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향이 감지되는 커피의 언어 [박영순의 커피언어]

2023. 3. 1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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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셨을 때 과일의 느낌이 감지되는지는 품질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다.

커피의 향미를 비유하는 세상의 모든 향미 물질 가운데 20%가 과일이라는 것은 그 중요성을 웅변하는 것이라고 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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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셨을 때 과일의 느낌이 감지되는지는 품질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다. 일반적으로 산미(acidity)가 있는 커피는 성분이 풍성하고 신선하다는 긍정적인 인상을 준다. 다만 신맛이 관능적으로 날카로워 식초의 뉘앙스를 지닌 것은 경계해야 한다. 커피 열매에서 씨앗을 가려내는 가공 과정이나 볶은 뒤 보관하면서 산패하는 등 문제가 생겨 품질이 떨어졌음을 보여주는 징표인 까닭이다.

커피가 선사하는 신맛은 과일 맛 같아야 한다. 단맛이 자극을 부드럽게 감싸주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맛이 받쳐주지 않는 신맛은 날카로운 비명과 같다. 인류에게 과일의 느낌은 꽃보다 긍정적이다. 예를 들어, 사과와 사과 꽃은 같은 나무에서 열리므로 향기가 비슷해 보이지만 쓰임이 다른 만큼 결이 다르다.
한 잔의 커피에 담기는 꽃향과 과일향 중에서 인류가 더 끌리는 쪽은 어디일까? 진화의 과정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겠다. 커피화가 유사랑 제공
꽃 향을 발산케 하는 원인 물질은 수분을 매개하는 벌이나 나비와 같은 곤충을 유혹하기 위해 고안됐다. 반면 과일의 향기는 그 속에 들어 있는 씨앗을 흩뜨리기 위해 조류와 포유류를 끌어들이려 디자인된 성분이다. 따라서 포유류인 인류는 과일 향에 더 매료되기 마련이다. 만족감이 다른 만큼 인류의 본능에서는 꽃보다 과일과 연결되는 정서가 더 강력하고 호의적이다.

이런 원리가 커피 테이스팅 자리에까지 이어져 한 잔의 커피에서 그윽한 과일 향을 찾기가 꽃 향보다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우리가 과일의 향과 맛에 더 민감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의 경험치에 따라 과일 향 종류에 대한 만족도에서 차이 난다.

과일마다 향이 주는 차이를 몸에 익히는 방법은 직접 그 과일을 먹어보는 것보다 좋은 게 없다. 여의치 않다면 커피 향미를 평가하고 묘사하는 커피 테이스터들이 훈련 도구로 쓰는 아로마 키트 ‘르네뒤카페(Le Nez Du Cafe)’를 활용해도 좋다. 이 키트는 1997년 콜롬비아커피생산자연합회(FNC)가 프랑스 와인 전문가에게 의뢰해 커피에서 감지되는 속성을 모아 향기로 체험케 한 것이다. 속성 36종 가운데 과일은 블랙 커런트, 레몬, 살구, 사과 등 4종이 있다.

반면, 커피 전문가들이 2016년에 만들어 향미 표현에서 세계 공용어처럼 활용하는 ‘커피 테이스터스 플레이버 휠’ 85개 속성 가운데 과일은 블랙베리, 라즈베리, 블루베리, 딸기, 건포도, 말린 자두, 코코넛, 체리, 석류, 파인애플, 사과, 복숭아, 배, 자몽, 오렌지, 레몬, 라임 등 총 17가지이다. 커피의 향미를 비유하는 세상의 모든 향미 물질 가운데 20%가 과일이라는 것은 그 중요성을 웅변하는 것이라고 봐도 좋다.

그렇다고 커피를 마시고 어떤 과일 맛이 나는지 정답과 맞춰보는 행동은 부질없다. 중요한 것은 속성보다 정서이다. 레몬이 떠오르기 때문에 상쾌한 커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마셨을 때 탁 트인 언덕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을 때처럼 활달한 기운이 넘칠 때 레몬을 먹는 것과 같은 감성이 들게 하기에 레몬과 같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차분한 휴식과 정서적 안정이 이루어지는 듯할 때는 블랙 커런트, 상대와 친밀감이 차오르는 듯할 땐 체리, 활력이 샘솟을 땐 자몽이 떠오르는 것은 수학 문제를 풀듯 찾아내는 게 아니다. 한 잔의 커피가 이끄는 대로 우리의 관능을 탁 풀어놓으면 자연스레 과일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것이 좋은 커피이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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