도입된 금산분리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서로의 업종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원칙을 담고 있다. 금산분리에 따라 산업자본은 은행 주식의 4%(의결권 미행사 시 10%)를 초과해 보유할 수 없고, 은행도 비금융 자본을 15% 이상 가질 수 없다. 금산분리는 금융의 대기업 사금융화를 막겠다는 취지로 등장했는데, 실물 경제의 리스크가 금융 산업으로 전이되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하지만 빅블러(경계 융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금융과 비금융의 경계가 점차 사라졌고 금산분리 역시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지난해 5월 발표한 윤석열정부의 110대 국정과제에는 금산분리 완화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금융과 비금융 간 융합 활성화를 위해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고 다양한 사업 모델을 수용할 진입 체계를 마련하겠다는 국정과제가 제시됐다.

윤석열정부의 첫 금융위원장인 김주현 위원장은 10여년 전 금융위 국장 시절부터 금산분리 완화 정책을 추진한 인물이다. 김 위원장은 취임 직후 “금산분리, 전업주의 등 과거의 전통적 틀에 얽매여 구애받지 않고 과감히 개선하겠다”고 금융 개혁 의지를 다졌다.
김소영(왼쪽 세번째)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개최한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실무작업반 제3차 회의'에서 은행권 손실흡수능력 제고를 위한 건전성 제도 정비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제공
◆소규모 특화 은행 통한 은행 경쟁 논의

17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은행 개혁 지시에 금융위는 수요일마다 ‘은행권 경영·영업관행·제도개선 실무작업반’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어 5대 은행의 과점 체제를 허물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금융 당국이 지금까지 밝힌 은행권 신규 참여자에 대한 밑그림은 소규모 인허가(스몰 라이선스)와 챌린저 뱅크다. 스몰 라이선스는 소상공인, 중소기업, 외환 등 금융업의 인허가 단위를 세분화한 작은 은행을 인가해주는 것이다. 1000억원인 시중은행의 자본금 기준을 지방·인터넷 은행 수준의 250억원으로 낮춰 진입 장벽을 낮추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챌린저 뱅크도 이와 비슷하게 2013년 영국이 대형 은행의 과점을 깨기 위해 도입한 소규모 특화 은행을 말한다. 대전에 설립을 추진 중인 기업금융중심은행 등 지방은행 활성화도 논의 대상에 올랐다.

하지만 3곳의 인터넷전문은행과 저축은행 등이 각자 특성화를 목표로 등장했지만 거대은행의 자본에 밀려 큰 변화를 이끌지 못한 만큼 보다 영향력 있는 플레이어를 등장시키기 위해 금산분리 완화를 통해 산업자본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19년 기준 18개 은행 중 5대 은행의 점유율은 77%에 달한다. 5대 은행 각자 15∼16%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한 국회 관계자는 “은행업 경쟁 촉진을 위해서는 결국 금산분리 완화로 갈 수밖에 없다”며 “대기업의 진출은 지배구조상 문제 등 반발이 예상되는 만큼 인터넷전문은행 사례처럼 빅테크 기업 위주 자본의 진출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비금융 주력자에 대한 논의는 테이블에 올라가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산업·금융 융합해 국제 경쟁력 키워야

전문가들은 거대 은행의 과점을 깨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산업·금융 융합을 통한 국제 금융 경쟁력 확보를 위해 금산분리 완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경영학)는 “우리나라의 국제 금융 순위는 세계 30위권”이라며 “정부가 금융을 육성하려면 산업자본도 필요하고 금융 업종 간 장벽을 허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시아 금융 허브의 80%가 싱가포르로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과점을 깨 국제 금융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며 “지금도 KB국민은행의 대주주 80%가 외국인이고 신한은행 대주주 65%가 외국인인데 과점 체제로 결국 외국인 배만 불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증권사, 카드사 등 금융 회사의 종합지급결제업을 허용해 사실상 은행의 경쟁 상대 역할을 맡기는 대안도 논의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금융사가 계좌를 개설할 수 있게 되고 예치금을 통한 이자 지급은 불가하지만 마일리지 등 리워드 형태로 고객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 서지용 상명대 교수(경영학)는 “증권사와 카드사가 점점 은행의 경쟁자가 될 수 있다”며 “외국의 경우 잔돈 금융 서비스라고 해서 결제 후 남는 금액을 상장지수펀드(ETF) 같은 곳에 투자해 수익을 돌려주거나 급여 조기 서비스라고 해서 수수료를 내고 급여를 앞당겨 받는 등 다원화한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 현대 등 대기업 계열 증권·카드사가 은행처럼 되면 사실상 금산분리 정책이 폐기되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서 교수는 “금산분리 완화 논의가 이뤄지면서 재벌 기업이 승계 과정이라든지 지배권을 위해 금융사 자본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금산분리 완화는 재벌·빅테크 특혜” 반대 여론도

금산분리 완화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가장 먼저 목소리를 높인 곳은 은행 근로자들이 모인 금융노조다. 이들은 지난 6일 성명서를 통해 금융위가 추진 중인 은행 개혁을 “재벌과 빅테크에 특혜를 주기 위한 관치 금융”이라며 비판했다. 이들은 “은행산업 내 경쟁 심화는 저신용 차주에 대한 대출 증가와 금융사업 부실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지금은 금융산업의 시스템과 건전성을 점검하고 부실 증가 상황에 대비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SVB 로고. 연합뉴스
최근 미국의 SVB, 실버게이트은행, 시그니처은행 등 소규모 은행의 연이은 파산 사례는 금산분리 완화와 은행 경쟁 촉진의 추진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은행이 많아지면 금융산업 전반의 건전성이 악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SVB은 금융 당국이 소규모 특화 은행의 성공 사례로 소개한 곳이었지만 약 이틀 만에 뱅크런(예금 인출) 사태가 벌어지면서 파산 절차를 밟게 됐다.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경제학)는 “산업자본이 은행업을 운영하는 것은 금융 소비자 관점에서의 안정성과 금융에서 실물 경제로 위험이 전이되는 부분 등 장기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부분을 먼저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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