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강 흐르는 공주 고마나루 솔숲 바람에 실어오는 봄 내음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고마나루 솔숲사이로 봄바람 살랑살랑/공주 옛 지명 ‘웅진’ 유래엔 암곰의 애틋한 설화 담겨/공산성 성곽길 오르니 웅진백제 찬란한 역사 가득/마곡사 솔바람길에선 백범 김구 선생 자취 만나
울창한 소나무숲을 걷는다. 오랜 세월의 무게에도 쓰러지지 않고 이리저리 휘어지며 운치 있게 자란 고고한 자태. 거북 등처럼 갈라진 피부는 평생 새벽에 나가 늦은 밤까지 일손을 놓지 않던 아버지의 굳은살 박인 손바닥을 닮았다. 오솔길 따라 쌓이고 쌓인 솔잎은 어머니 품처럼 푸근하고. 그렇게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숲길 천천히 걸어 비단강물이 흐르는 고마나루에 섰다. 간밤에 비 오더니 강나루 긴 언덕 따라 풀빛이 더 짙어지고 연미산 자락 타고 불어오는 바람도 봄소식처럼 훈훈하다.
◆고마나루 명승길 따라 봄 오다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쑥쑥 오르더니 한낮에 20도를 웃돈다. 지난주 전국 곳곳에서 관측 이래 3월 최고기온을 기록했을 정도. 갑자기 겨울에서 봄으로 선명하게 바뀌니 어리둥절하다. 한두 차례 꽃샘추위가 있겠지만 오는 계절 어찌 막으랴. 봄기운 완연한 충남 공주시 백마고을길 고마나루로 봄 맞으러 나선다.
출발지인 고마나루로 들어서자 울창한 소나무숲이 여행자를 반긴다. ‘만화로 보는 공주 고마나루’ 안내판에 고마나루의 설화가 재미있게 담겨 아이들이 좋아한다. 고마나루 금강 너머 연미산에 살며 늘 자신의 짝을 찾던 커다란 암곰은 지나던 나그네를 동굴로 납치해 함께 살았고 반은 인간, 반은 곰의 모습인 자식 둘을 낳았다. 자식까지 생긴 마당에 나그네가 떠나지 않을 것으로 여긴 암곰은 동굴 문을 열어놓고 외출했고 늘 고향에 돌아갈 꿈을 꾸던 나그네는 이 틈을 타 달아났다. 암곰은 어린 자식을 들어 보이며 돌아오라고 애타게 요청했지만 나그네는 냉정하게 떠났다. 슬픔에 빠진 암곰은 아이들을 강 속에 던지고 자신도 물에 빠져 죽었다. 이후 강에 풍랑이 일어 배가 뒤집히는 일이 자주 일어나자 마을 사람들은 암곰과 새끼 곰의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냈단다.
◆웅진백제 역사 가득한 공산성 거닐다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과 왕비가 잠들어 있는 송산리고분군을 거쳐 황새바위성지, 제민천, 산성시장을 지나면 공주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백제와 조선시대를 거친 역사가 켜켜이 쌓인 공산성을 만난다. 웅진백제를 대표하는 고대 성곽으로, 비단결 같은 금강이 넉넉하게 감싸 흐르는 고풍스러운 성곽길 따라 걷다 보면 1500년 전 찬란했던 고대왕국 백제가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백제시대는 웅진성,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 조선시대엔 쌍수산성으로 불렸다. 금강을 천연 해자로 활용하면서 해발고도 110m 산의 능선과 계곡을 둘러싸는 포곡형 산성으로 축조한 천혜의 요새다. 백제 때 토성으로 쌓았지만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개축해 동쪽의 735m를 제외한 나머지는 지금의 석성 형태로 보존돼 있다. 남문인 진남루, 북문인 공북루가 남아 있었고 1993년 동문 영동루와 서문 금서루를 복원했다.
금강을 낀 공주를 한눈에 조망하는 트레킹 코스이자 인근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산책로다. 정문 격인 금서루에서 공산성 여행이 시작된다. 금서루∼쌍수정∼왕궁지∼진남루∼영동루∼광복루∼만하루와 연지∼영은사∼공북루∼공산정을 거치는 완주코스인 1코스는 1시간이 걸린다. 2코스 금서루∼쌍수정∼왕궁지∼영은사∼공북루∼금서루 구간과 3코스 금서루∼공산정∼공북루∼만하루와 연지∼영은사∼금서루 구간은 30분이면 충분하다.
판관, 관찰사, 목사 등 조선시대 공주를 거쳐 간 관리들의 선정비를 지나 금서루 성곽에 오르는 길에선 매화 향기가 비강으로 파고든다. 단 한 그루 나무가 이토록 강렬한 향기를 사방에 내뿜다니 놀랍다. 금서루 동쪽 가파른 성곽 맨 위에 오르자 금서루를 지나 공산정으로 이어지는 총길이 2.6㎞의 성곽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린다. 3월 말이나 4월 초 성곽을 따라 화사한 벚꽃이 흐드러지니 그때가 공산성 여행하기 가장 좋을 것 같다. 쌍수정은 조선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내려와 머물렀던 곳으로 난이 진압되자 바로 앞 두 그루 나무에 통훈대부 벼슬을 내렸다. 계단식으로 조성된 만하루 연지도 독특하고 공북루를 거쳐 공산정으로 오르는 성곽에서 유유히 흐르는 그림 같은 금강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마곡사 솔바람길에서 만난 백범 김구 선생 자취
공주에는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는 말이 전해진다. 봄에는 마곡사가 가장 아름답고 가을에는 갑사가 으뜸이라는 뜻. 그만큼 사곡면 마곡사로 가는 봄 풍경은 황벚꽃, 산수유, 자목련으로 꾸며져 손에 꼽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고풍스러운 해탈문과 천왕문을 지나면 봄기운을 싣고 흐르는 마곡천 다리 너머로 마곡사 전경이 펼쳐진다. 오층석탑 뒤로 대광보전이 자리하고 그 뒤 높은 축대 위에 다시 대웅보전을 지었다. 이런 배치를 ‘일탑쌍금당’으로 부르며, 매우 희귀한 사례로 평가된다. 신라 자장율사가 640년(선덕여왕 9년) 창건한 마곡사는 100여개 사찰과 암자를 관할하는 충남불교 대본산으로 한때 승려가 1000명을 넘을 정도로 번성했다.
백범당도 만난다. 김구 선생은 1896년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군 중좌를 살해한 혐의로 복역하다 탈옥한 뒤 마곡사로 피신, 법명 ‘원종’으로 잠시 출가해 수도했다. 1898년 마곡사를 떠난 김구 선생은 광복 직후인 1946년 마곡사를 다시 찾아 향나무를 심었는데 응진전 옆에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마곡사를 품은 태화산 자락에 솔바람길이 조성돼 봄에 많은 이가 찾는다. 가볍게 산책하는 1코스 백범명상길은 3㎞로 50분, 트레킹을 하는 2코스 백범길은 5㎞로 1시간30분, 등산하는 3코스 송림숲길은 11㎞로 3시간30분이 걸린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스님과 차담을 나누고 솔바람길을 걸으며 조용하게 봄을 맞을 수 있다. 고요한 백범길을 따라 걷는다. 울창한 천연송림욕장을 뚫고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살, 지저귀는 새소리, 나뭇가지로 연주하는 바람소리 따라 싱그러운 봄세상이 펼쳐지니 마음이 평화롭다.
공주=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유영재, 입장 삭제 ‘줄행랑’…“처형에 몹쓸짓, 부부끼리도 안 될 수준”
- "결혼식 장소가 호텔?… 축의금만 보내요"
- 박명수 “주는대로 받아! 빨리 꺼져”…치킨집 알바생 대학 가라고 밀어준 사연 감동
- 아이 보는데 내연남과 성관계한 母 ‘징역 8년’…같은 혐의 계부 ‘무죄’ 왜?
- “엄마 나 살고 싶어”…‘말없는 112신고’ 360여회, 알고보니
- 반지하서 샤워하던 여성, 창문 보고 화들짝…“3번이나 훔쳐봤다”
- "발가락 휜 여자, 매력 떨어져“ 40대男…서장훈 “누굴 깔 만한 외모는 아냐” 지적
- 여친 성폭행 막던 남친 ‘11살 지능’ 영구장애…가해男 “징역 50년 과해”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