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코로나19 숙주 너구리` 알고도 쉬쉬했나

'코로나 진원지 지목' 우한 시장에서 촬영을 막는 경비원 EPA 연합뉴스

WHO "알면서도 3년 은폐" 비판…우한 수산시장 유전자 샘플 재분석 결과

중국 당국이 코로나19 발병의 숙주가 너구리라는 사실을 알고도 3년간 은폐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세계보건기구는 이에 대해 중국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17일(현지시간)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호주 시드니대학교, 미 애리조나대학교 등 국제 연구진은 중국 우한 화난(華南) 수산시장 내 동물 우리, 수레, 바닥 등 곳곳에서 2020년 1월∼3월 채취된 유전자 데이터를 재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중국 화산 수산시장에서는 수산물뿐 아니라 박쥐, 천산갑, 뱀, 오리, 지네, 너구리, 토끼 등 각종 야생동물이 식용으로 거래됐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과학기술계는 코로나19의 발병지로 수산지상을 지목해 왔다.

중국 과학기술계가 시장에서 3년 전 유전자 샘플을 확보해 분석했지만 중국은 올해 1월에야 국제 인플루엔자 정보공유기구(GISAID)에 관련 데이터를 공개했다. 최근에는 이마저 지웠다. 하지만 데이터가 완전히 삭제되기 전 프랑스의 한 생물학자가 이를 우연히 발견해 글로벌 연구자들과 공유하면서 재분석이 이뤄졌다.

이번 재분석 결과 화난 시장에서 발견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동물이 아닌 인간에서 유래됐다는 중국 측 주장과 정면 배치하는 결과가 나왔다. 유전자 데이터 분석 결과 코로나19에 양성 반응을 보인 유전자 샘플에서 이 시장에서 판매된 너구리 유전자가 상당량 섞여 있었다. 이는 이들 너구리가 코로나19 바이러스 숙주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지금까지 유력한 숙주 동물로 꼽혀 온 박쥐나 천산갑이 아닌 너구리가 코로나19 중간 숙주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세계보건기구(WHO) 내 관련 자문그룹(SAGO)에 이 사실을 전달했다. 연구결과는 아직 학술지 등에 공식 게재되지는 않았다. WHO는 이와 관련, 중국 당국이 코로나19와 너구리 등 야생동물 간 연관성에 대해 더 일찍 공개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이 데이터는 3년 전 공유될 수 있었고 공유됐어야 했다 우리는 중국이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필요한 조사를 수행해 결과를 공유할 것을 계속 촉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락된 증거를 국제 사회와 즉시 공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이전부터 중국이 코로나19 기원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으면서 숨겨왔다는 의혹이 제기돼왔다.

미국 시카고대학교 전염병학자 사라 코비는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해 "인간에 의한 감염이라면 유전자 샘플에 이렇게 많은 동물 DNA, 특히 너구리 DNA가 섞여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짚었다.

다른 과학자도 이번 분석이 코로나19와 야생동물과의 더 강력한 연관성을 시사한다고 봤다.

루이지애나 주립대 슈리브포트 보건과학센터의 바이러스 학자 제러미 카밀은 "감염된 너구리가 그 시장에 있던 게 분명하다"면서 "중국 정부가 실제로 뭘 알고 있는지에 대한 더 큰 의문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재분석 결과가 코로나19의 기원을 완벽하게 밝혀주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지금까지의 정보만으로는 너구리가 코로나19에 감염됐던 게 확실한지, 너구리가 처음으로 인간에게 코로나19를 전파한 게 맞는지 확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설령 너구리가 코로나19에 감염된 게 맞다 해도 너구리가 다른 동물이나 사람에게서 감염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