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누가? 발트 해저 가스관 폭파 6개월 지났는데도 배후 모호

이철민 국제 전문기자 2023. 3. 18.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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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폭발물 흔적 있는 요트와 빌린 우크라이나인 국적 확인했지만… 범행 확신 못해
러시아ㆍ우크라이나ㆍ미국 모두 ‘범행 동기’ 있어

작년 9월26일 발트해 해저에 설치된 독일~러시아를 잇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Nord Stream) 1ㆍ2가 파괴됐다. 이 가스관은 4㎝ 두께, 안쪽 지름 1.15m의 강철관을 다시 11㎝의 콘크리트로 감싸 해저 80m에 설치한 것이었다. 수중 드론 촬영에서 각각 2개 가스관으로 된 노르트스트림 라인에서 제1라인은 2개 모두 파괴됐고, 제2라인은 1개 관이 파괴된 것이 확인됐다. 하나는 약 50m 구간의 가스관이 날아갔고, 다른 것도 수m씩 파괴됐다.

작년 9월27일 덴마크 본홀름 부근 발트해에서 노르트스트림 2 가스관이 파괴되면서, 흘러나온 가스로 약 1km 지름의 거품군이 해상에 형성됐다. /로이터 연합뉴스

해저 인프라에 대한 가공(可恐)할 선례가 되는 테러였다. 전세계 해저에는 하루 10조 달러의 금융거래가 이뤄지는 130만㎞의 케이블과 석유ㆍ가스관, 전력선 등이 설치돼 있다.

이후 독일ㆍ덴마크ㆍ스웨덴 등 발트해를 둘러싼 나라의 수사관 수백 명이 6개월간 발트해 항구의 모든 선박의 정박ㆍ항해 기록, 탑승객 명부를 확인하고 통신을 감청하며 이 폭파 테러의 범인을 추적했다.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1-2 지도와 가스관 구조/ 자료= The Times

그 결과, 작년말쯤 폭발물이 적재됐던 흔적이 있는 요트와 이 요트를 빌린 우크라이나인들이 포함된 6명에 수사의 초점이 모아졌다. 그런데도, 이들을 사건의 배후를 명확히 짚기가 애매하다. 워싱턴포스트는 15일 “발트해 가스관 폭파 테러는 케네디 암살, 9ㆍ11 테러, 미국과 캐나다 외교관이 겪었다는 전파 고문인 아바나(Havana) 증후군처럼 온갖 음모론을 자아내는 사건이 됐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인 3명 등 6명이 요트 탑승

독일 정보기관 BND는 2차 대전 이후 전례가 없는, 유럽의 민간 에너지 기간시설 노르트스트림 2 가스관 파괴 공격이 독일 북부도시 로스토크에서 시작한 것으로 본다.

독일 검찰이 노르트스트림 1-2의 파괴 테러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하는 요트 안드로메다가 14일 뤼겐 섬의 드라이도크에 놓여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작년 9월6일 로스토크에서 돛 1개짜리인 15m 길이의 호화 요트 안드로메다(Andromeda)가 출항했다. 탑승자는 우크라이나인 국적 3인과, 후에 위조로 밝혀진 불가리아 여권을 지닌 이를 포함해 6명이었다. 이들은 1주일에 3000유로인 이 요트를 2주간 빌렸다.

안드로메다 호는 로스토크에서 독일 뤼겐 섬의 비크 항으로 이동했다. 독일 BND는 이곳에서 추가로 몇몇 ‘공작원’이 승선했고, 흰색 밴으로 폭발물을 배에 옮겨 실은 것으로 추정했다.

발트해에 있는 주민 98명의 덴마크 크리스티안쇠 섬./로이터 연합뉴스

안드로메다는 이어 덴마크 영토에서 가장 동쪽에 있는 발트해의 크리스티안쇠 섬으로 옮겨갔다. 배의 임차료는 폴란드에 위치한, 우크라이나인이 소유한 회사가 지불했다.

◇일부에선 “군 전문성 없이 불가능”

따라서 일단 우크라이나인들이 폭파 테러에 관여돼 있다는 것은 분명한 듯하지만, 발트해 주변 국가들의 정보ㆍ수사당국은 단정짓기를 머뭇거린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6일 “수사관들은 여전히 상당한 양의 폭약과 다이빙 장비, 수중 폭파 전문 지식 등이 요하는 이 테러가 안드로메다 호 정도의 요트와 6명으로 가능하느냐를 놓고 의견이 갈린다”고 전했다.

일부에선 “전문 다이버들이라면 민간에서 파는 수중 스쿠터와 추진체, 휴대용 음파탐지기, 공기주입 백, 부표 등을 이용해 폭발물을 설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덴마크 해군의 한 지휘관은 “그렇게 작은 팀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007 영화에서나 가능하다”며 “장시간 해저 80m에서 폭발물을 설치하는 것은 군의 수중 폭파 전문 요원이어야만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미국 CIA, 폭파 테러 3개월 전에 독일 정보기관에 경고

미국은 작년 6~7월 독일 정보기관 BND에 노르트스트림 파괴 가능성을 미리 경고했다. 우크라이나인 3명이 스웨덴을 포함한 발트해 연안 국가에서 배를 빌려 가스관을 파괴하려고 준비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미국은 10월엔 “우크라이나 정부가 이 공격의 배후일 수 있다”고 BND에 알렸다.

그러나 지난 7일 뉴욕타임스는 “현재 미 정보기관은 우크라이나 정부 모르게, 우크라이나의 민간 조직이 이 거사(擧事)에 자금을 대고 폭파팀을 꾸렸을 수 있고, 폭발물 설치는 군ㆍ정보기관 경험은 없어 보이지만 경험이 많은 다이버들이 도왔던 것으로 본다”고 보도했다.

◇푸틴 “우크라이나 소행 아니다”

물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정부든 민간인이든 자국의 가담 가능성을 전면 부인한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어떤 형태로든 이 테러에 개입했다면,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노력은 크게 훼손될 것이다.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가 배후라고 주장하는 것은 러시아의 이간질에 놀아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작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4일 “우크라이나가 뒤에 있다는 것은 거짓이고, 미국의 소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러 개의 폭발물이 설치됐는데, 일부는 터졌고 일부는 안 터졌다. 이유는 모르겠다”고 국영TV에 말했다.

◇러시아, 서방의 해저 인프라를 ‘위협’하려고 자해(自害)?

가스관 테러의 ‘희생자’라고 주장하는 러시아를 비롯해, 우크라이나와 미국 모두 ‘범행 동기’가 있어 보이는 것도 수사에 혼선을 초래한다.

러시아를 범인에서 배제하는 측은 “유럽의 가스 수입분의 45%를 차지하는 러시아가 유럽에 대해 쥐고 있는 강력한 협박수단을 스스로 파괴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스관 폭파 당시, 이미 노르트스트림 1은 가동되지 않고 있었다. 또 새로 만든 노르트스트림 2는 미국의 반발 속에, 독일 정부가 가동 승인을 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당시 가스값 위협이 별로 효력이 없는 것도 알고 있었다.

따라서 러시아를 의심하는 측은 “어차피 수리는 1년 정도면 되는 것이고, 러시아는 가스관 파괴를 통해, 노르웨이~폴란드 간 발트 파이프라인, 서방의 다른 해저 전력망을 위협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본다. 러시아가 추정하는 전체 복구비용은 5억 달러. 러시아는 복구를 서두를 계획도 없지만, 이 복구비는 어차피 푸틴의 심복들이 이끄는 기업들에 돌아간다.

이 음모론의 단점은, 러시아가 이런 ‘자해(自害)’를 통해 유럽 시장을 잃으면, 이를 되찾기는 더욱 힘들다는 것이다. 독일은 가스관 파괴 테러 이후에 약간 높은 가격에 바로 노르웨이ㆍ네덜란드ㆍ벨기에 등에서 러시아를 대체할 가스 공급자를 찾았다.

◇우크라, 러시아 군비 대는 가스관 파괴할 이유 충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군자금 수입원이 되는 러시아의 노르트스트림 1ㆍ2를 파괴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또 이 가스관이 파괴되면, 중ㆍ서부유럽으로 가는 러시아 가스는 예전처럼 자국을 통과해야 해 ‘통행료’를 받을 수 있다. 2019년 12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이 맺은 계약에 따르면, 러시아는 5년간 70억 달러를 우크라이나에 지불하기로 했었다.

또 유럽엔 우크라이나 정부와 무관하게, 러시아에 대한 적개심만으로 움직이는 우크라이나 출신 부호들도 많다고 한다. 이들 개인이 정부와 무관하게 일을 벌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개인이든 정부가 유럽의 기간기설을 파괴한 것으로 드러난다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서방의 대의(大義)는 크게 훼손된다. 우크라이나로선 파괴의 동기는 충분해도, 정치적 위험이 단기 이익을 압도한다. 또 우크라이나가 연루됐다면, 독일보다는 훨씬 반(反)러시아 성향이 강한 폴란드에서 직접 배를 구하는 것이 낫지, 굳이 독일까지 가서 빌릴 이유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작년에 EU 가스 수출 배(倍)로 뛰어

노르트스트림이 파괴되고, 미국의 작년 1~11월 EU 가스 수출량은 2021년 전체보다 배로 뛰었다. 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작년 러시아 침공 직전인 2월7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러시아가 침공하면, 미국은 노르트스트림을 끝내겠다(end)”고 말한 바 있다.

유럽국가들은 미국이 파괴했다고 해도, 미국 주도의 NATO를 탈퇴할 형편이 못 된다. 독일도 미국 없는 안보는 상상할 수 없다. 그간 미국의 반대에도 러시아 가스에 과도하게 의존한 것이 실책이라고 자인하고, 자존심을 삼켜야 한다.

이와 관련, 미국의 저명한 탐사(探査) 기자인 시모어 허시는 지난달 8일 “미 해군의 심해 잠수요원들이 작년 6월 NATO의 발트해 훈련 BALTOPS 22 기간 중에 은밀하게 원격 작동 폭발물을 설치했고, 9월에 이를 터뜨렸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즉각 “허구”라고 반박했다.

일부에선 미군의 전문적인 수중폭파팀이 연루됐다면, 4개 관을 모두 파괴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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