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추락’ 알면서도 강제동원 해법 밀어붙인 尹, 왜? [배종찬의 민심풍향계]
4월 한미, 5월 한·미·일 정상회담까지 지켜봐야
(시사저널=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전범기업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 방안의 파장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과거 일제식민지 치하에서 전범기업이 우리 국민을 강제징용해 피해를 준 사실에 대해 2018년 우리 대법원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별개로 배상 판결을 내렸다. 이 대법원의 판결을 기점으로 한일 관계는 급격히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박근혜 정부 때 체결되었던 한일 위안부 협정은 사실상 폐기되었고 양국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일본 정부 반성 안해" 80~90%
일본은 반도체 핵심 소재·부품·장비를 한국에 수출·판매하지 않는 보복 조치를 취했고, 우리 국민은 '노 재팬(No Japan)'을 내걸고 일본 제품을 사지 않는 '죽창가'를 불렀다. 그 이후로 문재인 정부에서 이렇다 할 한일 관계의 진전은 없었고 형식적인 사이로 일관했다. 그야말로 문재인 전 대통령과 고인이 된 아베 전 총리는 적대적 협력 관계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 전범기업의 만행 그리고 우리 국민의 피해에 대해 일본에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정부의 산하 기관인 일본강제징용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해소하겠다는 발상은 그래서 파격적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일본과 협력 관계를 강조하더라도 대통령 지지율과 여당 지지율 그리고 다가오는 선거 등을 감안해 파격적인 결단은 거의 내리지 못했다. 일본과 실용적인 관계 개선을 도모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과거사와 독도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키지 않고 문화 교류와 경제 협력을 강조했다. 일본 오부치 전 총리와 끈끈한 관계를 만들었던 김 전 대통령도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한국 정부가 하겠다는 발상은 하지 못했고, 국내 여론을 생각한다면 시도하기 불가능한 사안이었다.
오히려 역대 대통령들은 지지율이 낮거나 정치적 위기에 봉착했을 때 국민 감정에 올라타 일본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가장 널리 알려진 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버르장머리' 발언이다. 김 전 대통령은 1995년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자리에서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고 말해 파문이 일었다. 일본 총무청 장관이 "한일합방으로 일본이 좋은 일도 했다"는 망언을 한 후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 상당히 적극적인 정책을 펼쳤음에도 2012년 정권 말엔 레임덕 해소 차원에서 헬기로 독도를 전격 방문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의 '제3자 변제' 방안은 어떤 여론을 불러오게 될까.
우선 단기간의 대통령 지지율 하락은 불가피해 보인다. 3월8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의 컨벤션 효과(정치적인 이벤트로 인해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현상)로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율이 올라갔으나, 일본 관련 이슈인 '제3자 변제' 방안이 불거지면서 지지율이 역주행하는 모습이다.
리얼미터가 미디어트리뷴의 의뢰를 받아 3월6~10일 실시한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어보았다.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3월8일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실시된 조사(2월27일~3월3일)에서 긍정 42.9%, 부정 53.2%로 긍정평가가 연속적으로 상승하는 결과로 나타났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 계획이 발표되면서 여론은 흔들렸다. 가장 최근인 3월6~10일 조사 결과에서 대통령의 긍정 지지율은 38.9%로 추락했고, 40%대를 유지하던 지지율이 다시 30%대로 고꾸라졌다. 부정평가는 58.9%로 거의 6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그림①). 특정 응답자층이 아닌 전체 응답자들이 다 반응하는 결과로 봐서 지지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내용은 대통령의 '제3자 변제' 방안이다.
식민통치를 한 일본에 대해 역대 정부가 좀처럼 파격적인 시도를 해보기 어려웠던 이유는 무엇일까. 뿌리 깊은 과거사로 인한 우리 국민의 정서 때문이다. 36년간 일제 강점에 대한 감정 역시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지만, 그 이전에 일본이 침략해 왔던 임진왜란에 대한 기억까지 선명하다. 한국갤럽이 자체적으로 3월8~9일 실시한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현재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 등 과거사를 반성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전체 결과에서 '식민지배 등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는 결과는 고작 8%밖에 되지 않는다. 대통령 지지율이나 국민의힘 지지율 그리고 총선 여론 등에서 매우 중요한 20대층(만 18세 이상), 서울, 무당층에서 모두 '일본 정부가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의견이 80% 이상 거의 90%에 육박할 정도로 압도적이다(그림②). 원천적으로 일본과 관련된 여론을 호전시키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여당 지지층, '제3자 변제안 찬성' 67%
그렇다면 이런 여론이 불거질 거라는 상황을 윤 대통령과 국가안보실은 몰랐을까. 아니다. 윤 대통령은 '지지율이 내려가더라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과연 이유가 무엇일까. 표면적인 이유는 일본과 미래를 향한 새로운 관계 정립으로 설정해 두고 있다. 그렇지만 내부적으로 미국과의 관계 즉 북한 대응에 미국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미·일 동맹과 연결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공조가 필요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을 견제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신안보질서' 구상을 계속 외면하기도 불편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제3자 변제' 여론은 4월26일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5월에 있을 예정인 일본 히로시마 G7 한·미·일 정상회의까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이 새로운 한일 관계를 이 시점에 시험대에 올린 또 다른 이유는 적어도 핵심 지지층들은 이탈하지 않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한국 정부가 우선 배상하는 제3자 변제 방안에 대해 찬성하는지 또는 반대하는지' 물어보았다. 전체적으로 '한국 국익을 위해 찬성한다'는 의견은 35%, '과거 반성 없어 반대한다'는 응답은 59%로 나타났다. 윤 대통령의 변제 방안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압도적이다.
그렇지만 핵심 지지층을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윤 대통령의 지역 기반인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은 제3자 변제안에 대해 찬반이 비슷했고, 60대와 70대 이상에서 제3자 변제안에 대한 긍정 여론이 더 높았다. 국민의힘 지지층은 찬성이 67% 그리고 반대가 25%로 나타났다(그림③). 적어도 윤 대통령의 '제3자 변제' 안에 대해 지지층은 무너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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