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손은 거들 뿐…물류창고의 짐꾼 로봇 ‘나르고’
물류 옮기는 ‘피킹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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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센터에는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선반에서 집어 들어 카트에 담는 ‘피커’들이 있다. ‘피킹’ 작업은 마치 마트에서 장을 보며 물건을 고르는 일과 비슷하지만, 피커들은 수백개의 선반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하루 8시간 내리 상품을 찾고 담아야 한다는 점이 다르다. 소셜커머스 업체 물류센터에서 피킹 아르바이트 체험을 기사화한 ‘알바 버스 타는 한국의 피커들’(<한겨레21> 1151호)이란 기사를 보면, 이 취재기자는 하루 동안 피커로 일하면서 9시간 동안 축구장 트랙을 35바퀴 도는 만큼 걸었다고 적었다.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서 온라인에 후기를 올리는 이들은 하나같이 “다리와 발이 아프다”,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 경험이 적은 작업자는 특히 더 고생한다. 바구니를 여럿 실은 카트를 안정적으로 운전하려면 요령이 필요하고, ‘N24-38-2’와 같은 상품 위치 정보가 한번에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글자들로 표시되는 등 익숙해질 때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인간의 다리 대신
자율주행로봇 회사 트위니의 ‘나르고 오더피킹’은 이러한 피킹 업무의 수고를 덜기 위해 개발됐다. 키 1.5m짜리 로봇에 물건을 올려놓을 수 있는 선반이 달렸다. 전면에는 조작 패널이, 측면에는 바코드 스캐너가 있다. 나르고는 물류센터에서 사람 피커와 함께 상품을 찾고 옮긴다. 트위니가 제시하는 사람과 로봇의 협업 방식은 다음과 같다. 먼저 선반 구역별로 담당자를 배치한다. 나르고는 주문받은 상품들이 보관된 선반을 차례로 방문한다. 선반 앞 ‘정류장’에 도착한 나르고는 화면에 상품 사진과 위치 정보, 피킹 수량을 큰 글씨로 띄운다. 그 구역 담당자가 상품을 찾아 로봇에 싣고 완료 버튼을 누른다. 다음 구역에서도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상품을 모두 찾아 실으면 나르고는 최종 목적지인 검수·분류·포장 구역으로 이동한다. 로봇에 실려 온 상품을 작업자가 검수한 뒤, 상자에 포장하여 출고를 준비한다.
천홍석 트위니 대표는 물류센터 로봇이 “인간의 다리를 바퀴로 구현한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에 따르면 물류센터의 피킹 작업은 손이 필요한 조작과 발이 필요한 이동으로 구성되는데, 그가 개발하는 자율주행로봇은 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니 이동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피킹 업무의 일부를 로봇이 담당하게 하자는 것이다. 사람은 오래 이동하면 지친다. 로봇은 이동해도 지치지 않지만, 선반에서 상품을 꺼내는 일은 이동만큼 잘하지 못한다. 천 대표는 로봇과 인간이 각자 잘하는 것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즉 바퀴로 이동하는 것은 로봇에게 맡기고 손으로 상품을 집어 담는 일은 사람에게 맡겨서 피킹 작업을 편하고 효율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믿는다.
로봇을 쓰면 피킹 오류가 줄어든다는 장점도 있다. 작업자가 로봇에 부착된 스캐너로 상품 포장지 바코드를 찍어 주문 정보를 그때그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로봇은 시스템에 저장된 상품 위치 정보에 따라 최적의 경로를 계산하여 이동하니, 작업자의 경험이나 숙련에 따라 효율이 달라지는 일도 없다. 인력 의존도가 높은 물류업계는 로봇 도입을 환영한다.
트위니의 모델이 가능한 것은 기존의 피킹 작업을 상품 꺼내기와 이동으로 쪼개고, 사람과 로봇의 역할을 각각 손과 발로 나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사람과 로봇의 협업은 신체와 일을 나누고 또 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나르고와 사람 작업자는 동시에 함께 일할 때 피킹 임무를 완성할 수 있다.
손발이 따로 놀지 않으려면 사람과 로봇은 알맞은 협업 방식을 찾아가야 한다. 로봇은 설계된 만큼의 무게를 견디고, 설정된 속도와 경로로 주행한다. 이 때문에 로봇이 어디에 정차할지, 어떤 동선을 따라갈지 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르고는 최대 초속 1.5m의 속도로 이동할 수 있게 설계되었지만 지게차와 충돌하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사람이 걷는 속도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빠른 수준으로 주행하도록 조절한다. 지정된 장소에 로봇이 멈출 수 있으려면 작업자는 로봇의 진로를 방해해선 안 된다. 또 자신이 담당하는 구역에서 도착 알림음이 울리면 로봇이 도달한 선반으로 민첩하게 이동한다. 로봇이 잘 작동하지 않을 땐 그 이유를 나름대로 추측해 보는 기량을 발휘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로봇을 움직이게 하는 통신이 끊겼거나, 로봇이 움직이려는 방향에 장애물이 있거나 하는 이유 말이다.
다양한 몸이 공존하는 창고
그렇다면 로봇이 투입될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에게 중요한 능력은 바쁘게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유연함일 것이다. 지게차와 크고 작은 카트들, 그리고 로봇이 뒤섞여 빠르게 돌아다니는 창고 안에서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는 침착함이다. 발을 담당하는 로봇과 손을 담당하는 자신의 작업 리듬을 맞출 줄 아는 융통성이다. 어떤 상품이 어느 계절에 인기가 많은지 파악하고 주문 빈도가 높은 상품을 손이 잘 닿는 선반에 배치하는 재량이다.
지금과는 다른 전문성을 요구하는 물류센터에서 일하게 될 작업자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유연성이 필요한 일은 사람에게, 힘들고 귀찮은 단순 반복 작업은 로봇에게 맡긴다면 작업자들은 물류 기업들의 주장대로, 로봇 기업들의 바람대로 더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을까? 로봇이 피킹 업무의 고됨을 던다면 피커의 조건도 바뀌지 않을까? 상상력을 조금 더 발휘해 본다. 기존의 작업자와 다른 몸을 지닌 사람들이 일하는 물류센터의 모습이다. 움직이는 일을 로봇이 맡는다면, 그래서 바쁘게 걸어 다니는 것이 더 이상 물류센터 작업자의 기본 조건이 아니라면, 거동이 불편한 누군가도 피커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로봇들과 더불어, 다채로운 몸들이 공존하는 창고를 볼 수 있을까?
과학기술학 연구자
국내 1호 로봇비평가.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서 로봇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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