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열의 산썰(山說)] 1. 새봄 산행과 난처함

최동열 2023. 3. 18.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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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급하게 꽃을 피웠다가 꽃샘 추위 얼음밭에서 안간힘을 쓰는 야생화.

TV를 보다 보니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유명 프로그램에서 ‘자연인’으로 소개되는 한 남자가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면서 촬영 팀에게 “산 신세를 지러 간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무슨 선(禪)문답인가?

산(山) 신세를 지러 가다니.

고개를 갸웃거리는 촬영 팀에게 남자가 “산에 들어가는 행위 자체가 신세를 지는 일”이라고 알 듯 모를 듯한 말로 대답을 얹는다.

그 말에서 산을 대하는 남자의 내공이 확 풍겨 나온다.

TV를 보는 내가 탁하고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는 현답 중의 현답이다.

▲ 봄 산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생강나무.

그렇다. 산으로 발걸음을 들이는 순간부터 우리는 모두 자연스럽게 산에 신세를 지거나 빚을 지게 되는 것이다.

맑은 공기를 마시고, 명경 같은 계곡물을 만나고, 귓불을 간지럽히는 솔바람을 쐬는 신선 같은 호사를 산이 아니고 또 어디서 만난단 말인가.

파릇파릇 생동하는 신록과 더없이 화사한 단풍, 눈부신 설경으로 철 따라 얼굴을 달리하는 이 웅장하면서도 신비스러운 감동 다큐멘터리를 어디서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난 그런 산을 위해 해준 것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콘크리트 도시의 일원으로 살면서 자의든, 아니든, 수많은 오염원을 배출해 자연을 더럽히는데 적으나마 기여를 했다면 모를까.

그런데도 산은 푸념 한번 없이 아낌없이 내주고, 품는다.

산이 내주는 것을 즐기기 위해 산에 들고, 발걸음을 옮기는 것 자체가 필연적으로 훼손, 즉 산에게는 상처를 동반하는 일인데도 말이다.

▲ 소나무 등걸 밑에서 자태를 뽐내는 처녀치마꽃.

사실 산을 다니다 보면, 용서를 구해야 할 때가 적지 않다.

의도치 않게 음식물을 흘리거나, 휴지가 바람에 날려 저편으로 달아나거나, 비탈길 경사로에서 길섶의 작은 나뭇가지를 붙잡고 용을 쓰다가 가지를 부러뜨리거나, 급한 마음에 배설물을 남기는 일 등등. 산에게 도움이 되는 일 보다는 훼손이나 오염 행위를 해야 할 때가 훨씬 많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난처해하는 일은 주로 새 봄에 발생한다.

봄은 산에서 더욱 선명한 몸짓으로 나타난다. 도시보다 훨씬 엄혹한 겨울을 이겨낸 생명들이 치열하게 싹을 틔우고, 기지개를 켜면서 활동을 재개하니 거대한 산 전체가 생명의 경외감으로 넘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때 등산로를 걷다 보면, 불가피하게 막 돋아나는 새순을 건드려야 할 때가 생긴다. 이제 막 고개를 내밀고 세상을 향해 인사를 하는 새순이 내 몸에 스치면서 떨어지거나 가지 째 부러져 나가는 상황은 참으로 미안한 일이다.

고산(高山)의 등산로에서는 그런 상황이 더 자주 발생한다. 높은 산의 등산로는 사람 한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곳이 많기 때문이다. 이따금 단체 등산객이 줄지어 지나가는 것 외에는 인적이 뜸한 곳이다 보니 비좁은 소로에서 무성한 수풀을 헤쳐야 하는 곳도 많다.

▲ 벚나무 등걸에서 피어난 벚꽃.

내가 즐겨 찾는 동해·삼척지역 두타산과 청옥산 능선이 꼭 그러하다.

그곳 두타산 7∼8부 능선 지점은 새봄이 되면, 아직 겨울의 잔설이 남아있는 상황에서도 얼레지 등 우리 산의 토종 야생화들이 앞다퉈 피어나 말 그대로 ‘천상의 화원’이 되는 곳이기에 새봄이 되면 달려가지 않고는 좀이 쑤셔 견딜 수 없는 단골 탐방처이다.

그곳 등산로는 키 작은 산죽(山竹)과 수풀을 갈짓자로 헤치면서 구불구불 이어진다. 그런 비좁은 산길을 걷다 보면 길 가장자리 수풀에서 이제 막 돋아난 새순이 등산화에, 바짓가랑이에, 팔소매에 스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마주 오는 등산객이라도 만나게 되면, 서로 비켜서기 위해 수풀 속에까지 발을 들여놓아야 할 때도 적지 않다.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앙증맞은 새순이 ‘툭’하고 떨어져 나갔을 때의 당혹감이란….

이미 꺾이거나 떨어진 새순을 다시 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수술을 해 되살릴 수도 없으니,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어느 날에는 등산로 옆 풀 섶에 자리를 깔고 앉아 간식과 음료로 잠시 요기를 한 뒤 일어나려는데 이제 막 피어난 야생화 꽃망울이 내 커다란 엉덩이에 짓눌려 버린 민망하고도 죄스러운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했다.

▲ 진달래 만개한 봄 산

그렇다고 새봄에 아예 산을 등지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니, 늘 산을 벗 삼아야 하는 산객의 입장에서 새 봄은 아침 기지개처럼 기다려지는 한편 산행의 마음가짐과 행동을 한층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계절이다.

그래서 TV 속 자연인이 툭하고 내뱉은 “산에 신세를 지러 간다”는 말의 무게가 오늘 더욱 무겁게 다가서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참 묘한 것이 있다.

겨우내 꽁꽁 얼어붙었던 땅을 헤치고, 세찬 비바람에 이따금 눈보라에, 또한 등산객들의 발길에 사정 없이 시달리면서도 깊은 산 야생의 새순과 꽃은 온실이나 화단의 꽃보다 훨씬 강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 얼레지

시달리고, 꺾이고, 밟히면서도 이듬해 봄이면 또 어김없이 등산로 안쪽으로 거침없이 새순이 고개를 들이민다.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설 줄 아는 야생초의 지혜가 온실 속 화초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생존 능력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봄 산행에서 맞닥뜨리는 난처한 마음이 다소라도 위안을 받는 것도 자연은 그렇게 저 스스로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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